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개승자>의 한 장면.

KBS2 <개승자>의 한 장면. ⓒ KBS2

 
'막내들의 반란'이 아쉽게 결승문턱에서 멈췄다. KBS 2TV 코미디 서바이벌 프로그램 <개승자>에서 돌풍의 주역으로 떠올랐던 신인 팀은 아쉽게 파이널 진출을 목전에 두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지난 1월 29일 방송된 <개승자>에서는 파이널 라운드로 진출할 여섯 팀을 가리는 5라운드 'TOP6 결정전'이 펼쳐졌다. 이번 무대는 각 팀이 공연을 마친 뒤 초반 5분까지의 중간점수만 먼저 보여주고 모든 팀의 경연이 끝난 뒤에 최종점수를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앞서 1번으로 나선 이승윤이 762점, 2번 김준호팀이 581점을 받은 가운데, 신인팀이 세 번째 주자로 나섰다.
 
신인팀은 4라운드 1대 1 미션에서 최고점수를 받아 1위 자격으로 5라운드 '순서 결정권'까지 거머쥐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신인팀은 '당근지옥'이라는 코너를 선보이며 중고 거래 마켓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민폐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현실적인 공감대를 주는 웃음을 선보였다. 신인팀의 에이스로 부상한 홍현호가 연기한 '홍기쁨' 캐릭터도 어김없이 등장하여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전의 경연과 달리 관객들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덤덤했다. 지켜보던 선배 김준호는 "중간 점수는 잘 안 나올 것 같다"고 전망했고, 변기수도 "지난 경연과는 (관객들의) 분위기가 다르다"며 심상치않은 평가를 내렸다. 놀랍게 신인팀은 중간 점수에서 386점으로 지금까지 경연팀 중 최하 점수를 받으며 충격에 빠졌다.
 
4번으로 나선 김원효 팀은 간판 코너인 '압수수색'으로 무대에 올랐다. 김원효는 진급을 노리는 속물 검사로 등장하여, 형량 감형을 위하여 자수했다는 범인 김성주(이광섭)와 밀고 당기는 신경전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마지막에는 진짜 김성주가 인천으로 밀항했다는 깜짝 반전 결말로 관객들을 놀라게 하며 마치 한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짜임새있는 구성이 돋보였다. 김원효팀은 중간점수에서 634점을 받았다.
 
5번 주자 변기수 팀도 역시 '힙쟁이' 코너를 다시 선보였다. 힙합 래퍼로 빙의한 변기수 팀은 스웩넘치는 제스츄어와 절묘하게 라임을 살린 개그 멘트로 객석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사회적 현실을 풍자하는 노랫말과 속사포같이 많은 양의 대사를 정확한 딕션으로 소화내낸 변기수의 전달력도 돋보였다. 변기수팀은 572점을 받았다.

6번은 윤형빈 팀은 '대한외쿡인' 코너를 선보였다. 4라운드에 이어 다시 한번 윤형빈의 아내인 정경미와 와일드카드로 투입되어 남편과 실제 모습을 반영한 환상의 부부 케미를 선보였다. 윤형빈팀은 579점을 받았다.
 
마지막 무대는 이수근 팀이 연기한 '싱어개그인'이었다. 4라운드에서 최종탈락위기에 몰렸다가 김민경팀을 근소하게 이기고 기사회생한 이수근 팀은 기존의 간판코너인 '아닌거 같은데'를 포기하고 새로운 음악개그를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팀장임에도 한발 뒤로 물러나 후배들을 받치는 역할에 치중했던 이수근이 콩트의 전면에 나서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이수근팀은 관객참여와 과감한 분장쇼 등을 선보였지만 초반부가 다시 늘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중간점수는 373점에 그쳐 놀랍게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모든 경연을 마치고 드디어 최종점수와 탈락팀이 공개됐다. 1위에서 4위까지의 점수차가 단 9점에 불과할만큼 대혼전이었다. 김원효팀이 920점으로 4위, 변기수팀이 923점으로 3위, 이승윤팀이 927점으로 2위에 오르며 톱6에 합류했다. 윤형빈팀은 중간점수 4위에 그쳤으나 최종점수 929점으로 이승윤팀을 제치고 대역전에 성공하며 1위에 등극했다. 윤형빈은 "소극장을 대표해서 나왔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래서 보여줘야 하는데 라는 부담감도 컸다. 오늘에서야 조금 해소된 느낌이다"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수근-김준호-신인팀이 탈락 후보가 됐다. 중간점수 꼴찌였던 이수근팀은 최종점수에서 853점을 기록하며 5위로 뛰어올라 뒷심을 보여줬다. 마지막 생존자는 김준호팀이었다. 6위와 7위의 격차는 김준호팀이 812점, 신인팀이 803점으로 단 9점에 불과했다. 중간점수에서 양팀의 격차가 무려 195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신인팀의 뒷심을 보여줬으나 간발의 차이로 운명이 엇갈렸다.
 
