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K리그1 전통의 명가이자 라이벌로 꼽히는 수원 삼성과 FC서울은 올시즌 나란히 동병상련의 시기를 겪고 있다. 19라운드까지 치른 현재 서울은 6승 3무 10패(승점 21)로 7위, 수원은 4승 5무 10패(승점 17)로 11위에 그치고 있다.

정규리그 우승 횟수만 모두 합쳐 10회에 이르는 두 팀의 명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다. K리그에 스플릿 체제가 도입된 이래 서울과 수원 모두 상위스플릿(6위 이내) 진출에 실패했던 시즌은 아직 전무하다. 두 팀은 나란히 올시즌 성적부진으로 사령탑이 교체(최용수, 이임생)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필 오는 13일 열리는 K리그1 20라운드에서는 서울과 수원의 라이벌전이 기다리고 있다. 두 팀의 더비는 그동안 '슈퍼매치'로 불리며 K리그1 최고의 흥행카드로 꼽혔지만 두 팀의 위상이 나란히 초라해진 올시즌에는 '슬퍼매치' 혹은 '실패매치'라는 웃지못할 농담으로 더 회자되는 상황이다.

위상은 많이 떨어졌지만 라이벌전다운 경쟁심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10라운드 첫 맞대결에서는 양팀이 난타전 끝에 3-3으로 비기며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다른 팀들과의 대결에서 저조했던 두 팀의 경기력이 라이벌전을 맞이하자 확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을만큼 의외의 재미를 선사했다는 호평를 받았다. 역대 전적에서는 34승 24무 32패로 서울이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K1리그 수원 삼성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박건하 감독.

K1리그 수원 삼성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박건하 감독. ⓒ 수원 삼성블루윙즈

 
이번에도 두 팀 모두 승리가 절박하다. 수원은 현재 최하위 인천과도 승점 차가 3점밖에 되지 않아 이제 강등권 추락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이고, 서울도 지금으로서는 상위스플릿 진출을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다. 상하위 리그가 분리되는 파이널라운드까지는 이제 단 3경기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두 팀 모두 갈 길이 바쁘다. 비록 우승을 놓고 폼나게 경쟁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지만, 조금 다른 의미에서나마 여전히 두 팀이 라이벌전에 임하는 각오가 비장하고 절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양팀의 역대 91번째 '슬퍼매치'를 앞두고 전반기 맞대결 때와는 달라진 변수들이 주목받고 있다. 일단 두 팀 모두 사령탑이 달라졌다. FC서울이 최용수 감독이 물러난 이후 김호영 감독대행 체제에서 반등에 성공한 가운데, 수원은 최근 이임생 감독의 후임으로 박건하 신임 감독을 영입했다.

수원은 지난 8일 박건하 감독을 구단의 6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계약기간은 2022년까지다. 지난 7월 이임생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물러난 이후 주승진 감독대행 체제로 두 달 가까이 팀을 꾸렸으나 여전히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원은, 구단의 창단 멤버이자 레전드 박건하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는 승부수를 던졌다. 서울과의 슬퍼매치가 박 감독의 수원 사령탑 데뷔전이 됐다.

박건하 감독은 1996년 수원의 창단멤버로 입단해 2006년 은퇴할 때까지 수원에서만 원클럽맨으로 활약하며 K리그 통산 333경기에서 54골 34도움을 기록했다. 수원에서 박 감독이 들어올린 각종 우승 트로피만 16차례에 이른다. 현역 은퇴 후에는 수원 코치와 매탄고 감독을 거쳐 올림픽대표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코치로 활약했으며, 클럽무대에서는 K리그2 서울 이랜드 감독-다롄 이팡, 상하이 선화(이상 중국)에서 코치 등을 역임했다.

