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촛불> 공동 연출자인 배우 김의성과 주진우 기자.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촛불> 공동 연출자인 배우 김의성과 주진우 기자. ⓒ (유)주기자


두 사람에게도 2016년 늦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이어진 촛불집회는 남다른 기억과 경험이었다. 누적 참가자 1600만 명, 당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정치권을 움직였고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심판한 그때의 일을 기록하고자 배우 김의성과 주진우 기자가 뭉쳤다. 지상파 방송사의 시사 프로를 함께 진행한 인연이 컸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나의 촛불>은 그렇게 한국 다큐멘터리 중 가장 처음으로 촛불집회 자체를 조명한 영화로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정공법의 승부수
 
시작은 배우 김의성이 우연히 들었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라디오 방송 발언이었다고 한다. 촛불 집회와 탄핵에 대해 여러 의원들이 전하는 뒷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그는 주진우 기자에게 영화화 논의를 했고, 몇몇 유력 감독을 접촉했다. 결과적으론 다들 고사했고, 결국 두 사람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김의성 배우가 사비를 털었고, 본격적으로 영화가 기획된 게 2018년 하반기였다.
 
여러 정치인들이 본 촛불의 기억이 우리와 좀 달랐다. 다들 자기들이 주인공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진짜 주인공은 시민이 아닌가. 그때까지 책은 물론이고 영상으로 촛불 집회 관련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이걸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생각했다. 몇몇 감독들과 의논했는데 각자 사정으로 고사했고, 기다려보기도 했는데 안 만드셔서 우리가 하기로 했다. (주진우 감독)
 
<나의 촛불>이 유독 눈길을 끄는 건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의 면면이다. 손석희 JTBC 사장은 물론이고 국정농단 사태 불길을 타오르게 한 내부증언자 고영태씨, 그리고 그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당시 특별검사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당시 검사) 등. 대부분 대중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거나 카메라 앞에 스스로를 노출시키지 않은 인물들이다.

김의성 감독은 "한국 다큐멘터리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캐스팅을 주진우 기자가 해냈다"며 "(영화의 방향성에 대해) 의견이 주 기자와 갈리진 않았다. 기동성 있게 접근하느냐 진중하게 만드냐의 문제였다"고 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지를 우리가 제대로 다루고 있진 않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모습 정도를 다뤘지. 이 자격 미달 대통령을 올린 정치권, 언론에 책임을 묻고 싶었다. 박근혜 정권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나. 광화문의 촛불 시위가 시작되고 여의도에서 탄핵안이 통과되기까지 시민과 정치권 사이 어떤 상호 작용이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복잡하게 가지 않고 가능한 쉬운 방식을 택해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김의성 감독)
 
박영수, 윤석열 , 고영태, 손석희 모두 처음 인터뷰를 하는 분들이다. 특히 손 사장은 촛불집회나 태블릿 PC 보도에 대해 일절 말을 덧붙인 적이 없다. 본인들이 촛불이 역사에서 어떤 의미인지 공감했기에 출연을 결심하지 않았나 싶다. 여러 차례 만나기도 했는데 카메라 앞에 앉히기까지 굉장히 어려웠다. 특히 박영수 (당시) 특검이 힘들었다. 그때도 그랬고, 앞으로도 인터뷰에 응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시민이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던 시기에 중간 지대에 있었던 특검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굉장히 오랜 시간 설득했다. 정치권도 그랬지만 특검도 촛불을 두려워했다. 수사 동력이 되기도 채찍이 되기도 했다더라. 고영태씨도 어려웠다. 국정농단 사건 중 의도치 않게 유명인이 돼 버렸고, 사실이 아닌 온갖 소문에 시달리다 결국 박근혜를 옹호하려는 검찰 세력 때문에 감옥에 다녀왔다. 그 부분에 상처가 컸던 것 같다. (주진우 감독)
  
 영화 <나의 촛불> 관련 이미지.

