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꼴찌 한화 이글스가 시즌 막바지 매서운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한화는 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더블헤더에서 1승1패를 거뒀다. 첫 경기에서는 초반 3점차 리드를 뒤집고 역전에 성공했으나, 최형우에게만 홈런 2방 포함 5타점을 허용하는 등 8회 3점을 내주며 아쉽게 재역전패했다. 하지만 잠시 뒤 이어진 두 번째 경기에서는 선발 김이환의 6이닝 무실점 깜짝 호투를 앞세워 5-0으로 영봉승을 거두며 설욕에 성공했다. 시즌 초반의 한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경기력이다.

상대가 KIA라는 것도 의미가 크다. 한화는 KIA와 이번주 더블헤더 포함 4연전 직전까지만 해도 올시즌 상대 전적에서 2승 9패로 절대열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5강진출에 갈 길 바쁜 KIA는 '2약' 한화-SK를 잇달아 상대하는 이번 주를 순위싸움의 분수령으로 보고 선발투수들의 휴식일까지 조정하여 한화전에 드류 가뇽-양현종의 원투펀치를 한꺼번에 투입할 정도로 승부수를 걸었다.

하지만 한화는 7일 1차전에서 3-2, 1점차 승리를 비롯하여 오히려 2승 1패로 우위를 점하며 가장 중요한 고비에서 KIA의 가을야구 희망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됐다. KIA는 가뇽과 양현종 모두 퀄리티스타트로 호투했으나 타선지원을 받지 못하며 고개를 숙였다. 특히 양현종은 9승을 거둔 이후 최근 7경기 연속 승리에 실패하며 극심한 아홉수에 시달리고 있다. 한화발 고춧가루를 제대로 뒤집어 쓴 KIA는 65승 59패(.524)로 여전히 6위에 머무르며 5위 두산(67승 4무 56패, .545)과 2.5게임차로 벌어졌다. 아래로는 7위 롯데(64승1무59패, .520)가 불과 반게임 차이로 압박해오고 있다.

한화는 2020시즌 어느 때보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고 있다. 극심한 성적부진으로 불과 2년전 팀에 11년 만의 가을야구를 선물했던 한용덕 전 감독이 사퇴했고, 팀은 삼미 슈퍼타즈의 18연패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프로야구 최다 연패 타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시즌 중반에는 프로야구 최초의 코로나19 확진자 발생과 대표이사 사퇴 등으로 팬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외국인 선수 제러드 호잉과 채드 벨은 성적 부진과 부상으로 잇달아 퇴출되는 등 그야말로 하루도 바람잘날없는 시간을 보냈다.

불과 몇주전까지 한화를 압박해오는 또다른 부담은 바로 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패 기록 경신 여부였다. 한화가 장기간 부동의 꼴찌와 2할대 승률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면서 조심스럽게 1999년 쌍방울과 2002년 롯데가 수립한 97패 기록을 넘어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세 자릿수(100패) 패배팀이 될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0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5-0의 완승을 거둔 한화 선수들이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0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5-0의 완승을 거둔 한화 선수들이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반등하는 한화

하지만 한화는 여름 이후 동네북 신세를 벗어나며 조금씩 반등하고 있다. 7월까지 19승 1무53패 승률이 .264에 그쳤지만, 8월에 7승14패 .333, 9월에는 11승14패 .440의 승률로 회복세를 보였으며 10월에도 3승 4패로 선전하고 있다. 한화는 한용덕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올시즌 초반 30경기에서 7승23패로 승률이 .233에 그쳤지만, 최원호 감독대행이 부임한 이후로는 33승 2무 62패, .340으로 승률이 1할대 이상 반등했다.7일 KIA와의 더블헤더 2차전 승리로 한화는 올시즌 가장 늦게 40승(2무 85패) 고지에 올랐고, 마침내 3할대를 회복한 승률은 어느덧 .320까지 올랐다.

한화가 시즌 17경기를 남겨놓은 가운데 100패를 기록하려면 15패 이상, 최다패 기록은 13패 이상을 추가해야 하는데, 시즌 초반이라면 몰라도 현재 한화의 분위기라면 남은 경기에서 1~2할대 승률로 급격히 추락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9위 SK(43승 1무 84패, .339)를 2게임 차이로 추격하고 있어서 꼴찌 탈출에 대한 희망도 아직 남아있는 상태다.

최원호 감독대행 부임 이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과감하게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 시즌 후반기로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이다. 워익 서폴드 정도를 제외하면 외국인 선수들이 극도의 부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김민우, 김진욱, 김이환, 강재민, 윤대경, 박상원 등 오히려 국내 선수들이 꾸준히 실전 경험을 쌓는전화위복이 됐다. 특히 투수진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며 확실한 필승조와 토종 선발진이 뼈대를 갖추게 됐다.

또한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예상되던 캡틴 이용규가 엄청난 회복세를 보이며 복귀하는가 하면, 한때 트레이드설이 거론되던 정우람이 끝까지 잔류하여 팀의 뒷문을 든든하게 수호하는 등, 베테랑들의 희생적인 솔선수범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이제는 한화를 걱정하기보다는 상대하는 팀들이 고춧가루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하는 분위기다. 한화는 남은 일정상 KIA와 2경기, 키움과 3경기, 두산-삼성과 4경기, NC-LG와 1경기, KT와 2경기씩을 남겨놓고 있다.

올시즌 한화에 덜미를 잡혀 고생한 대표적인 팀들이 두산과 삼성이다. 한화는 두산에 7승5패-삼성에 6승 1무 5패로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했다. 8위 삼성은 올시즌 2약을 제외하면 가장 먼저 5강경쟁에서 탈락했고, 디펜딩챔피언 두산도 현재 가을야구 진출을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은 한화전에서 승수를 쌓지 못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결과다.

시즌 막바지에 가을야구가 멀어진 팀들은 동기부여를 잃고 의욕상실에 빠지기 쉽다. 목표가 없다는 것은 자연히 맥빠진 경기력으로 이어진다. 올시즌 일찌감치 하위권으로 전락하며 동네북이 되었던 한화로서는 더욱 희망이 없어 보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화는 시즌 막바지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진정한 프로다움이 무엇인지 귀감을 보여주고 있다.

한화의 선전은 남은 경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을 넘어 이미 다음 시즌을 대비한 준비이자 투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팬들이 꼴찌 한화의 뒤늦은 선전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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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글스 김이환 가을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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