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강을준 고양 오리온 감독에게는 '니갱망'이라는 유행어가 있다. '니가 갱기(경기)를 망치고 있어'의 사투리식 표현을 축약한 말이다. 창원 LG 감독 시절 작전타임때 이기적인 플레이를 펼치던 외국인 선수 아이반 존슨을 질타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인데, 이후 농구팬들 사이에 입에 착 달라붙는 희대의 유행어로 자리 잡으며 형편없는 플레이를 펼친 선수나 감독, 혹은 상황을 지칭하는 표현의 대명사가 됐다. 올 시즌 강을준 감독이 오리온 사령탑으로 9년 만에 복귀하면서 이 유행어도 다시 주목받았다.

공교롭게도 고양 오리온의 현재 상황이 바로 '니갱망' 일보직전이다. 강을준 감독이 이끄는 오리온은 12일 열린 인천 전자랜드와 6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77-85로 패했다. 앞선 1차전도 63-85로 완패했던 오리온은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살리지못하고 2경기를 먼저 내주며 업셋의 벼랑 끝에 내몰렸다.

우려한 대로 외국인 선수 싸움에서 밀리고 있다. 전자랜드는 1차전에서 조나만 모트리가 31점 17리바운드로 맹활약한 반면 오리온은 디드릭 로슨(19점 8리바운드)과 데빈 윌리엄스(2점 2리바운드)의 기록을 합쳐도 모트리 한 명에도 못미쳤다.

2차전에서도 오리온은 로슨이 일찌감치 파울트러블에 걸리며 결국 경기종료 5분여를 남기고 퇴장당했다. 심지어 윌리엄스는 16분을 뛰면서 리바운드만 8개를 기록했을뿐 단 한점도 올리지 못했다. 전자랜드는 모트리(26점 13리바운드)와 김낙현(26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의 투맨게임이 위력을 발휘하며 국내 선수들이 분전한 오리온의 추격을 따돌렸다.

판이 이미 기울어졌다는 평가다. 역대 프로농구 6강PO에서 첫 2경기를 내주고 3연승으로 시리즈를 뒤집은 사례는 전무하다. 더구나 3차전부터 전자랜드의 홈구장인 인천으로 무대를 옮긴다. 외국인 선수를 비롯한 객관적인 전력과 분위기에서 모두 앞서는 전자랜드의 흐름을 뒤집기에는 오리온의 반전카드가 마땅치 않아 보인다. 

오리온으로서는 이대로 시즌을 3연패로 끝내게 된다면 허무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조기종료된 지난 시즌 리그 최저승률에 그쳤던 오리온은 올 시즌 강을준 감독 부임 첫해 KBL 컵대회 초대 우승에 이어 정규시즌에서는 2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복귀하며 자존심을 세웠다. FA로 영입한 이대성은 오리온에서 개인 커리어 하이 기록을 세우며 정규리그 베스트5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어쩐지 뒤로 갈수록 용두사미가 되어가는 분위기다. 한때 리그 선두권을 다투다가 4강직행에서 밀리며 4위까지 떨어졌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정규리그 순위와 상대전적에서 우세했던 전자랜드에게 스윕패를 당할 위기에 몰려 있다.

오리온은 이미 시즌 중반에 팀을 재정비할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오리온은 올 시즌을 앞두고 211cm의 장신 백인센터 제프 위디를 1옵션으로 낙점했지만 생각보다 기량이 떨어졌고 부상까지 겹치며 기대에 못 미쳤다. 오리온은 플레이오프를 고려하여 위디와 결별하고 체격과 운동능력이 뛰어나고 판단된 윌리엄스를 영입했다.

하지만 이 선택이 오리온에게 오히려 결정적인 '니갱망'을 불러온 순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오리온이 원한 것은 골밑을 듬직하게 지켜줄 정통센터였지만 윌리엄스는 장신에도 골밑보다 외곽플레이를 고집하는 유형의 선수였다. 더구나 감독의 지시조차 제대로 따르지 않고 동료들과 한국농구에 대한 존중심도 보이지 않아 오리온의 팀플레이를 깨는 골칫거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윌리엄스만을 탓하기에 앞서 오리온 구단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리온은 시즌 막바지에 윌리엄스를 교체할 기회가 분명히 있었고, 대체선수로 외국인 선수 역대 득점 1위인 베테랑 애런 헤인즈의 영입까지 검토하며 실제로 성사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오리온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구단 내부적인 이유로 계약이 무산됐고, 헤인즈는 선두팀 전주 KCC로 떠났다. 구단은 결국 끝까지 윌리엄스를 안고가는 선택을 내렸다. 더구나 오리온이 놓친 헤인즈는 KCC에서 불혹의 나이가 무색하게 맹활약을 펼치며 오리온 팬들의 입맛을 더욱 쓰게 했다.

KCC(헤인즈), KGC(제러드 설린저), 전자랜드(모트리) 등 경쟁팀들이 모두 시즌 막바지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과감한 외국인 선수 교체를 단행하며 성과를 냈다. 반면 이팀들보다도 오히려 외국인 선수교체가 훨씬 더 절실했던 오리온은 정작 시간만 끌다가 귀중한 교체타이밍을 허공에 날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오리온은 이제 남은 경기에서 승패를 떠나 최소한의 자존심이라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뾰족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으로서는 국내 선수들끼리 똘똘 뭉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우려되는 것은 정규리그 막판 발목부상으로 이탈한 오리온의 기둥 이승현이 잔여경기에서 출장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승현이 당한 부상이 가볍지 않은 상황에서 1승에 대한 욕심으로 무리하게 출장시켰다가 자칫 상태가 악화되기라도 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과 무리수를 두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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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준감독 니갱망 데빈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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