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 화폐인 달러는 전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경제 공동체로 연결된 오늘날에는 코로나 펜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미국의 경제정책도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미국의 기준금리가 변화하는 것은, 곧 다시 세계 경제를 흔드는 나비효과로 돌아간다.
 
스리랑카는 국가 부도를 맞이했고, 튀니지-파키스탄-페루 등으로 경제 위기는 확산되고 있다. 한국도 미국의 금리 인상 여파에 따라 최근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6%대로 상승했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75%에서 2.25%로 인상해야 했다. 유례없는 금리 인상과 빅스텝 단행으로 한국 경제는 다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경제를 흔드는 달러는 언제, 어떻게해서 이토록 강력한 지위를 갖게 되었을까. 7월 19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 56회에서는 미국 화폐인 달러의 변천사와 역사적 위상을 돌아봤다. 경제학자인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강연자로 나섰다.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독립 직후 미 합중국의 임시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는 미국 최초의 주조국(U.S MIint)이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독립 당시만 해도 미국에는 아직 화폐가 없었다. 식민지 시절 유럽에서 이주한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본국 화폐로 경제활동을 했다. 미국도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에는 영국의 화폐인 기니와 실링을 사용했으나 인구와 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어려움에 직면했다.
 
하지만 영국은 미국 식민지 정부가 화폐를 발행하는 것을 금했다. 당시 영국의 사회적 골칫거리였던 위조화폐 문제에 대한 고민도 원인이었다. 만유인력의 법칙 등을 통하여 과학자로 유명한 아이작 뉴턴은 영국 조폐국장까지 역임할 만큼 경제에도 큰 비중를 한 인물이었고, 동전테두리에 톱니 모양의 홈을 내는 색다른 아이디어를 도입하며 오늘날까지 위폐를 방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을 기점으로 1775년에는 미국이 영국에 독립을 선언하며 화폐 질서에도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수행할 군자금이 부족했고 세금징수체계도 아직 자리 잡히지 못했던 미국 독립정부는, 13개 주가 동참하여 통일된 지폐를 발행할 것에 합의한다. 이것이 미국 최초의 통일지폐로 불리우는 '콘티넨털 노트'다.
 
하지만 새 화폐가 자리잡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독립전쟁기간 3년간 약 2억 4천만 달러 어치에 이른 무분별한 지폐발행으로 콘티넨털 노트의 가치는 급락했다. 오늘날에도 미국에서 관용구로 쓰이는 'Not worth conitnental'라는 표현은 '한푼의 값어치도 없다'는 의미로 바로 콘티넨털 노트의 떨어진 가치를 풍자하는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어렵게 독립에 성공한 후에야 미국은 비로소 본격적인 화폐와 경제정책에도 나설 수 있게 됐다. 필라델피아-보스턴-뉴욕에는 미국 최초의 민간은행이 설립됐다. 조지 워싱턴 행정부에서 미국의 초대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미국 금융의 아버지' 알렉산더 해밀턴은 경제 안정화를 위하여 중앙은행 설립-국채발행으로 연방정부의 수입원 확보-통일된 화폐발행 등을 제시한다.
 
1792년 미국은 최초의 주조국을 설립하고 플로잉 헤어달러로 불리우는 금화와 주화를 발행하기 시작한다. 해밀턴은 주화 사용을 장려하고 시장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했다. 1791년 7월 4일에는 해밀턴이 주장한 미국 최초의 중앙은행(제1미국은행, 각 국가의 화폐발행과 통화량 조절권한을 가친 국책은행)이 설립된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정착은 순탄하지 않았다. 중앙정부의 영향력 상승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반대 여론의 우려 때문이었다. 제1미국은행이 20년만에 기한이 종료되며 폐쇄되고, 1816년 설립한 제2미국은행도 15년 만에 폐쇄되는 전철을 밟는다.

이후 미국은 약 30여 년간 중앙은행없이 경제활동을 이어갔고, 민간은행의 숫자가 급증한다. 남북전쟁 시기인 1860년에 이르면 민간은행의 숫자는 약 1500여 개까지 폭증하는데  당시 시중에 유통된 은행권의 종류는 무려 9000여 가지에 이르렀고, 약 5400여 종의 위조지폐까지 범람하면서 '화폐무법시대'를 맞이한다.
 
