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동 감독 포항의 김기동 감독이 2009년 선수로써 경험한 ACL 우승에 이어 12년 만에 지도자로 정상 도전을 꿈꾸고 있다.

포항의 김기동 감독 ⓒ 한국프로축구연맹


프로축구 K리그1 포항 스틸러스가 초반 예상을 깨고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포항은 지난 5일 인천 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1 2022 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전반 36분 임상협의 선제 결승골을 잘 지켜내며 1-0으로 승리를 거뒀다.
 
포항은 3승1패(승점 9)를 기록하며 깜짝 선두로 올라섰다.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포항이 이 정도로 잘할 것이라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전북-울산같은 리그 우승후보들은 물론 다크호스로 꼽힌 대구나 제주까지도 정상급 선수들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한 것과 달리, 포항은 그저 주전급 선수들을 지키는 것조차도 힘에 겨웠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서는 국가대표 풀백인 강상우마저 중국 무대로 진출했다.
 
여기에 포항은 홈구장과 클럽하우스 공사로 올시즌 리그 초반 6경기를 내리 원정으로만 치러야 하는 핸디캡까지 감수해야했다. 홈어드밴티지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홈팬들의 응원을 못 받는다는 문제점을 넘어서, 잦은 이동으로 인한 선수단 컨디션 관리와 훈련시간 부족을 복잡해지는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지난 시즌 리그 9위로 하위스플릿 추락의 굴욕을 맛봤던 2021시즌에 이어 이제는 강등권 추락을 걱정해야한다는 우려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포항은 뚜껑을 열자 불리한 조건에서도 '명가의 저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개막전에서 올시즌 다크호스로 꼽히는 제주를 3-0으로 완파했고, K리그 6연패에 도전하는 전북(1-0)의 덜미를 잡으며 첫 패배를 안겼다. 김천(2-3)에게 3골이나 내주며 유일한 패배를 당한 것이 옥의 티였지만 나머지 3경기에는 모두 클린시트를 기록할만큼 탄탄한 조직력이 돋보인다.
 
포항 돌풍의 중심에는 역시 지략가 김기동 감독이 있다. 포항의 레전드 출신이기도 한 김기동 감독은 코치를 거쳐 2019년 4월부터 포항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2019시즌 4위, 2020시즌 3위에 올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2020년에는 화끈한 공격축구를 앞세워 포항을 리그 최다득점팀으로 이끌며 올해의 감독상까지 수상했다. 2021년에는 하위스플릿 추락으로 다수 부진했지만, 토너먼트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에 올려놓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특히 김기동 감독의 장점은 한정된 스쿼드와 열악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조건에서 대안을 만들어내는 데 능하다는 것이다. 포항은 김기동 감독 부임 이후 일류첸코-팔로세비치-송민규 등 핵심자원들을 줄줄이 경쟁팀에 떠나보내야했음에도 특유의 맞춤형 용병술을 내세워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김 감독은 최전방 공격수가 전멸한 상황에서 미드필더인 이승모를 가짜 9번으로 활용하는 제로톱으로 ACL에서 대박을 터뜨렸고, 강상우를 풀백과 윙어를 넘나드는 전천후로 기용하여 재미를 보기도 했다. 3부리그에서 뛰던 박승욱을 주전급 자원으로 키운 것이나, 한물갔다는 임상협을 K리그 베스트11 윙어로 부활시킨 것도 모두 김기동 감독의 작품이다. 2022시즌에는 스쿼드에 맞게 강한 압박을 바탕으로 한 질식수비와 역습을 새로운 팀컬러로 제시하여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자신의 축구철학에 선수들을 맞추는 지도자가 있고, 선수들의 스타일과 상황에 맞춰 자신의 색깔을 변화시킬줄 아는 지도가 있다면 김기동 감독은 후자에 해당한다. 포항같이 선수영입에 투자할 수 있는 규모가 한정되어 있고, 선수 육성을 통하여 전력을 만들어가야하는 팀에 가장 최적화된 감독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권위나 카리스마보다는 격의없는 소통으로 젊은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형님 리더십도 김 감독의 장점이다. 보통 감독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선수들과 달리, 포항 선수들은 경기나 훈련중 김기동 감독과의 스킨십에 거리낌이 없는 모습을 자주 볼수 없다. 친화력이 좋은 김 감독은 선수들과의 불화설이 거의 없고 팀을 떠난 선수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선수들의 골 세레머니에도 적극적으로 함께 동참한다. 지난 인천전에서도 '김기동의 남자' 임상협은 골을 넣고 가장 먼저 김기동 감독에게 달려가 포옹하는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김 감독이 선수단 내에서 얼마나 굳건한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지를 보여준 장면들이다.

김기동 감독이 이끄는 포항의 '언더독' 서사가 더 매력적인 이유는, 자본의 힘과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현대의 프로스포츠에서 '돈이 아니어도 축구는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결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은 K리그 우승 5회, FA컵 4회, 챔피언스리그 3회 등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며 이회택, 최순호, 홍명보, 황선홍, 이동국 등 무수한 스타들을 배출한 팀이지만, 2010년대 이후 현재는 모기업의 투자 규모가 줄어들며 K리그 중위권팀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경쟁팀에 주력 선수를 보내야하는 '셀링클럽' 취급을 받는 경우도 늘어났다.
 
대부분의 프로스포츠들은 몸값 비싼 스타급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는 것이 우승을 위한 필수공식으로 여겨지고 축구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스타가 없어도 전술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약팀이 강팀을 잡을 수 있는 이변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스포츠라는 게 축구의 매력이기도 하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자존심이 없냐)'는 영화 속 명대사처럼 돈이 없어도 클래스는 건재한 포항의 선전에 축구팬들이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포항의 상승세가 초반 일시적인 돌풍을 넘어서 올시즌 전북과 울산의 양강구도까지 뒤흔들 유력한 대항마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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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감독 포항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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