20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남자부 1차전 한국-중국 전에서 벤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남자부 1차전 한국-중국 전에서 벤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벤투호가 2022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4연패를 앞두고 운명의 한일전을 치른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 동아시안컵에서 중국과 홍콩을 각각 3-0으로 꺾고 2연승(승점 6)을 기록중이다. 개최국 일본(승점 4)이 2위, 중국(승점 1)은 3위, 홍콩(승점 0)이 최하위다. 오는 27일 저녁 7시 20분에 열리는 일본과의 3차전에서 무승부만 해내도 한국은 대회 4회 연속 우승을 달성한다.
 
이번 동아시안컵의 진정한 목표는, 역시 코앞으로 다가온 카타르월드컵을 대비한 국내파 옥석가리기와 플랜B 발굴에 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A매치 일정에 포함되지 않아 최정예멤버인 해외파가 합류하지 못하는 동아시안컵은, 대부분 K리거들 위주로 꾸려졌다. 정상적이었으면 당연히 대표팀에 승선했을 K리거 김영권-김태환 등도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합류가 불발됐다.
 
주전들의 빈 자리는 벤투호에서 아직 확실한 입지를 다지지 못한 국내파들에게는 월드컵 출전을 노릴 수 있는 사실상 라스트 찬스였다. 또한 벤투 감독으로서도 해외파 주전들이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선수와 전술을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실제로 벤투 감독은 이번 동아시안컵에서 26명의 엔트리를 고르게 가동했다. 벤투 감독은 지난 20일 중국과의 1차전(권창훈-권경원-엄원상-조규성-백승호-나상호-황인범-조유민- 김진수-윤종규-김동준)과 24일 홍콩과의 2차전(강성진-이기혁-이재익-박지수-조영욱-김동현- 김문환-홍철-송민규-송범근-김진규)에서는 베스트 11이 완전히 달랐다.
 
최종전인 한일전 출전이 유력한 골키퍼 조현우를 제외하면, 26명 중 25명이 모두 그라운드를 밟았다. 이번 대회를 통하여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선수만 무려 8명이었다. 또한 하프타임에 선수를 일찍 교체한다거나, 미드필더를 풀백에 놓는 과감한 '포지션 파괴'를 시도한 장면도 있었다.
 
국제대회든 평가전이든 항상 변화가 적고 보수적인 경기운영을 한다는 평가를 받던 벤투 감독으로서는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경기 연속 무실점 완승을 거두며 순항하고 있다. 조유민과 고영준 등 신예들은 좋은 활약을 보이며 벤투 감독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다. 표면적으로 결과와 실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실 면에서는 아쉬움도 남는다. 동아시안컵 우승이라는 결실도 물론 좋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월드컵을 대비한 과정임을 감안할 때 내용면에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번 동아시안컵의 수준은 여러모로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중국의 피파랭킹은 78위, 최약체로 꼽히는 홍콩은 145위에 불과하다. 한국(28위)과 아시아 1위인 일본(24위)과는 수준 차이가 크다. 심지어 중국은 이번 대회에서 베스트멤버들이 아닌 23세 이하(U-23) 선수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개인기량과 압박의 강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약팀들을 상대로 낙승을 거뒀다고 해도 테스트의 가치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벤투 감독이 평소와 달리 과감한 실험과 로테이션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상대의 전력이 수준 이하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투호의 경기 내용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것도 아니다. 벤투호는 중국전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슈팅을 1개밖에 내주지 않았을 만큼 경기를 지배하고도 전반까지는 고질적인 골결정력 문제로 경기를 풀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상대 수비수 주천제의 황당한 자책골로 선취득점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경기가 상당히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실제로 2차전에서 일본은 슈팅 23개를 난사하고도 끝내 중국의 골문을 여는 데 실패했다.
 
반대로 한국도 일본이 6골이나 몰아쳤던 홍콩전에서는 공세를 퍼붓고도 3골에 그쳤다. 상대팀의 수준이나 벤투호가 만들어냈던 찬스들의 숫자를 감안하면 더 많은 득점을 올렸어야 했다.
 
홍콩전에서 박지수-김문환의 조기 교체와 백승호의 풀백 투입도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박지수와 김문환은 둘다 벤투호 단골멤버로 월드컵 승선이 유력한 선수들로 평가받았다. 이들이 일찍 교체된 것을 두고 일본전을 염두에 둔 체력 안배 차원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이들이 홍콩전 전반에 보여준 잦은 패스미스와 느슨한 플레이 때문에 문책성 교체를 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표팀은 현재 수비라인의 최대 불안이 약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주전 센터백 라인인 김민재의 부상과 김영권의 노쇠화를 대비한 3번째 센터백 옵션이 아직 확실하지 않다. 풀백도 왼쪽에는 김진수-홍철 라인이 건재하지만, 오른쪽은 이용의 출전시간 감소-김태환의 부상 속에 이번 동아시안컵에서 선발했던 김문환과 윤종규도 벤투 감독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 중앙미드필더인 백승호의 파격 풀백 기용도, 벤투 감독의 의도된 플랜인지 아니면 해당 포지션에 가용자원이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임시방편이었는지는 해석이 분분하다.
 
이제 대표팀은 마지막 한일전만을 남겨두고 있다. 영원한 라이벌이자 아시아 강호인 일본은 한국이 이번 동아시안컵에서 실질적으로 제대로 된 정면승부를 통하여 전력을 점검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벤투 감독도 일본전에서는 더 이상의 실험보다는 최상의 베스트 전력을 가동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대표팀은 A팀과 연령대별 팀을 막론하고 한일전 전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 대표팀은 AFC U-23 챔피언십으로 0-3으로 완패하는 '타슈켄트 참사'를 당했고, 벤투호 역시 2021년 3월 일본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똑같은 스코어로 당한 '요코하마 참사'를 겪었다.
 
물론 벤투호는 타이틀이 걸린 대회도 아니었고 당시 정상적인 전력도 아니었기에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라이벌 일본에게 계속해서 심리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의 분위기와 여론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모리야스 감독이 이끄는 일본도 지난 중국전 무승부로 동아시안컵 우승 가능성이 멀어지며 자국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만큼, 한국전을 통하여 분위기 전환이 절실한 상황이다.
 
일본전 한 경기의 결과와 내용에 따라 이번 동아시안컵의 성과가 전혀 달라질 수도 있다. 벤투호 체제에서 어쩌면 마지막 동아시안컵 타이틀이자, 마지막 한일전이 될 수 있는 이번 경기를 통하여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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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안컵 한일전 벤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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