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농구, 아시아컵 첫판서 중국에 12점 차 승리 한국 남자 농구대표팀이 지난 1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이스토라 세나얀에서 열린 2022 아시아컵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중국에 93­:81로 승리했다. 사진은 한국 남자 농구대표팀 추일승 감독.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 한국 남자농구, 아시아컵 첫판서 중국에 12점 차 승리 한국 남자 농구대표팀이 지난 1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이스토라 세나얀에서 열린 2022 아시아컵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중국에 93­:81로 승리했다. 사진은 한국 남자 농구대표팀 추일승 감독.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 연합뉴스

 
추일승호가 만리장성을 넘고 아시아 정상탈환을 위한 기분좋은 첫 발을 내딛었다. 추일승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 농구 대표팀은 7월 12일(한국시간) 자카르타 이스토라 세나얀에서 열린 2022 인도네시아 FIBA(국제농구연맹) 아시아컵 B조 1차전 중국과의 경기에서 93:81로 승리하며 첫 승을 신고했다.
 
한국농구가 중국을 A매치에서 제압한 것은 2018년 농구월드컵 예선전 이후 무려 4년 만이었다. 지난 5월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추일승 감독은 국내에서 열린 필리핀과의 평가전에 이어, 국제대회 공식 데뷔전에서도 첫 승을 거두며 쾌조의 3연승을 질주했다. 승점 2점을 얻은 한국은 바레인을 꺾은 대만과 함께 승점이 같지만, 골득실에서 뒤처져 2위에 올랐다.
 
4년 만에 'A매치 중국전' 승리


중국전 승리의 원동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중국의 갑작스러운 전력약화, 에이스 라건아의 눈부신 맹활약, 그리고 빅포워드 전술과 무한 로테이션으로 요약되는 추일승식 농구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강점은 높이였다. 한국은 과거에도 선수 개개인의 기량에서는 중국에 크게 밀리지 않았지만 압도적인 장신군단을 앞세운 물량공세와 리바운드 싸움에서 밀려 고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2023 FIBA 농구월드컵 아시아 예선에 참가한 중국 농구대표팀 내부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농구협회는 전력노출을 피하기 위하여 코로나에 확진된 선수들의 신상을 밝히지 않았지만, 아시아컵을 앞두고 대규모 엔트리 교체가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중국이 자랑하는 '트윈타워' 저우치(216cm)와 왕저린(213cm)이었다. 결국 베일을 벗고 나니 저우치는 아시아컵에 불참한 것으로 드러났고, 왕저린은 벤치에는 있었지만 한국전에 출장하지 않았다. 갑자기 핵심선수들을 잃은 중국은 전력과 팀분위기가 저하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엔트리 교체 이후 첫 상대였던 한국에 큰 호재로 작용했다.
 
물론 중국이 전력누수가 있었다고 해서 한국의 승리가 저평가당할 이유는 없다. 한국도 김선형, 이승현, 전성현, 여준석 등 주전급 선수들이 부상과 개인사정으로 대거 결장했기 때문이다.
 
저우치와 왕저린의 공백으로 가장 수혜를 입은 것은 역시 '대한건아' 라건아였다. 장신 선수들은 여전히 많았지만 중국에서 라건아를 제대로 견제할 만한 선수는 더 이상 없었다. 독보적이었던 라건아는 자신보다 월등히 큰 중국 빅맨들과 매치업을 힘과 스피드로 압살하며 골밑을 장악했다.
 
중국이 후반 새깅 디펜스와 더블팀으로 견제하자, 라건아는 침착하게 킥 아웃 패스로 동료들에게 오픈 찬스를 열어주는가 하면, 과감하게 3점슛을 시도하여 3개나 적중시키기도 했다. 시야가 넓고 중장거리 점퍼에도 능한 라건아이기에 가능했다. 라건아가 골밑에서 우직하게 중심을 잡아줬기에, 한국은 속공과 돌파, 3점슛 등 다양한 선택지를 병행하며 경기운영이 한층 수월해질 수 있었다.

라건아는 이날 무려 36분 37초를 출전하며 25점 14리바운드 3어시스트 1스틸을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양 팀 선수 중 최다 출전 시간과 최다 득점, 최다 리바운드 기록을 모두 독차지했다. 서장훈-김유택-하승진-김주성-오세근 등 그동안 대표팀에 여러 엘리트 토종빅맨들이 있었지만, 중국을 상대로 라건아만큼 지배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는 없었다.
 
