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오후 2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기자회견에서 올해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진형 프로그래머.

6월 14일 오후 2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기자회견에서 올해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진형 프로그래머. ⓒ 부천영화제 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부천영화제)의 상징적인 섹션이었던 '금지구역'이 사라진다. 국내에서 개봉하기 어려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영화로 구성돼 주로 심야상영으로 볼 수 있었던 '금지구역'은 2006년 등장한 이후 꽤 많은 관심과 폭발적 반응을 얻으면서 장르영화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16년 만에 소임을 마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된 26회 부천영화제의 특징은 프로그램 메뉴의 변화에 있다. 지난해 25회를 끝으로 새로운 25년을 준비하는 부천영화제의 변신이 눈에 띈다. 경쟁부문인 '부천 초이스'와 '코리안 판타스틱'은 유지하고 금지구역과 함께 월드 판타스틱 블루, 월드 판타스틱 레드, 패밀리 존이 없어졌다. 모든 섹션이 완전히 새로운 옷으로 바꿔 입은 것이다(관련기사 : OTT 콘텐츠에 홀로그램 등장까지, 부천영화제의 변신).
 
대신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매드 맥스'를 비롯하여, '아드레날린 라이드', '메탈 누아르', '메리 고 라운드', '저 세상 패밀리', '엑스라지(XL)' 등 영화에 대한 감각을 연상시키는 이름으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관객이 개인 취향에 따라 최애 영화를 고를 수 있도록 배려한 것.
 
박진형 프로그래머는 '금지구역'을 없앤 것에 대해 "(판타스틱 영화의)상향 평준화"를 거론했다.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등을 통해 다양한 장르물이 호평을 받았고, 그만큼 수준도 많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따로 금지구역을 설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는 게 프로그래머들의 의견이었다.
 
부천영화제는 금지구역을 아쉬워하는 관객들을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심야상영이 시작하는 8일 'Farewell, Forbidden! : 금지구역을 보내며' 심야토크를 준비한 것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대표하는 섹션이자 장르 영화제로서의 시그니처이기도 했던 '금지구역'을 떠나보내게 된 프로그래머들의 소회와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으로 준비됐다.
 
박진형 프로그래머는 "(7월) 8일 금요일 밤 12시부터 시작하는 상영에 오시면 금지구역을 보내는 이유 등을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호러에 하드코어 모은 '아드레날린 라이드'
 
 부천영화제 상영작 <노이즈>의 한 장면

부천영화제 상영작 <노이즈>의 한 장면 ⓒ 부천영화제 제공

 
새롭게 등장한 '매드맥스'에서는 세계 장르 거장의 능란함과 깊이를 보여주는 신작들이 소개된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만화적 상상력의 끝판왕인 코믹범죄극 <두더지의 노래 파이널>, 후지와라 타츠야와 마츠야마 켄이치 주연, 연쇄살인마의 등장으로 평화로운 마을에 일어나는 소용돌이를 그린 히로키 류이치 감독의 <노이즈>, 연쇄살인범의 서늘한 마음의 풍경을 그린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의 <사형에 이르는 병> 등 반가운 일본 중견 감독들의 신작들을 만날 수 있다. 
 
다수 영화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데이빗 린치 감독과 그의 <오즈의 마법사>에 대한 집착증을 깊이 파고드는 알렉산더 O. 필립 감독의 신작 <린치/오즈>,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거장 필 티펫 감독이 보여주는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포스트-묵시록 시리즈의 완결편인 <매드 갓> 등 베테랑 감독들의 신작들도 관객들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아드레날린 라이드'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오싹한 소름이 돋고 심장의 피가 솟구치는 정통 호러, 하드코어, 액션 장르의 최신작을 모아 놓은 마니아를 위한 잔칫상.
 
오늘날 대만인의 모럴과 감성에 점액과 헤모글로빈을 뒤범벅한 좀비 영화의 끝판왕 <곡비>, 하나의 몸에 여러 가지 인격을 주입시켜 수사를 해나가는 액션스릴러 <복신범>, 프루트 챈 등 홍콩 감독들의 가장 홍콩스러운 호러 이야기 <오컬트 이야기> 1과 2, 필리핀 아트호러 <리루트>, 한 만화가의 악몽을 동창생과의 여행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낸 <밤 저편으로의 여행>등 관객의 등골을 서늘하게 할 영화들을 채웠다. 주로 강심장을 가진 관객들이 선택하는 영화 25편을 소개한다.
 
 부천영화제 상영작 <그랑 쥬테: 은밀한 몸짓>

부천영화제 상영작 <그랑 쥬테: 은밀한 몸짓> ⓒ 부천영화제 제공

  
 부천영화제 상영작 <도쿄 불바다>

부천영화제 상영작 <도쿄 불바다> ⓒ 부천영화제 제공

 
'메탈 누아르'에서는 반짝이는 상상력과 스타일을 녹여낸 SF 및 하드보일드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소개한다. 도쿄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파괴적인 청춘들의 에너지를 그린 <도쿄불바다>, 한 눈 덮인 시골 학교를 습격한 테러리스트와 대치하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반응을 풍자적으로 그린 <학교습격>, 마치 한시(漢詩)를 쓰듯 간결하고 함축적인 묘사와 강렬한 연기로 정점을 찍는 <만주의 호랑이>, 쿠르드족 마을 잘라바의 악마의 존재를 둘러싼 헌병 상사와 구마사의 대립을 그린 <잘라바> 등이 주요 상영작이다.
 
