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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그 모두에 기생하는 놈.' 우리네 삶을 불편하면서도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연을 깊이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확인된 생물 약 800만 종 가운데 대략 40퍼센트가 기생충이다. 태고 이래로 기생은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다.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는 우리 조상이 운 좋게 얻은 기생충이었다. 초기에는 공생 관계였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세포 내에 분리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러시아의 전통 공예 중에 나무로 만든 마트료시카(Matryoshka)라는 인형이 있다. 마티(엄마)에서 유래한 말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데 뚜껑을 열면 그 속에 또 작은 인형이 있고 이것이 계속 이어진다. 진딧물은 엄청난 번식 능력을 가진 곤충으로서 마트료시카를 닮은 무성생식과 짝짓기를 통한 유성생식을 둘 다 하는 종이다.

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여 세대를 이어가는데 먼저 전자를 살펴보자. 겨울이 지나 알에서 깨어난 암컷은 새순이 나와 한참 물이 오를 시기의 식물에 달라붙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암놈의 배 속에 이미 새끼가 들어차 있기에 꽁무니에서 유충이 태어난다. 즉, 교미 없이 암컷만 대량으로 복제하여 번식한다.
 
유성 생식과 더불어 무성 생식으로 세대를 이어간다.
▲ 진딧물 군락 유성 생식과 더불어 무성 생식으로 세대를 이어간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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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풀줄기에 빽빽하게 자리하여 즙액을 빨아 먹고 사니 초본식물의 생장을 저해하며 바이러스성 질병을 일으킨다. 먹이 식물이 부족해지면 날개 달린 진딧물을 출산하여 다른 곳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한다. 단풍이 물들어 갈 때쯤이면 날개 가진 수컷이 태어나서 다른 암놈과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다. 즉, 환경이 우호적일 때는 무성생식으로 빠르게 번식하고 겨울이 찾아올 즈음이면 알로 월동하여 이듬해를 기약한다.

진딧물에게 불임시술을 하는 개미

진딧물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단물을 받아먹기 위해 개미가 보초를 서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들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보면 공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생에 가깝다. 독한 개미산을 뿌리며 사나운 턱으로 공격자를 물어뜯는 개미지만 은근하게 침투하는 꽃등에를 방어할 수는 없다. 알에서 깨어난 꽃등에류 애벌레는 개미 집단과 같은 페로몬을 분비하여 동족으로 위장하고 진딧물을 잡아먹는다.

꽃등에는 여러 종류의 꽃에서 화분 매개 곤충으로서 활약하기에 영명으로도 꽃파리(flower fly)라고 불린다. 벌을 의태했지만 침이 없어 쏘지는 못한다. 곤충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벌인 줄 알고 피하므로 흉내내기는 벌레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셈이다. 사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벌과 꽃등에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벌을 흉내낸 호리꽃등에가 정지비행.
▲ 호리꽃등에의 호버링 벌을 흉내낸 호리꽃등에가 정지비행.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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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기에는 어설픈 흉내내기지만 꽃등에가 지금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작은 몸에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덩치가 클수록 벌을 정교하게 의태한다. 파리만큼이나 조그마한 꽃등에는 계륵과 같으므로 완벽하게 의태를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천적들은 영양가 낮은 작은 곤충을 잡아먹으려고 벌에 쏘일 위험을 무릅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EBS 다큐프라임 <비밀의 왕국>에서는 개미집꽃등에의 비밀스런 생활사를 보여주고 있다. 어미는 주변 공원이나 산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곰개미의 둥지에 10여 개의 알을 낳는다. 일주일 후 부화한 애벌레는 납작한 찐빵 모양을 하고 있으며 곰개미와 같은 페로몬을 풍기고 개미굴에 침입한다. 피부에 돋아난 실핏줄을 이용해 물기를 빨아들이며 곰개미 애벌레를 잡아먹고 성충으로 자라난다.

관련 연구가 진행되면서 개미와 관련된 새로운 발견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개미는 진딧물을 사육하며 단물을 얻는데 한 집단이 수확하는 설탕이 1년에 대략 10~15kg 정도라고 한다. 개미는 진딧물을 소 떼처럼 몰며 다른 식물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날개를 잘라낸다. 더 사악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은 화학 물질을 내어서 날개 달린 진딧물이 태어나는 것을 막는다. 이는 개미가 진딧물에게 행하는 불임시술이라고 볼 수 있다.
 
페로몬을 풍겨 개미로 위장한 꽃등에 애벌레가 진딧물을 잡아먹고 있다.
▲ 개미가 진딧물, 꽃등에의 삼각관계 페로몬을 풍겨 개미로 위장한 꽃등에 애벌레가 진딧물을 잡아먹고 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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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가 진딧물을 키우면 식물은 잘 자라지 못한다. 개미가 성하지 못하도록 자연의 평형을 유지하는 존재로는 곰이나 개미핥기 같은 몇 종의 포유류도 한몫한다. 미국 콜로라도의 야생 곰은 수시로 개미집을 부수고 개미를 먹어 치우며 개미핥기는 하루에 3만여 마리의 개미 식사를 즐긴다. 그 결과 개미의 수는 줄어들고 무당벌레가 맹활약을 하므로 진딧물의 피해는 감소한다.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건조한 지역에서는 개미가 지렁이를 대신하여 밀농사를 돕는다. 살충제를 뿌려 개미를 제거한 경작지와 그렇지 않은 밭의 수확량을 비교했는데 그 차이가 무려 1/3을 넘는다. 개미굴이 수분과 질소를 저장하기 때문에 수확량이 월등히 높았다. 아울러 개미가 활동하는 밭에서는 잡초가 절반이나 줄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사진은 글쓴이의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개미, #기생, #꽃등에, #의태, #진딧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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