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부산 KT의 허훈은 지난 시즌 KBL 최고의 선수로 급부상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된 지난 시즌 평균 14.9득점 2.6리바운드 7.2어시스트 1.2스틸을 기록하며 국내선수 득점 2위, 어시스트 전체 1위에 올랐다. 단일 경기 9연속 3점슛과 최초의 20(득점)-20(어시스트) 클럽 가입같은 임팩트있는 활약상을 남기기도 했다. 허훈은 지난 시즌 MVP 기자단 투표에서 총 63표를 획득, 47표에 그친 김종규(원주 DB)를 따돌리고 MVP까지 수상했다. 명실상부하게 이제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고 할 만하다.

허훈은 한국농구 최고의 레전드로 불리우는 허재 전 감독의 둘째 아들이다. 허훈의 농구인생에서 허재와의 비교는 태생적으로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았다. 친형인 허웅도 원주 DB에서 프로농구 올스타와 국가대표까지 경험하며 삼부자가 모두 프로무대에서 성공하는 '농구명문가'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중에서도 프로농구 정규리그 MVP는 아버지나 형도 이루지 못한 허훈만의 업적이다. 더 이상 누구의 아들이나 동생으로서가 아닌, 농구선수 허훈으로서 진정한 홀로서기에 성공한 시즌이었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또한 농구실력 못지않게 주목받는 또다른 매력포인트는 허훈 특유의 자신감과 스타성이다. 허훈은 현역 농구 선수중에 각종 방송출연을 비롯하여 미디어 노출이 가장 활발한 선수로 꼽힌다. 지난 시즌에는 국가대표팀 합류과정에서 SNS를 통하여 농구협회의 부실한 차량지원을 두고 유머속에서도 뼈있는 독설을 날리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모습들은 허훈에게 감정표현이 분명하고 할 말은 하는 선수라는 이미지를 남겼다.

비시즌에는 아버지 허재와 함께 <뭉쳐야찬다>, <도시어부>, <정글의 법칙> 등 무수한 예능을 넘나들며 활약하기도 했다. 솔직하고 낙천적인 면모에 입담도 그리 나쁘지않아 낯선 방송무대에서도 어느 정도 분량을 챙겨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허훈은 지난 7월 토크쇼 <라디오스타>에 출연하여 소속팀과 연봉 협상에서 '방송 출연에 따른 인센티브'를 계약조건에 포함시킨 것을 고백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선수들이 보통 농구 기록 부분으로 계약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허훈은 방송출연을 통하여 KBL에 대한 홍보 효과를 물론이고 "개인으로서도 더 이름을 알리고싶은 욕심이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운동선수가 방송출연 등으로 외도하는 것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자칫 번외활동 이후 성적이 일시적으로 부진하기라도 하면, 헛바람이 들었다거나 한눈을 팔아서 그렇다고 비난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해외의 사례를 보아도 프로스포츠에서 스타급 선수들의 미디어 노출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선수의 가치나 해당 스포츠에 대한 홍보효과 차원에서도 오히려 권장해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본업'에서 그에 걸맞은 경쟁력을 꾸준히 보여줘야 하는 것은 선수에게 주어진 몫이다.

올 시즌은 '수성'의 시간

인지도와 화제성이 높아질수록 그에 요구되는 기대치 또한 높아진다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시즌이 허훈에게 비약적인 성장의 시간이었다면, 이번 시즌은 자신이 받고있는 대우와 관심이 절대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하는 '수성'의 시간에 가깝다.

허훈의 위상이 이제 프로무대에서도 손꼽히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는 여러 차례 '잡음'도 적지 않았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에는 대표팀 감독이었던 아버지 허재의 영향으로 '혈연 농구' 특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허훈은 어느덧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국가대표팀의 주전가드로까지 자리매김했지만, KBL과는 달리 국제무대에서는 아시아권 약체팀을 상대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진정한 탑클래스의 반열로 평가하기에는 의문부호를 남겼다. 

지난 시즌 MVP 수상도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다. 비록 허훈의 개인성적은 훌륭했지만 소속팀 KT는 21승 22패로 고작 6위에 그쳤다. 코로나19 사태로 리그가 조기종료되지 않았다면 6강진출도 불투명했던 상황이었다. 2008-09시즌 주희정(당시 안양 KGC)처럼 팀성적(7위)과 별개로 MVP를 수상한 사례도 있지만, 당시에는 주희정의 활약상이 독보적이었고 상위권팀에 뚜렷한 경쟁자가 없었던 특수한 상황이었다.

반면 지난 2019-20시즌에는 김종규같이 허훈에 비하여 개인성적에서 뒤지지 않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고 팀성적은 오히려 월등히 앞섰다. 심지어 전경기에 출장한 김종규과 달리 허훈은 팀이 치른 43경기중 무려 8경기나 결장했다. 허훈이 빠진 경기에서 KT는 1승 7패에 그쳤지만 이는 허훈의 부재라기보다는 외국인 선수의 공백이 더 치명적이었다. 과연 '허재의 아들'이라는 화제성이 아니었더라도 허훈이 MVP를 수상할 수 있었을까라는 측면에서 봤을때 인기투표 형식으로 변질된 기자단 투표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0-21시즌 개막이 다가온 현재, KT는 올해도 냉정히 말해 중위권 정도의 전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허훈과 양홍석이 이끄는 국내 주전들은 수준급이지만 주전과 벤치의 격차가 크다. FA로 영입에 근접했던 이대성(고양 오리온)과의 계약이 끝내 불발되며 전력보강에 실패한 것은 아쉽다. 지난 시즌 외국인 선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KT는 새 외인 마커스 데릭슨과 존 이그부누가 얼마나 빨리 팀에 적응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올시즌 프로농구 외국인 선수들은 NBA 경력자들이 대거 늘어나며 수준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 쉽지 않은 경쟁이 될 전망이다.

시범무대라고 할 수 있는 지난 컵대회에서 KT는 선수들의 조직력과 컨디션이 아직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조기탈락했다. 허훈도 기록상으로는 나쁘지않았지만 공격형 가드로서 장기인 득점력을 마음껏 보여주지 못했다. 컵대회에서 보여준 모습이 각팀의 100% 전력이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KT의 성적이 허훈의 활약에 좌우된다는 것은 올해도 분명해 보인다.

올 시즌 팀을 한단계 더 높은 자리로 끌어올리는 것과, MVP 수성은 허훈에게 중요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서동철 감독의 3년 계약 마지막 시즌을 맞이하는 KT는 지난 두 시즌 연속 6위에 그친 것보다 더 높은 순위를 기대하고 있다. 허훈이 (이상민 현 삼성 감독·1998~1999년과 양동근(2006~2007년) KBL 역사에 단 둘밖에 없는 백투백 MVP의 계보를 잇기 위해서 '팀을 더 많이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리더'라는 것을 증명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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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훈 프로농구MVP 부산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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