영화 <나의 촛불> 관련 이미지. ⓒ 리틀빅픽쳐스

 
"윤석열과 이재명 구도 예상 못해"
 
2017년 <저수지 게임>이란 다큐를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추적한 주진우 감독은 <나의 촛불>에서도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이클 무어처럼 취재 대상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논의 끝에 정공법을 택했고, 지금의 결과물이 나왔다. 인터뷰 앵글이 인터뷰이 시선에 따라 공간을 두는 루킹룸(Looking Room)을 많이 두지 않고 일반적이지 않게 인물 뒤통수에 공간을 두는 방식을 택한 것도 의도적이었다고 한다. 김의성 감독은 "무거운 톤으로 상당히 안정된 공간에서 진행된 인터뷰들인데 그 공간의 안정감과 무게감을 (앵글로) 깨고 싶었다"며 "화자가 카메라에 다 가까이 있게끔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카메라 앵글은 기획 때부터 열다섯 가지 정도를 두고 상의하다가 두 개로 줄여서 고민 끝에 결정했다. 찍는 사람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려 했다. 솔직히 뭘 선동해서 불 지르는 거 제 전공이거든. 근데 그걸 배제하려고 무거운 색깔, 그리고 그 앵글을 썼다. 관객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자는 고민이 있었다. (주진우 감독)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로 나선 이재명과 윤석열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할 말이 있었다. 영화엔 특검 입장에서 박근혜 정권을 바라보는 윤 후보의 말이 몇 차례 담겨 있고, 이재명의 모습도 잠시 등장한다. 두 감독 모두 지금의 구도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정치인 중 탄핵이란 말을 가장 먼저 꺼낸 사람이 이재명이었다. 그땐 기초단체장이었고 탄핵을 논의할 국회와는 거리가 있어서 인터뷰를 안했다. 이렇게 급부상할 줄 알았으면 할 걸 싶더라(웃음). 나중에라도 하려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2년 전 모습이고 이재명 후보는 2년의 지식을 더 가진 상태인 만큼 균형이 무너질 것 같더라. (김의성 감독)
 
이어 김의성 감독은 과거 특검 때 윤석열의 팬이었다고 한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국민 절반 이상 아마 저와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라며 "그때 윤 후보와 지금의 그를 보면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양할 것 같다, 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인데, 본인이 영화에 출연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두 감독의 촛불, 그리고 2022년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촛불> 공동 연출자인 배우 김의성.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촛불> 공동 연출자인 배우 김의성. ⓒ (유)주기자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촛불> 공동 연출자인 주진우 기자.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촛불> 공동 연출자인 주진우 기자. ⓒ (유)주기자

 
탄핵 정국 이후 세워진 정부, 그리고 현재 대선을 앞둔 분위기를 놓고 두 사람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여론조사 때마다 크게 달라지는 후보 지지율을 보며 누군가는 국민의 생각을 좀처럼 알 수가 없다고 한탄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촛불>을 내놓는 감독 입장에서 국민의 위대함을 한 번 더 기억하고 돌아봤으면 하는 바람들이 있었다.
 
손석희 사장이 자기는 카메오냐고 묻길래 엑스트라라고 답했다(웃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시민들이다. 촛불은 위대한 역사다. 누군가는 광장에 나가서 뭐가 되겠냐고 했고, 탱크로 밀면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좌절과 실패의 역사가 반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중요할 때 국민들이 이기는 역사를 (국민들이) 만들었다. 참 자랑스러운 일인데 너무 빨리 잊는 것 같아서 참 그렇다. 영화를 보시면 다들 그때 뭐하고 있었는지 생각나실 거다. 우리에게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었다는 걸 상기시키고 싶다. (주진우 감독)
 
촛불집회 때 전 날라리처럼 주변을 돌아다녔다. 매주 토요일마다 나가서 사람들도 구경하고, 광화문 근처 노포 가서 술도 한 잔씩 하고 그랬다. 우스갯소리로 촛불집회는 토요미식회라는 말도 했지. 영화를 만들게 되면서 시민분께 정치인에게 촛불의 의미를 묻는데 배우고 느끼는 게 많았다. 대의민주제가 고도화된 사회에서 직접민주주의로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을 끌어내릴 수 있을까. 그것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정말 전 세계에 자랑할만한 사건이다. (김의성 감독)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한 시민의 위대함. 두 감독이 바라본 촛불집회였다. "자격 없는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올린 게 과연 누굴까. 그때 그 사람들이 지금도 같은 짓을 하려고 하는 것에 분노를 느끼는 분들에게 이 영화가 어떤 통찰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김의성 감독은 말했다.

완성 후 개봉하기까지 약 2년이 걸린 <나의 촛불>을 두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던 두 사람은 무수한 게이트가 터졌음에도 꿈쩍 않던 당시 정치권을 두려움에 떨게 한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관객들이 기억하길 바라고 있었다.
나의 촛불 김의성 주진우 박근혜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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