금본위제의 모순과 부작용 풍자한 <오즈의 마법사>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가뜩이나 복잡한 화폐체계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1861년 벌어진 남북전쟁이었다. 남북정부는 각자 전쟁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미국 최초로 정부가 공식 지폐를 발행한다. 당시 북측이 발행한 화폐는 녹색이라 '그린백'이라고 불렸고, 국가발행지폐라는 사실을 부각하기 위하여 당시 대통령이던 에이브러햄 링컨의 사진을 활용했다. 하지만 남북전쟁의 승리 이후 과도하게 발행된 그린백으로 물가가 폭등하고 화폐가치가 하락하자, 미국은 시중에 유통된 그린백을 대거 회수이후 소각해야 했다.
 
건국 이래 금은본위제를 채택해왔던 미국은 20세기로 접어들며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금본위제가 점차 정착됐다. 반면 은이 화폐로서의 가치가 사라진 금본위제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도 존재했다. 경기 침체시 미국의 하층민들은 금이 없어서 고소득자와 달리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1900년에 발간된 고전 명작 <오즈의 마법사>는 판타지 이야기속에 바로 당시의 미국 사회를 풍자한 소설이기도 하다. 주인공 도로시가 만나는 토네이도는 미국 동부에서 비롯된 경기침체를 상징하고, 미지의 세계인 오즈(OZ)는 금이나 은을 재는 무게 단위 온스를 의미한다.

주인공 일행이 찾아가는 에메랄드성은 미국의 화폐인 그린백을, 도로시의 동료인 허수아비는 농민, 양철 나무꾼은 산업노동자, 용기없는 사자는 정치인을 상징한다. 또한 도로시가 집으로 돌아가는 수단이 되는 은색구두는, 은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처럼 <오즈의 마법사>는 19세기 후반들어 화폐체제인 금본위제의 모순과 부작용을 풍자한 소설이라는 것.
 
하지만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사태는 미국인들의 경제 인식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온다. 지진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피해복구와 보험금 지출, 영국의 금리 인상 등이 겹치면서 미국은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졌다. 미국은 당시 경제를 콘트롤할 수 있는 중앙은행의 부재를 뼈저리게 절감하게 된다.
 
투자가 J.P모건은 개인 자본으로 약 3000만 달러를 투입하며 미국의 자본이 영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냈다. 모건은 "금융위기 때마다 개인에게 의존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이렇게 해서 77년 만에 다시 탄생한 것이 바로 연방준비제도(FED)다.
 
연준은 본격적으로 미국의 공식화폐인 달러를 발행하기 시작했고, 2022년 현재 총 7종류의 달러가 발행중이다. 다만 달러가 초기부터 강력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만 해도 아직까지는 국제적인 결제수단으로 금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미국 경제에 큰 호재된 두 차례의 세계대전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미국 경제에 있어서는 큰 호재로 작용했다. 1차 세계대전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통화량이 급증하고 금과 화폐간의 비율이 무너지면서 금본위제는 붕괴위기에 처한다. 막대한 양의 금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미국의 경제는 나날이 번창했다.
 
미국은 1930년대 세계 역사상 최악의 경기침체로 꼽히는 대공황을 맞이하며 극복하는 데는 2차세계대전이 큰 전환점이 됐다. 미국은 전쟁중 수출로 부를 축적하며 1930년대의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미국은 명실상부하게 대영제국을 넘어서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했다.
 
2차대전 종전을 눈앞에 둔 1944년, 미국의 주도하에 44개국들이 뉴햄프셔주 브래턴우즈에 모여서 탄생한 '브래턴우즈 체제'는, 새로운 국제통화와 통일된 세계경제 체제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기존의 금본위제를 대체하여 미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선정하는 금환본위제, 조정가능한 고환율제, 특별인출권 창출, 국제통화기금(IMF) 창설, 국제무역 확대 등이 핵심내용으로 포함됐다.
 
미국은 전쟁적자로 2차 대전 이후 달러 보유량이 적었던 유럽을 재건하기 위하여 '마셜플랜(1947-1951)'으로 불리는 4년간 유럽 16개국에 130억 달러를 지원하는 대외 원조 정책을 추진한다. 당시 조지 마셜 국무부 장관은 "미국이 세계의 정상적인 경제회복을 돕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안정도 평화도 보장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로마의 휴일>을 비롯하여 <쿠오바디스> <벤허> 등 유럽을 배경으로 만들어지는 고전영화의 걸작들도, 바로 이 마셜플랜의 지원금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적지 않다. 마셜플랜의 영향으로 유럽은 전후 복구에 성공하며 경제 호황의 기틀을 마련할수 있었다.
 
