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영화 <선산>으로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문에 초청된 정형석 감독(왼쪽)과 올레나 시도르추크(Olena  Sydorchuk)

단편 영화 <선산>으로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문에 초청된 정형석 감독(왼쪽)과 올레나 시도르추크(Olena Sydorchuk). 팔목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상징하는 팔찌를 차고 있다. 올레나 시도르추크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 이선필


'이방인 모습을 한 고려인 후손이 선산을 찾는다'는 어찌 보면 소소한 사연의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아 관객과 만나고 있다. 연기와 연출 활동을 함께 하며 장편 <여수 밤바다> <성혜의 나라>(한국경쟁 부문 대상)로 전주를 찾았던 단골손님 정형석 감독의 신작 <선산>이다. 29일 오후 전주 완산구 모처에서 정 감독과 주연 배우 올레나 시도르추크를 만났다.
 
<선산>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나타샤(올레나 시도르추크)가 한국으로 귀화 후 자신을 시조 삼아 가족묘를 조성할 땅을 구하던 중 한 노파와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울주산악영화제 제작 지원 프로그램인 '울주 서밋' 선정작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엔 '코리안시네마' 섹션에 초청됐다.
 
"애초에 시작이 고려인은 아니었다. 이주민이 한국에서 겪는 일에 대해 생각하다가 지금의 설정이 나온 것이다. 한국 역사 또한 이주의 역사가 있기에 정서적으로 맞지 않나 싶었다." (정형석 감독)
 
영화에서 나타샤는 나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고 스스로 신촌 나씨라고 소개하며 선산 땅을 구할 정도로 한국 문화에 애착이 강하다. 반면, 땅을 내놓은 노파(허진)는 결혼한 아들 식구의 성화에 못이겨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중이다. 이를 통해 국적과 문화,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질 법하다. 영화에서도 노파는 진짜 한국인이 무엇인지 나타샤에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
 
"과거엔 피부색, 국적 등을 구분해 관계를 맺곤 했는데 이젠 모든 게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만큼 국제화됐잖나. 한국에서도 다문화 가정이 빠르게 생기고 있다. 이 흐름에서 국적이나 인종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거지. 나타샤는 한국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할머니는 한국을 떠나려 한다.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정형석 감독)
 
올레나 "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힘든 느낌 담겨 있어"

나타샤를 연기한 올레나는 올해로 7년 째 한국에 머물고 있는 전문 모델이다. 여행 왔다가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으로 한국 연예계에 데뷔했고, 지금은 다양한 매체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선산>은 그의 영화 연기 데뷔작이기도 하다.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정 감독이 배우를 발견해 접촉했고, 출연이 성사됐다. 20여 명의 외국인 배우를 만나던 중 감독은 우크라이나 출신인 "올레나의 선한 이미지가 좋았다"고 말을 보탰다.
 
"꽤 많이 찾아봤다. 그러다 우연히 올레나의 영상을 봤는데 해맑고, 한국말로 소위 넉살이 좋더라. 연기 경험이 없었지만 설정 자체가 외국인인 만큼 너무 한국말을 잘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사전에 많이 만나서 합을 맞췄다. 상대역인 허진 선생님과도 맞춰보곤 했다." (정형석 감독)
 
"SNS 메시지를 통해 감독님에게 연락 왔고 영화 대본을 봤는데 마음에 들었다. 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힘든 느낌, 아픈 느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이라고 하니까!(웃음) 우크라이나에도 한국처럼 선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인을 기리고 함께 음식을 먹는 문화가 있다. 근데 대본을 이해하는 데 많이 어려웠다. 감독님에게 많이 물어보면서 연기했다." (올레나 시도르추크)

 
이방인으로서 겪은 일종의 소외감, 외로움 자체는 올레나 또한 깊이 이해하고 있는 감정이었다. "영화 내용이 실제 저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며 그는 "한국에서 어딜 가든 외국인이기에 한국어로 대화하려 해도 먼저 영어로 말씀하시더라. 한국문화를 좋아하지만 외국인이라 먼저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게 있다"고 말했다.
 
극단 드림시어터컴퍼니 예술 감독이기도 한 정형석 감독은 오랜 무대 연출 경험으로 배우의 능력치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데 익숙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올레나 시도르추크와의 작업 또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극적 정서를 뽑아내기 위해 나름의 배려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코로나 팬데믹19 상황 때엔 전주를 찾지 못했던 정형석 감독은 올 가을 새로운 장편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고 한다. 최근엔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백이진(남주혁)을 실랄하게 뭉개는 김학규 국장을 연기하며 의도치 않게 알아보는 팬들도 생겼다고. "3년 만에 전주에 왔는데 앞으로 계속 오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며 그는 "정말 단골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단편 영화 <선산>으로 전주국제영회제를 찾은 우크라이나 출신 주연 배우 올레나 시도르추크(왼쪽)와 미술 작가로 활동 중은 마리아 첼노주코바.

단편 영화 <선산>으로 전주국제영회제를 찾은 우크라이나 출신 주연 배우 올레나 시도르추크(왼쪽)와 미술 작가로 활동 중은 마리아 첼노주코바. ⓒ 이선필

 
인터뷰 말미 전쟁 상황인 우크라이나에 대해 배우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운 질문에 올레나 스도르추크는 "우크라이나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난다. 역사가 오랜 나란데 지금의 전쟁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러시아 채널을 틀면 우크라이나가 마치 아주 없는 나라인 것처럼 말한다"고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우리나라의 미술관, 문화재, 가정집들이 폭탄으로 많이 손상됐다. 제가 정말 바라는 건 러시아 국민들도 뉴스를 제대로, 가려 보셔서 진실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조국을 위해 뭔가 행동하는 일이다. 지금 시대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전쟁이 나서 사람들이 갑자기 죽는 게 말이 안 된다. 이건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미래를 생각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나. 우크라이나 상황을 생각하면 많이 도와주시고 대사관에 돈도 보내주시는데 정말 감사하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무기 지원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지지 성명을 했는데 우선 감사하다. 이 자릴 빌어 제가 이렇게 말할 기회가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올레나 시도르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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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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