박건하 신임감독에게는 여러모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박 감독의 현역 시절과 달리 수원은 지난 몇 년간 모기업의 지원이 급격히 줄어 예전처럼 호화멤버들이 넘쳐나던 스타군단이 아니다. 전임자인 서정원-이임생 감독도 모두 구단의 부족한 지원과 팬들의 높은 기대치 사이에서 부담감에 시달려야했다. 수원은 당초 주승진 감독대행을 승격시키는데 무게를 두는 듯했지만 주 대행이 감독직 수행에 필요한 P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며 급하게 박 감독 영입으로 선회한 것에 가깝다.

더구나 박 감독은 지도자 경력은 풍부하지만 코치가 아닌 감독으로서는 2016년 K리그2 서울 이랜드를 반년 정도 맡았던 것이 전부이고, 1부리그 감독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하위 인천이 최근 조성환 신임 감독 체제에서 무서운 상승세를 타며 수원을 추격하고 있는 상황이라 '슬퍼매치'에서 패배하고, 인천이 부산을 잡는다면 양팀의 승점차가 사라질 수도 있다. 더구나 수원은 최근 서울을 상대로는 2015년 이후 17경기 연속 무승(8무9패)에 그치며 고전하고 있다. 다행히 박 감독은 이랜드 시절에도 시즌 중반에 지휘봉을 잡아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던 경험이 있고, 내용면에서도 공격적인 축구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은 기대를 모으게 한다.
 
 30일 오후 울산 문수구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1 2020' 18라운드 FC서울과 울산 현대 경기에 교체 출전으로 나선 서울 기성용 선수

8월 30일 오후 울산 문수구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1 2020' 18라운드 FC서울과 울산 현대 경기에 교체 출전으로 나선 서울 기성용 선수 ⓒ 한국프로축구연맹

서울은 '돌아온 유럽파' 기성용의 컨디션 회복 여부가 변수다. 서울은 김호영 감독대행 체제에서 깜짝 3연승을 거두며 중위권으로 치고 올라오는 듯했지만 이후 3경기에서는 다시 2무 1패로 부진하다. 최근 3경기에서 득점은 한 골이었고 그나마도 상대 자책골일만큼 득점 가뭄이 심각하다. 상위스플릿 진출의 마지노선인 6위 강원과는 서울을 포함하여 4팀이 골득실차이로 순위가 나뉠만큼 박빙의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한계단 아래인 10위 부산도 불과 1점차다. 아차하다가는 서울도 다시 강등권 추락을 걱정해야할 처지까지 몰릴 수 있다.

올여름 이적시장에서 11년 만에 국내 무대로 복귀하여 친정팀 서울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된 기성용은, 위기의 팀을 구해줄 히든카드로 기대를 모았지만 아직까지는 다소 실망스럽다. 예상보다 컨디션 회복이 늦어지며 교체로만 2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고 공격포인트는 아직 기록하지 못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과정이기도 했다. 기성용은 2019년 잉글랜드 뉴캐슬 시절부터 스페인 마요르카에 이르기까지, 주전경쟁과 잔부상, 코로나19사태로 인한 리그 중단 등 악재가 겹치며 제대로 풀타임 경기를 소화해본 건 1년이 넘었다. 간간이 보여지는 발재간과 패싱 센스는 살아있었지만 냉정히 말해 체력문제나 경기감각 등에서 정상 수준에는 확연히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김호영 감독대행은 "기성용이 아직 90분을 소화할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다. 지금은 기성용이 팀에 맞추는 게 우선이다"라며 선수의 이름값에 대한 과도한 기대치에 선을 긋기도 했다.

서울의 전력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기성용이 한시라도 빨리 몸상태를 끌어올려야한다. 기성용이 중원에서 김원식-주세종 등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빌드업의 시발점 역할을 해줘야 서울의 공격루트가 한결 살아날 수 있다. 올시즌 서울의 중요한 고비라고 할 수 있는 수원전에 기성용이 K리그 복귀 이후 첫 선발로 출전할 수 있을지도 관심을 모은다.

수원과 서울 모두 가장 어려운 시기에 '돌아온 레전드'들의 활약에 거는 기대가 크다. 박건하 감독과 기성용 중 누가 위기의 슬퍼매치에서 팀을 구해내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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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하감독 기성용 슬퍼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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