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한화 이글스 ⓒ 연합뉴스

 
야구는 1회부터 9회까지 계속 이기고 있을 필요는 없다. 마지막 이닝만 이기고 있으면 충분하다. 한화 이글스가 이러한 야구의 묘미를 보여주며 드라마틱한 대역전승을 일궈냈다. 누구도 생각하지못한 '꼴찌'가 이뤄낸 반전이었기에 더욱 값지게 느껴졌던 '한 여름밤의 기적'이었다.
 
7월 7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 리그' 경기에서 한화는 NC 다이노스와 난타전 끝에 12 대 11로 승리했다. 한화는 6회초까지 1대 10으로 맥없이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지만 마지막 3이닝 동안 11점을 몰아치는 임청난 집중력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한화가 처한 상황은 '노답' 그 자체였다. 한화는 지난 6월에는 10연패 수렁에 빠지며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3년 연속 두 자릿수 연패라는 불명예 신기록을 수립했고, 승률 3할 대로 꼴찌까지 추락했다. 2019-2020년에 이어 구단 역사상 2번째로 3년 연속 최하위에 그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간신히 10연패를 탈출한 6월 24일 이후 최근 10경기에서도 2승 8패의 부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불과 한계단 위인 9위 NC와 '꼴찌대첩'에서 맥없이 스윕 위기에 놓이며 겨가가 벌어졌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 구단의 비효율적인 운영 속에 수년째 기약없는 리빌딩에 대한 팬들의 실망감도 갈수록 커져갔다.
 
이날도 6연패에 빠져있던 한화는 '연패 스토퍼' 장민재를 선발로 내세웠다. 장민재는 9연패 중이던 지난 5월 15일 대전 롯데전(5이닝 3실점), 10연패 중이던 6월 24일 대전 삼성전(5.1이닝 무실점)에서 연이은 호투로 팀의 연패 사슬을 끊어낸 바 있다. 이날도 지난달 중순 하주석이 징계로 1군 말소된 이후엔 임시 주장으로 선수단을 아우르기도 했다. 장민재는 NC전에서도 5이닝 2실점 호투로 팀이 2-1로 팽팽한 접전을 펼치는 흐름을 만들고 마운드를 내려오며 일단 선발로서의 몫은 다했다.
 
하지만 장민재가 물러나자마자 NC는 6회 한화 불펜을 공략하는데 성공하며 빅이닝을 만들어냈다. NC는 한화의 두 번째 투수 이민우를 상대로 마티니와 노진혁의 연속 안타, 이명기의 기습번트에 이은 내야타로 무사만루를 만들었다.
 
NC가 박준영의 적시타와 김응민의 내야안타로 점수를 추가했다. 한화 벤치는 주현상을 투입하여 강타자 손아섭을 삼진으로 돌려세웠지만 곧이어 곧이어 권희동의 우익수 희생플라이와 박민우의 2타점 2루타, 양의지- 마티니-노진혁의 연속 안타가 더해지며 한 이닝에만 무려 8점을 뽑아내 점수차를 순식간에 10-1까지 벌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승부는 사실상 NC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였다. 한화 벤치와 팬들에게는 숨길 수 없는 암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한화는 6회말 1사 1, 3루에서 김태연의 적시타, 1사 만루에선 권광민의 희생플라이와 마이크 터크먼의 적시타로 3점을 추격하며 점수차를 좁히자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한화는 7회말엔 다시 1사 1, 2루에서 하주석의 적시타로 1점을 만회했고, 다시 김태연의 볼넷으로 인한 2사 만루에서 권광민의 내야 안타와 터크먼(2타점)-유로결의 적시타까지 터졌다. 점수차는 10-9, 순식간에 1점 차까지 추격했다.
 
NC는 8회초 다시 1사 만루 찬스를 얻었지만 노진혁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더 추가하는데 그쳤다. 2사 1, 2루에서 마운드에 오른 강재민이 이명기를 2루 땅볼로 돌려세우며 중요한 고비를 넘겼다.
 
기세가 오른 한화 타선은 8회말 반격에 나서 정은원의 볼넷을 시작으로 김인환의 투런포가 터지며 11-11, 마침내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다시 1사후 하주석의 안타, 김태연의 볼넷으로 한화가 역전 찬스를 맞이했다.

NC는 다급하게 원종현을 마운드에 올렸으나 한화는 박상언이 좌중간 적시타를 만들면서 기어이 승부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이날 경기에서 1회부터 내내 끌려다니던 한화가 경기 시작 이후 무려 4시간 만이자, 그것도 마지막 이닝에 처음으로 리드를 잡는 순간이 나왔다는게 더욱 극적이었다.
 
한화는 아슬아슬한 1점차 리드에서 9회초 강재민을 다시 마운드에 올려 마무리를 맡겼다. 강재민은 박준영-김주원-천재환으로 이어지는 NC 타선을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처리하고 약 4시간 20분간 펼쳐진 명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화는 홈팬들 앞에서 한 시즌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드라마를 쓰며 극적인 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6회까지만 보고 경기장을 빠져나왔거나 TV 채널을 돌린 팬들이라면 이 명승부를 놓친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할 만했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도 경기 후 "한국에 온 이후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경기였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수베로 감독은 "6연패 하고 있던 팀이 경기 흐름을 내줬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하나로 뭉쳐 정말 대단한 승리를 만들어냈다"면서 "김인환과 하주석 등 타자들이 끈질긴 승부를 통해 좋은 타격을 보여줬고, 강재민이 아웃카운트 4개를 깔끔하게 막아준 것도 중요한 승부처였다. 모든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집중해 준 것을 칭찬하고 싶다"며 선수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6연패 사슬을 끊어낸 한화는 25승 1무 53패를 만들었다. 충격적인 패배로 4연승 행진이 끊긴 NC(31승 2무 44패)와의 격차는 7.5게임이다.
 
극적인 승리로 연패는 끊어냈지만 한화는 아직 갈길이 멀다. 사실 이런 경기는 그야말로 1년에 1~2번 나올까말까한 이변에 가깝다. 한화의 전력은 여전히 연승보다 연패에 빠질 가능성이 더 높은 팀이라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그런데 가장 두려운 것은 패배 그 자체보다, 패배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10연패를 탈출했던 지난달 삼성전에서도, 이날 NC전에서도, 변함없이 한화를 응원하는 팬들은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도전하는 한화 선수들의 투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고, 연패를 끊어내고나서는 눈물을 훔치는 팬들도 있었다.

팬들이 한화 선수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당장의 성적보다도 프로다운 자세에 있다. 승리의 맛이 이렇게 짜릿하다는 것을, 야구에서 단 한 경기만으로 팬들에게 1승과 순위 이상의 감동을 얼마든지 줄수 있다는 것을, 한화 선수들이 남은 시즌 동안에도 이날의 짜릿한 승부를 복기하며 가슴에 새겨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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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글스 역전승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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