하지만 기축통화인 달러가 자리잡는 데는 몇 차례나 결정적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일단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는 과정에서 미국은 막대한 무역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었다. 1960년대부터 베트남 전쟁 등의 사건이 겹치며 미국은 보유한 금보다 많은 달러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금과 달러의 균형이 점점 악화되면서 다른 나라들은 차츰 이러한 미국의 행보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샤롤 드골의 '못믿을 달러' 발언

샤롤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1962년 연설에서 '못믿을 달러' 발언을 통하여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역할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드골은 "많은 나라들이 원칙적으로 달러를 금처럼 받아들인다. 미국에 다른 나라 등골을 빼먹으면서 공짜로 빚을 내주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달러의 모순에 빗대어 기축통화의 공급을 줄이면 세계 경제가 위축되고, 공급을 늘리면 가치가 떨어져 신뢰도가 하락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가리켜 '트리핀의 딜레마'라는 경제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1971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금태환 중지 정책을 기습적으로 발표하여 세계 경제가 충격에 빠진 '닉슨 쇼크'가 발생한다. 닉슨은 투기꾼으로부터 달러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기축통화로서 달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용도는 급락하고 위기론이 불거진다. 여기서 달러와 금가치 불균형의 문제점은 전세계 달러의 가치가 동반하락하고, 고정환율제도상 기축통화의 가치가 떨어질수록 타국에는 불리한다는데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하여 IMF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1976년 '킹스턴 체제'에서는 각국이 자기 나라의 환율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데 합의한다. 화폐의 가치는 자유시장의 원리에 맡기고, 세계는 금을 국제통화 시스템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 아이러니하지만 금태환 중지가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입지를 견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의 막강한 경제력이 달러에 큰 지위를 가져다준 셈이다.
 
2008 국제금융위기는 달러와 국제통화체제에 또 한 번의 충격을 가져다줬다. 세계 4대 은행이던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1929년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속도의 경기침체가 전세계를 강타했고 한국도 한때 경제위기에 휩싸였다. 미국의 위기가 언제든 세계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은 대공황 당시 통화정책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시장금리를 완화하고 연준위 자금으로 직접 기업 주식을 매매하는 등 전례없는 적극적인 1-3차 '양적 완화(미국 연준이 은행에만 돈을 빌려주는 법칙을 깨고 일반 기업에 직접 자금을 공급하여 통화량을 조절하는 것)'와 '헬리콥터 머니(미국내에 달러가 많이 돌도록 통화량 대폭 증대)' 정책 등을 추진했다. 당시 투입된 자금의 규모는 4조 5000억 달러(현재가치 한화 약 5000조 원)에 이른다.
 
양적완화 이후 치솟은 미국의 실업률은 6년 후인 2014년 절반 규모로 감소했고 2015년에는 경기회복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때 과잉공급한 달러는 경기 회복 이후 새로운 문제가 됐다. 미국 정부는 돈을 거둬들이면 경기침체, 놔두면 인플레이션이라는 딜레마가 처했다.
 
설상가상 여기에 2020년에는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은 역대 최대규모인 2조 2000억 달러의 경기부양 법안을 시행해야 했다.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1년도 안 되어 실책을 인정하고 '통화량을 줄이려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겠다'는 방안을 발표한다. 미국의 경제정책에 따라 전세계의 경제도 덩달아 들썩이고 있다.
 
현재 미국의 부채는 31조 4000억 달러(약 4경 원)로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고 인플레이션도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금리 인상은 전세계의 달러를 거둬들이고 인플레이션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결정이었다.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은 "강대국의 책임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미국은 이처럼 기축통화의 지위로 자국의 막대한 이익을 얻기도 하지만, 만성 무역적자라는 큰 비용도 치르고 있다.

현재의 달러 중심 통화체제가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는 섣불리 장담하기 어렵다. 급변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국제 경제의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하고, 그것이 우리가 달러를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 이유일 것이다.
벌거벗은세계사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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