 KBS2 <개승자>의 한 장면.

KBS2 <개승자>의 한 장면. ⓒ KBS2

 
안타깝게도 마지막 탈락팀이 된 신인팀 멤버들은 마지막 소감에서 말을 잇지못하고 모두 눈물바다가 됐다. 박진호는 "우리도 선배님들과 같은 경쟁자다라고 생각했는데, 선배님들이 오히려 '너희가 최고야'라고 격려하고 박수쳐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고백했다. 정진하는 "저희가 신인 중에서 제일 잘해서 나온 게 아니다. 저희의 꿈은 우승을 해서 저희 동기들이 무대에 나오고 싶었다"는 속내를 밝히며 모두를 뭉클하게 했다. 지켜보던 선배 개그맨들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김원훈은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우승트로피를 들고 눈물을 흘리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홍현호는 "개승자가 끝났다고 절대 저희의 코미디 인생이 끝난 건 아니듯, 또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시청자들에게 더 좋은 웃음을 드릴 수 있는 개그맨이 될 것"이라고 다짐하며 새로운 도전을 기약했다.
 
<개승자>의 숨겨진 '히든팀'으로 마지막에 합류한 신인팀은 선배들과는 달리 인지도에서 불리하다는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 이수근, 김준호, 김대희, 김민경, 박준형, 윤형빈 등 쟁쟁한 선배 개그맨들의 틈바구니에서 검증되지않은 약체로 지목받았다.
 
사실 신인팀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대선배들보다 상대적으로 연차가 부족할뿐 이들은 이미 개그계에서는 상당한 경력자들이었다. 신인팀의 에이스였던 홍현호가 2014년에 입사하여 벌써 개그 8년차의 중견이고, 팀의 막내인 32기 정진하도 2018년부터 방송활동을 시작했을 만큼 중고 신인에 가까웠다. 신인팀은 예상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언더독 돌풍을 일으키며 <개승자>의 최대 수혜자로 등극했다.
 
신인팀의 돌풍 비결은 SNS와 유튜브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한 웃음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 '회의 줌 하자'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비대면 화상회의를 소재로 하여 무대의 현장감과 방송 편집의 장점을 결합했고 현실적인 에피소드를 가미해 세련된 느낌을 살렸다. 김민경팀과의 깐부미션에서 선보인 '1호선 빌런', 4라운드 '슬기로운 기숙생활' 등에서는 홍현호가 열연한 '홍기쁨'이라는 마성의 캐릭터를 보이며 정통 콩트극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오히려 이승윤팀 정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베테랑 개그맨들이 <개콘> 시절의 낡은 관성과 식상한 캐릭터를 탈피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으며 외면받은 것과 대조를 이뤘다.

신인팀은 1~4라운드까지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며 돌풍을 일으키며 특히 4라운드 1대 1 매치에서는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1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이은 호평으로 높아진 눈높이와 부담감은 파이널 진출을 목전에 둔 5라운드에서는 부메랑으로 작용했다.
 
신인팀은 파이널 진출을 앞두고 '자체 검열'에 나서며 "우리가 원하는 개그보다는 대중들에게 가까이 할 수 있는 개그를 해보자"고 새로운 코너에 도전했지만 오히려 기존의 장점이 희석된 것이 자충수로 작용했다. 5라운드만 통과했으면 파이널 경연에서는 더 이상 탈락없이 4번의 경연무대가 보장되어있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잠재력 신인팀의 탈락을 아쉬워하는 이유다.

비록 신인팀은 아쉽게 마지막 고비를 넘지못했지만 이들의 선전이야말로 <개승자>가 발굴해낸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만하다. 아무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신인팀의 선전과 뛰어난 연기력에, 대선배들도 자극받아 스스로를 돌아보고 절치부심하게 만드는 모습은, 계급장을 뗀 순수한 서바이벌 경쟁만이 보여줄수 있는 순기능이기도 했다.

<개콘>의 전성기 유명세를 등에 업고 공개 코미디 폐지 이후에도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선배들에 비하여, 신인팀같은 무명 개그맨들은 그나마 유튜브와 소극장 무대에서 활동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터전이 부족한 상황이다. 능력있는 새로운 유망주들을 발굴할수 있는 무대, 그리고 이들이 새롭게 실험적인 코너들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꾸준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한국 공개 코미디의 부활을 위한 중요한 숙제다.
개승자 신인팀 홍현호 서바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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