마니아 영화 <미라클>은 젊은 예비 수녀를 향한 사회와 남성들의 약탈적 시선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젠틀>은 완벽한 몸을 위해 고된 훈련을 마다않는 여성 보디빌더의 고된 삶을 리얼리즘적 카메라와 판타지적 요소의 결합으로 담아낸다. 오랜 시간 떨어졌다가 재회한 모자의 치명적인 관계를 다루는 <그랑 쥬테: 은밀한 몸짓>은 올해 부천영화제의 상영작 중 가장 논란이 될 만한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부천 총아 백승기 감독, <잔고 분노의 적자>로 귀환
 
'메리 고 라운드'는 마니아와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산뜻하고 톡톡 튀는 코미디, 판타지, 드라마의 파노라마다. 상대적으로 자극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영화들을 모아 놨다.

타임루핑 코미디 <연못괴담>은 린허쉬엔의 코믹연기가 압권이고, 대만 전통 인형을 이용한 액션서사인형극 <반신: 전설의 시작!>은 놀라움과 탄성을 자아낸다. 액션활극 <지옥의 화원>과 AV여배우의 레슬러 변신기 <여배우, 레슬링하다!>는 몸을 사리지 않는 여배우들의 활약을 보여준다. 재밌는 장르영화를 찾는 관객은 '메리 고 라운드' 목록에 있는 19편의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면 된다.
 
 부천영화제 상영작 백승기 감독 <잔고 : 분노의 적자>

부천영화제 상영작 백승기 감독 <잔고 : 분노의 적자> ⓒ 부천영화제 제공

 
부천영화제의 총아로 불리며 C급 영화의 대표주자를 자임하는 백승기 감독도 신작을 준비했다. 연출작이 모두 초청될 만큼 부천영화제의 사랑을 듬뿍받고 있는데, 전작 <인천스텔라>에 이어 신작 <잔고: 분노의 적자>로 부천을 뒤집어 놓을 채비를 갖췄다. <잔칫날>로 따뜻한 감성을 선보였던 김록경 감독 신작 <진주의 진주> 역시 기대된다.
 
'저 세상 패밀리'는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섹션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예전 '패밀리 존'을 넓혔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각종 요괴가 등장하는 좌충우돌 모험극 <요괴대전쟁: 가디언즈>, 베트남 최초의 SF가족영화로 올해 선댄스에 초청받아 화제가 된 <마이카>, 인도 불가촉천민 출신의 어린이가 학교에 들어가기까지의 고난과 성장을 그린 <학교에 가고 싶어>등 감동적인 영화가 주를 이룬다. 전체관람가 등급 영화로 온 가족이 함께 보기 좋은 영화들만 엄선했다.
 
'스트레인지 오마쥬'는 이상하고 기괴한 B급 정서로 무장한 불멸의 걸작들로 <조 다마토의 붉은 지옥>은 호러에서 하드코어 포르노까지 담고 있는 작품이다. 한국영화들도 돋보이는데, 가장 많은 영화를, 가장 짧은 시간에 찍었던 남기남 감독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 천년환생: 월하의 공동묘지 2 > 디지털 복원 버전이 상영된다.

지난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신정원 감독의 < 시실리 2km > 4K 복원 버전 역시 놓칠 수 없다. 더불어 시나리오만 남은 고전영화를 낭독공연 형식으로 되살린 백재호 감독의 <붉은 장미의 추억>도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엑스라지'는 단편 영화들의 향연이다. 장편영화가 포착하지 못하는 폭넓은 이야기와 세계관을 담은 단편영화만의 매력으로 가득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장르영화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국내외 신진 감독들의 보석 같은 단편들을 모은 섹션으로 29편의 해외 단편, 역대 최고인 ,447편의 지원작 중 치열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27편과 7편의 괴담 단편 지원작 등을 포함한 총 37편의 한국 단편들이 소개된다.
 
특히 이옥섭 감독의 신작 단편 <러브빌런>과 구교환 감독의 <대리운전 브이로그>가 선보이고, 카메라 앞 혹은 무대 위에 선 불안과 마침내 이를 극복하고 도약하는 예술가의 내면을 예민하게 포착한 배우 문근영의 첫 연출작 <심연>, <현재진행형> <꿈에 와줘> 등 3편이 스크린에서 최초로 소개된다.
 
BL(Boy's Love)장르 특별전 준비
 
 부천영화제 배우 특별전 '설경구는 설경구다'

부천영화제 배우 특별전 '설경구는 설경구다' ⓒ 부천영화제 제공

 
이밖에, 배우 특별전은 설경구가 주역이 됐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들의 수작이 공개된다. 사랑하는 소년들의 이야기, 이른바 BL(Boy's Love)장르의 작품들도 별도로 준비했다.

콘텐츠계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BL장르는 어느 날 갑자기 팬들만 알던 음지의 영역에서 폭발적인 구매력과 충성도를 지닌 강력한 팬덤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돼 주목받고 있다. 퀴어코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측면이 있는데, 2020년 황다슬 감독의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예매 시작 수 초 만에 매진을 기록하며 그 해 최고 화제작 중 한편으로 BL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엿보게 했다.

한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오는 7월 7일~17일까지 부천시청 잔디광장·어울마당·판타스틱 큐브·한국만화박 물관·CGV소풍·메가박스 부천스타필드시티에서 개최되며, 일부 작품은 온라인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부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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