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전에서 골문 향해 질주하는 손흥민

레바논전에서 골문 향해 질주하는 손흥민 ⓒ 연합뉴스

 
2022 카타르월드컵 본선을 향한 한국축구의 도전이 '코로나 19' 팬데믹이라는 변수로 인하여 미궁속에 빠졌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국제축구연맹(FIFA) 및 각국 협회와 협의한 결과 최근 3월에 치르기로 한 A매치 대부분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 기간에 치러질 예정이던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을 비롯하여, 일부 경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정은 6월로 연기하고 차후 중립지역을 선정하여 각 팀들이 한 곳에 모이는 방식으로 잔여 일정을 치르기로 합의했다.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은 총 4개국이 5개 팀씩 8개조로 나뉘어 상위 2개팀이 최종 예선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지난 2019년 9월 처음 2차 예선이 시작됐고 국가별로 4~5경기를 진행된 상태지만, 코로나 19 확산세로 2019년 11월 이후로는 예선 일정이 올스톱됐다. AFC는 이미 2020년 3월 → 10·11월 → 2021년 3월로 거듭해서 예선 일정을 여러 차례 연기했으나 이번에도 한국을 포함해 다수의 국가에서 대회 개최가 어렵다는 반응을 확인했고, 또 한번 일정을 미뤄야 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도 3월에 치르기로 한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2경기가 6월 일정에 더해지며 한 달에만 A매치 4경기를 한꺼번에 소화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에 놓이게 됐다. 한국은 H조에서 레바논, 북한, 투르크메니스탄, 스리랑카와 한 조에 속해 있으며 한 경기를 덜 치른 가운데 2승2무(승점 8·골득실 +10)로 투르크메니스탄(3승2패·승점 9·골득실 +3)에 이어 조 2위를 달리고 있다.

AFC는 늦어도 6월까지는 월드컵 2차 예선을 무조건 끝마치고, 9월부터는 월드컵 최종 예선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2022년에 알리는 카타르월드컵 본선이 어느덧 1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 AFC는 최종 예선조차 돌입하지 못한 상황이다. 더 이상 일정을 연기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해진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그때까지 진정될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아무래도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각국의 방역 상황이 다르고,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되어 있는 현재 분위기에서는 기존의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는 일정을 진행하기 어려워보인다. 국가별로 입국 시 필수적인 격리 기간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벤투호는 지난해 오스트리아에서 친선전 A매치 2연전 일정을 소화하느라 선수단 내에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던 아찔한 상황을 겪은 바 있어서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지난해 클럽 대항전의 사례처럼 같은 조별로 한 국가에 모여 잔여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 방식이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유럽 챔피언스리그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는 모두 지난해 코로나 19로 인하여 중단 사태를 겪은 이후 중립 지역에서 출전팀들이 모두 모여서 잔여 일정을 치렀고, 토너먼트는 단판승부로 축소하는 방식으로 우승팀을 가린 바 있다.

냉정하게 손익 계산을 따져봤을 때 '아시아의 강호'이자 월드컵 단골 손님인 한국 축구 입장에서는 예선 방식이 변경되는 것이 그다지 달가운 일은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많은 경기를 소화하는 홈 앤 어웨이 체제에서는 설사 1~2경기 덜미를 잡히더라도 다음 경기에서 얼마든지 만회가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전력에서 앞서는 강팀들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짧은 기간 내에 여러 팀이 한 자리에 모여 풀리그를 치르는 방식이나, 토너먼트로 치러지는 단기전의 경우, 분위기에 휩쓸려 얼마든지 이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기에 강팀과 약팀의 전력 차가 큰 의미가 없어진다. 1993년 미국 월드컵 최종 예선 '도하의 기적' 당시 최종전에서 희비가 극적으로 엇갈렸던 한국과 일본의 사례가 좋은 예다.

하지만 월드컵 예선이 지금의 홈 앤 어웨이 제도로 정착된 1998년 프랑스월드컵 예선부터는, 이변의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한국축구가 월드컵으로 향하는 길도 많이 수월해진 게 사실이다. 물론 이때도 몇 차례 과정상의 고비는 있었지만, 도하 대회처럼 막판에 한 경기 결과로 운명이 뒤바뀔 것까지 걱정해야 할 만큼 극적인 상황은 자주 나오지 않았다. 바로 지난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만 해도 한국은 무려 3패(4승 3무)나 당하고도 이란에 이어 조 2위로 본선에 간신히 직행할 수 있었다.

23세 이하 선수들이 출전하는 올림픽 예선 방식은 토너먼트의 모순과 위험성을 잘보여주는 사례다. 본래 올림픽 예선은 2012년 런던 대회만 해도 월드컵 예선과 같은 홈앤 어웨이 방식을 유지했지만, 2016년 리우 대회부터 단기 대회인 AFC-23 챔피언십이 올림픽 티켓이 걸린 지역 예선을 겸하게 됐다. 다행히 한국은 2016년 준우승-2020년 우승을 차지하며 아직까지는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대회의 방식상 최대 고비는 항상 8강전이었다. 올림픽 본선 티켓은 상위 3팀까지 주어지는데 일단 4강까지만 올라가면 패하더라도 3, 4위전이라는 기회가 남아있지만, 8강전에서는 이전의 성적이 어찌됐든 무조건 탈락이었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2016년(1-0)과 2020년(2-1) 8강전에서 연이어 요르단을 만났는데 결과적으로 이기기는 했지만 내용상 모두 한 골차이의 접전이었다. 하마터면 탈락할 뻔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강팀과 약팀의 전력 차이가 무의미해지는 단판승부 토너먼트에서 월드컵 최종예선 방식이 변경된다면 A대표팀도 언제든지 이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하필 벤투호는 토너먼트에서의 경쟁력에 물음표가 달려있다. 벤투호의 첫 공식 대회였던 2019 아시안컵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다가 8강에서 당시 우승팀 카타르에 덜미를 잡혀 조기탈락한 바 있다. 비교적 약체팀들과 만난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여러 가지 변수를 감안해도 압도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플랜B로 대표되는 임기응변과 전술적 유연성이 부족한 것이 벤투호 출범 이후 가장 큰 단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2차예선은 그렇다 치더라도 본격적인 아시아 강팀들을 만나게 되는 최종예선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가뜩이나 불안 요소가 많은 벤투호에서 매 경기를 결승전처럼 치러야 하는 단판승부 방식으로 월드컵 예선 일정이 변경된다면, 큰 부담이 하나 더 늘어나는 꼴이 될 수 있다. 코로나가 불러온 나비효과가 한국 축구와 벤투호의 미래에까지 어떤 영향을 가져오게 될지는, 향후 월드컵 예선 일정을 신중하게 주시하고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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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 월드컵예선일정 카타르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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