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석

은희석 ⓒ 서울 삼성 썬더스 농구단


올시즌 프로농구 최하위에 그친 서울 삼성 썬더스가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삼성 구단은 지난 8일 은희석 연세대학교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은희석 신임 감독은 농구 명문 경복고와 연세대를 거쳐 2000년 프로농구 드래프트 전체 5순위로 안양 SBS(현 KGC인삼공사)에 입단했다. 대학 시절에는 서장훈-조상현-조동현-황성인 등 쟁쟁한 멤버들과 함께 연세대학교의 최전성기를 이끌며 '농구대잔치 세대'의 막내급 학번(96학번)이었고, 프로무대에서는 데뷔부터 은퇴할때까지 오직 안양 한 팀에서만 '원클럽맨'으로 활약했다.
 
은희석은 장신 가드로서 포인트가드에서 때때로 파워포워드와 센터까지도 소화할만큼 다재다능한 '멀티플레이어'로 활용됐다. 하지만 바꿔말하면 고교시절 전국 랭킹 1위까지 기록했던 잠재력에 비하면 성인무대에서는 한 포지션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주전과 식스맨을 오가는 데 만족해야했다.
 
선수생활 후반부에는 장기계약이후 이어진 부상과 부진 때문에 먹튀 신세를 면하지 못해 프랜차이즈 선수임에도 팬들에게 그리 높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 하지만 팀내에서는 베테랑으로서 솔선수범하여 어린 선수들이 많던 팀의 분위기를 잘 이끌었다는 호평을 받았고 말년에 인삼공사의 첫 우승(2011-12)을 지켜보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은희석 감독은 현역 은퇴 이후 KGC인삼공사에서 잠시 코치 생활을 하다가 2014년부터 모교인 연세대 감독으로 부임하여 활약했다. 은 감독의 연세대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대학농구 리그를 연속 제패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현재 프로농구에서 활약중인 최준용-안영준(이상 서울 SK), 허훈(수원 KT), 이원석(삼성) 등이 모두 대학 시절 은 감독의 지도를 받은 선수들이다.
 
은 감독이 지휘봉을 잡게된 삼성은 올 시즌 9승 45패(승률 .167)로 프로농구 10개 팀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올시즌은 물론이고 삼성의 구단 역사상 정규리그 54경기 체제에서 거둔 최악의 성적이었다. 지난 1월 이상민 감독이 구단 역사상 성적 부진과 선수단 관리 부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고, 이규섭 감독 대행 체제로 남은 시즌을 치렀지만 마지막 경기지까지 13연패를 탈출하지 못하며 불명예스럽게 마감해야했다.
 
삼성의 은희석 선임은 농구팬들 사이에서 예상을 깬 파격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은 감독의 프로 지도자 경험은 안양 KGC 시절 잠깐 코치를 역임했던 것을 제외하면 내내 대학무대에서만 활동해왔다. 삼성과는 선수시절에도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었다.
 
삼성은 구단의 원클럽맨이자 프랜차이즈스타였던 이규섭 대행이라는 손쉬운 대안을 고를 수도 있었다. 이 대행은 선수 시절부터 코치(2014년~), 감독대행까지 무려 22년간 삼성에서만 활약해오며 구단 내부 사정과 선수들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은희석 감독과는 같은 77년생- 96학번 동갑내기이기도 하다. 은 감독은 대학 직속 선배인 이상민 전 감독(72년생)과는 5년 후배인 '연세대 라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삼성이 오히려 이상민 전 감독이나 이규섭 대행보다 프로 지도자 경험도 훨씬 일천한 대학 지도자 출신 은 감독을 굳이 선임한 것을 두고, 분위기 쇄신에 대한 강한 의지와, 또다른 도박에 가까운 모험수라는 엇갈린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  

삼성은 은희석 감독의 선임 배경에 대하여 "소통을 기본으로 한 강한 지도력과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통해 팀 전력을 강화할 적임자"라고 설명하며 "데이터를 이용한 체계적 분석과 선수들의 자발적 동기부여를 통해 선수 개인의 발전은 물론 끈끈한 팀워크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삼성이 구단과 관련이 없었던 외부 인사를 선임한 것, 대학 출신 감독을 영입한 것은 2011년 김상준 감독 이후 11년만이다. 김상준 감독은 대학 시절만 해도 중앙대의 52연승 신화를 이끌며 최고의 감독으로 주가를 높였지만, 정작 프로에서는 10년 가까이 봄농구 단골손님이던 삼성을 첫 시즌만에 꼴찌(13승 41패)로 추락시키며 이해할 수 없는 전술과 선수단 개편 등으로 이후 10년간 이어질 삼성 암흑기의 포문을 연 '흑역사'로 치부된다.
 
김상준 감독을 비롯하여 대학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둔 지도자들도 프로에 와서는 실패한 사례가 많은 편이다. 최희암, 진효준, 김남기, 강정수, 이충희, 조성원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그나마 서동철 감독(전 고려대)은 올시즌 KT를 정규리그 2위로 이끌었고, 강을준 감독(전 명지대) 오리온 감독은 맡았던 모든 프로팀에서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뤄내며 '대학 감독의 저주'에서 벗어난 편이다. 뭐니뭐니해도 대학 출신 감독의 최고 성공사례로 꼽히는 김태환 전 감독으로 2000-01시즌 창원 LG를 이끌고 팀득점 100점대를 넘긴 화끈한 공격농구로 창단 첫 챔프전 진출(준우승) 등을 이끌며 농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대학 출신 감독으로 프로무대에서 정규리그-챔프전 우승(KBL 컵대회 제외)을 차지한 인물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 경기수가 적고 비교적 다루기 쉬운 어린 선수들에게 감독의 권위가 강한 대학과 달리, 외국인 선수와 개성강한 스타들이 많고 성적부담과 선수단 관리가 더 까다로운 프로의 차이에 적응하는 데 시행착오를 겪었던 지도자들이 많았다.
 
더구나 삼성은 현재 당장의 성적보다는 리빌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11년전 김상준 감독이 부임했을 때도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당시에는 차라리 지금보다 사정이 나았다. 삼성은 전임 안준호 감독이 구축해놓은 전력이 건재했지만 팀장악 과정에서 주축 선수인 강혁과 김동욱을 트레이드하며 무리한 개편으로 전력을 스스로 무너뜨린게 더 패착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삼성은 김시래라는 정상급 포인트가드가 있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그 외에는 각 포지션에서 다른 팀이었다면 당장 주전으로 뛰기 어려운 선수들로 구성되었을만큼 전력이 크게 약해졌다. 이원석이나 차민석. 김진영같은 유망주들이 있지만 이들은 아직 성장에 더 시간이 필요한 선수들이다. 프로무대에서 검증되지 않은 초보 감독에게는 팀을 만들어나가기에 최악의 조건인 셈이다.
 
한편으로 은 감독은 다음 시즌 프로농구 최연소 감독이 된다. 은 감독 다음으로 젊은 사령탑이 4살 연상이자 올해로 한국 나이 50세인 전희철 서울 SK 감독이다. 현재 은 감독을 제외하고 프로 사령탑이 대부분 50대 이상이고, 절반 이상이 60년대생이라는 것은 그만큼 프로무대에서 '감독 세대교체'가 얼마나 더딘지를 보여준다.
 
선수보다도 검증된 지도자 인재풀이 더 열악한 한국농구 현실에서 은희석 감독의 도전은 40대 젊은 감독-대학 지도자 출신도 프로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은희석 서울삼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