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한국에서 한국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신작 <브로커>는 그의 영화가 다뤄온 본질적인 주제인 '생명'과 변형된 형태의 대안가족을 보여준다. 소재로 보면 그에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어느 가족>의 전편을 보는 기분이다. <어느 가족>이 완성된 대안가족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브로커>는 어떻게 상처를 지닌 이들이 대안가족으로 뭉치는지 보여준다. 그 시작은 베이비박스다.
성당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파는 인신매매범인 상현과 동수는 우성이란 아기를 매매하려던 중 문제가 발생한다. 아기 엄마인 소영이 마음을 바꿔 성당에 찾아온 것이다. 두 사람을 신고하겠다는 소영한테 상현은 아기를 판 돈을 나누자고 제안한다. 첫 매매의 실패 후 네 사람은 범죄를 위한 여정을 떠난다. 고아원 소년까지 합류하면서 다섯 사람은 마치 가족과도 같은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간다.
소재와 구성의 측면만 보자면 <어느 가족>과 흡사하다. 어두운 과거를 지닌 이들이 대안가족으로 뭉친다. 인신매매를 코믹하고 부드러운 질감으로 다루다 살인과 연결되며 어두운 질감을 지닌다. <어느 가족> 역시 절도를 생계수단으로 가르치는 가족의 모습을 코믹하게 다루다 이들의 과거에 살인과 납치가 연관되었음을 보여주며 극에 무게감을 더했다. 어찌 보면 감독 전작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 존재하는 세 개의 박스
주제에 있어서도 확장을 보이는데 그 핵심소재가 베이비박스다. 감독은 이 영화에 세 개의 박스가 존재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첫 번째가 베이비박스고 두 번째는 상현의 차이며 세 번째는 공동체로 이뤄진 사회다. 우성이 처음 들어간 박스는 베이비박스다. 베이비박스는 아기가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집처럼 넓고 따뜻하지는 않지만 다른 박스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닌다.
상현의 차는 그 가능성을 실현시켜주는 장소다. 그들의 여정은 표면적으로는 인신매매이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향한 애정과 신뢰를 쌓게 된다. 여기에 상현 일당을 추적하는 형사 수진의 차 역시 중요한 박스다. 수진은 소영이 아스팔트 위에 둔 우성을 베이비박스에 넣은 인물이다. 소영은 우성이 향할 세상이란 박스를 따뜻하게 만들고자 하는 건 물론 결점을 지닌 상현 일행의 조력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제목인 '브로커'는 표면적으로는 인신매매 일당을 지칭한다. 그 이면에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개척자 또는 구원자의 의미가 강하다. 소영과 우성, 동수와 소년을 완벽하지 않지만 위태롭지 않은 박스로 향할 수 있도록 이끄는 브로커가 상현이다. 이 작품은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 되는 순간을 조명한다. 모든 캐릭터를 구원자로 설정하며 생명에 대한 가치에 주목하게 만든다.
관람차 장면에서 소영은 동수에게, 동수는 소영에게 구원이 되어준다. 고아원 출신의 동수는 소영을 통해 어머니를 이해하고, 아이를 버렸던 소영은 동수를 통해 미래의 우성에게 구원을 받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소영이 불 꺼진 방 안에서 모두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장면은 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 작품에는 세 번의 어둠이 등장하는데 이 어둠 속에서 캐릭터들은 모두 진심을 말한다.
이 장치는 소영의 대사가 지닌 힘을 극대화시키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한다. 그의 초기작 <환상의 빛>과 <원더풀 라이프>는 삶이 지닌 가치에 대해 말한다. 가족영화는 희로애락을 통해 인생에 대해 말한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추억 속에는 따뜻함이 담겨 있고 이 질감은 생명에 대한 가치로 귀결된다. 물은 모든 생명의 보고와도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 이 작품은 물을 통해 그 구원을 실현한다.
어색했던 상현 일행의 분위기가 바뀌게 되는 건 세차장 장면에서다. 차 안으로 물이 들어온 순간 이들은 마치 가족처럼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현이 세탁소를 운영한다는 점은 그가 모두를 구원으로 이끄는 브로커가 될 것이란 점을 암시한다. 꾸준히 작품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브로커>는 그의 작품세계가 지닌 본질과 관객들을 연결시켜주는 '브로커'와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