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표 대표 K-드라마는 <킹덤>이다. <워킹데드>와 <부산행>의 인기를 등에 업은 좀비물이다. <인간수업>과 <스위트홈>도 있다. <인간수업>은 '19금' 범죄물로 명작 '미드'의 아이디어를 이것저것 뒤섞었지만 본질이 변할 리 없다. <스위트홈>은 한국형 '호러+재난+슈퍼히어로'물의 혼종이었다.

지금껏 주목을 받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대부분은 '19금 장르물'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달 13일 열린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도 넷플릭스 <인간수업>과 <스위트홈>은 TV부문 연기상과 예술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일대 약진을 과시한 바 있다.

물론 여타 로맨스 드라마도, 예능도, 다큐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제껏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의 주력 상품은 '19금 장르물'이었다. 창작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넷플릭스가 19금 장르물에 공을 들이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기존 케이블과 종편, 지상파 드라마가 도전하기 쉽지 않은 영역을 개척,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려는 전략 말이다.

지난달 1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브 투 헤븐>를 접하기 전 의아심을 품었던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유품정리사의 이야기? 이런 심심한 소재라니. 그러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김성호 감독이 연출한 <무브 투 헤븐>은 그런 의구심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거두절미하자면, 현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K-드라마 중 단연 돋보이는 수작이자 여러모로 빼어난 '웰메이드 드라마'다.

놓친 이가 손해인 K-드라마의 진일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브 투 헤븐>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브 투 헤븐>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태생적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소재한 영화들은 공감과 소통을 주제로 삼는다. 비장애인의 시선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만큼 '그들도 우리처럼' 혹은 '그들과의 관계 맺기'를 어떻게 변주하느냐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그들과 다른 우리는' 이란 성찰의 시선으로 회귀하기 마련이다.

넷플릭스의 <별나도 괜찮아>(atypical)는 그런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경우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10대 소년의 연애 이야기를 마치 주드 애파토우 감독의 영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나 그가 제작한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와 같은 19금 가족+로맨스 코미디로 승화시켰으니 말이다.

넷플릭스니까 가능한 변주는 또 있다. 호주의 리얼리트 쇼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젊은이들의 실제 연애담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자체로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드러내는 시선을 담보하는 한편 흔치 않은 청춘 로맨스라 할 수 있다.

<무브 투 헤븐>은 반대다. 영민하게도 그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청년 그루(탕준상)에 쏠릴 수 있는 시선을 분산시킨다. 방점은 유품정리사에 찍힌다. 아버지 정우(지진희)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홀로 남겨진 그루가 유품정리업체 '무브 투 헤븐'을 운영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자폐 스펙트럼을 통해 바라 본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자, 생을 마감한 이들이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로 승화된다.

여기에 한국식 신파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그루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니까. 물론 이런 극적 선택은 기능적인 요소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런 그루가 망자가 남겨 놓은 유품, 즉 망자의 목소리를 통해 점차 세상을 배워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외면하려고 했던 세상의 이면과 맞닿아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무브 투 헤븐>이 들려주는 그 망자들이 누구인지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거기 있다. "<무브 투 헤븐>이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이야기인데 연출에 있어서도 그들을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김성호 감독의 의도 또한 같은 맥락일 것이다.

놀라움과 씁쓸함의 교차
 
죽음과 애도를 다룬 저작을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 심적인 위안이 되던 때에 김새별 작가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도 출간 즉시 찾아서 읽게 되었다. 죽음의 원인과 책임 규명도 중요하지만, 고인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혹은 살았다면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었을까를 떠올리는 것이 가장 깊은 슬픔이었다. 에세이에도 그와 닮은 시선과 정서가 담겨있었고, 멈춰져 있던 글쓰기에 대한 소명을 일깨워주었던 것 같다.
- <무브 투 헤븐>윤지련 작가 인터뷰 

산재로 시름하다 홀로 죽어간 청년노동자. 언어 장애를 가진 그의 어머니는 귀한 아들의 장례식장에서조차 회사 측 직원들의 무례에 항변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억울함을 대변하고 직원들을 꾸짖은 것은 정우의 수화였다. 그렇게 그루는 망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아버지 정우에게 '직업'을 물려받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브 투 헤븐>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브 투 헤븐>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물론 그루의 비상한 기억력은 일종의 '기프트'였다. 단칸방에서 고독사한 치매 노인의 숨겨진 돈을 찾아낸 것도, 일방적인 스토킹 끝에 유치원 선생님을 살해한 남성의 살인 증거를 발견한 것도, 사랑하는 첼리스트를 떠나보낸 채 갑작스런 사망한 '게이' 의사의 못 이룬 사랑을 증명해낸 것도, 폭언에 시달리다 아내와 함께 동반자살을 택한 경비노동자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낸 것 역시 망자에게 다가가려던 그루의 마음과 능력 덕택이었다.

그렇게 <무브 투 헤븐>은 비장애인이 보지 못한 그 이면을 발달장애인과 그를 돕는 '후견인' 삼촌 상구(이제훈)가 발견하고 고인을 떠나보낸 이들에게 일종의 치유를 선사하는 반복되는 구조를 취한다. 일견 흔한 추리드라마나 <하우스>와 같은 추리의학드라마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드라마가 가리키는 주제를 그 형식에 놀랍도록 밀착시킨 밀도 높은 작품이라고 할까.

'자폐 스펙트럼'를 소재로 한 그 어떤 서사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비장애인 캐릭터와의 소통과 성장 과정이야말로 극의 몰입을 높이고 공감대를 넓히는 주요 소재라 할 수 있다.

후반부, 상구가 피가 섞이지 않은 형 정우에게 왜 미움을 품게 됐는지, 그 갈등의 연원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지는 대목은 다소 비현실적이었던 '무브 투 헤븐'의 출발과도 설득력 있게 연결된다.

1990년대 중반 그 시대를 상징하는 거시적인 사건과 그로 파생됐을 법한 고통을 캐릭터의 설정과 감정 안에 녹여낸 옳은 예라고 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가정폭력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상구에게 부여된 죄책감과 상구가 그 죄책감을 극복해 내는 과정에 그루의 현재와 형 정우와의 과거를 자연스레 스며들게 만든 구성 또한 탁월하다.

여기에 감정을 과하게 끌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신파의 전시는 없다. '파이터' 상구의 과거와 현재를 부지런히 오가면서도 폭력이나 액션을 과시하려는 유혹에 빠지지도 않는다. 현실감을 넘어 망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인들을 극악하게 그리며 갈등을 증폭시키는 연출은 최대한 자제한다.

즉, K-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정의 과잉을 최대한 자제했고, 그런 절제가 <무브 투 헤븐>이 가리키는 주제를 훨씬 부각시키는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브 투 헤븐>은 한국식 과잉의 정서를 제거하면서도 충분히 한국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진일보한 K-드라마다. 

새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라는 점이, 영상물등급위원회가 '19금 딱지'를 붙였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무브투헤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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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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