특히 중국의 장신들을 골밑에서 힘으로 우직하게 밀어내고 바스켓카운트를 성공시킨 후, 근육질의 두 팔을 과시하며 포효하는 세리머니는, 팀의 사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린 이날 경기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장신 라인업과 로테이션 전략

또한 한국이 이날 후반 역전과 대량득점에 성공할수 있었던 데는 추일승 감독 특유의 장신 라인업과 로테이션 전략이 빛을 발했다. 추일승 감독은 KBL 사령탑 시절에도 다재다능하고 활동량이 많은 포워드를 적극 활용하는 전술이 돋보였다. 유망주 여준석과 이현중이 미국무대 도전 때문에 이번 아시아컵에 불참했고, 최준용이 파울 트러블로 중국전에서는 부진했지만 추일승 감독에게는 송교창-강상재-이우석 등 여전히 활용가능한 장신 스윙맨들이 풍부했다.
 
한국은 전반까지는 중국과 팽팽한 접전을 펼쳤으나 43대 45로 근소하게 끌려갔다. 하지만 후반 20분 동안 중국을 50대 36으로 압도했다. 이전의 중국전에서 항상 후반 뒷심이 부족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높이가 강한 중국을 상대로 무려 90점대 다득점을 뽑아낼 수 있었던 것은 신속한 공수 전환이 큰 힘을 발휘했다. 한국은 백코트를 비롯하여 라건아와 김종규까지 빅맨들도 모두 달릴 수 있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대표팀의 평균 신장은 196cm에 이르며 역대 최고수준이다. 이는 수비에서도 큰 힘으로 작용했다. 빅맨진에 장신이 부족하지만 운동능력이 좋은 장신 스윙맨들을 앞세워 상대의 볼핸들러를 강하게 압박하고 2대 2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도움 수비와 리바운드 가담을 통하여 라건아를 도왔다.

이날 경기에서 중국이 고전한 가장 큰 이유는, 예전처럼 한국을 상대로 골밑에서 높이의 우위를 활용한 '미스매치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확률적으로 차라리 외곽 찬스를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골밑에서 쉬운 2득점만큼은 절대 주지않겠다는 추일승 감독의 '선택과 집중' 수비 전략이 적중한 대목이다.
 
추일승 감독은 라건아를 제외하면 최대한 모든 선수들을 고르게 기용했다. 허훈이 15점 6어시스트로 펄펄 날았고, 외곽슛이 좋은 빅맨인 강상재가 3점슛만 4개 터트리며 13점 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대성도 11점 3어시스트 2스틸, 이우석은 4점 4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보내면서 투입하는 선수들마다 제몫을 해냈다. 

그동안 국제대회마다 신장의 한계로 외곽에서 볼을 돌리다가 3점슛이 터지면 이기고 침묵하면 지는 '양궁농구'에만 익숙해져있던 국내 농구팬들에게, 라건아와 빅포워드 전술을 앞세운 중국전 승리는 이전에 보기힘든 모처럼 묘한 쾌감과 전율마저 느끼게 했다.
 
다만 아시아 정상을 향한 도전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뿐이다. 중국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추일승호는 여전히 많은 불안요소 또한 안고 있다.
 
아킬레스건 염증을 안고있는 라건아는 체력관리가 절실하지만 중국전에서 4쿼터 초반을 제외하면 거의 쉬지 못했다. 중국전 수비에서 포스트를 어느 정도 봉쇄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대신 3점슛을 13개나 무더기로 허용한 장면 역시 아직 보완해야할 부분이다.

한국이 속한 B조는 당초 아시아 강호로 평가받는 중국이 1위가 유력하고, 한국이 대만-바레인과 2위싸움을 할 것으로 전망됐다. 예선에서 조 1위를 차지하는 팀은 8강에 직행하지만 조 2-3위는 12강 플레이오프를 통해 토너먼트 진출권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추일승호가 예상을 깨고 첫 경기부터 중국이라는 대어를 낚으면서 B조의 판도가 안갯속으로 빠졌다. 대표팀은 오는 14일 오후 5시 대만과 예선 2차전을 치른다. 대만이 바레인을 잡은 만큼 한국이 2차전에서도 대만까지 제압한다면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할 가능성이 커진다.

기분좋은 스타트를 끊은 추일승호가 한국농구의 '세대교체와 국제경쟁력 회복'이라는 오랜 과제에 희망의 청신호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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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컵 추일승호 농구한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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