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의 한 시대를 풍미한 두 스타 이청용(울산)과 기성용(서울)이 오랜만에 K리그 그라운드에서 재회했다. 비록 이제는 같은 팀이 아니라 경쟁 상대로 만났지만 두 사람의 실력도 우정도 변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청용과 기성용은 지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FC서울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한국축구에 '쌍용' 열풍을 일으킨 주역들이다. 국가대표에서도 연령대별 대표팀을 비롯하여 성인대표팀까지 A매치만 합계 199경기(기성용 110경기, 이청용 89경기)를 소화하며 2000년대 후반~2010년대 한국축구의 중추를 책임졌다. 두 선수는 서울을 떠난 이후에는 유럽무대로 진출하며 잉글랜드-독일 등 유럽의 상위리그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30일 오후 울산 문수구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1 2020' 18라운드 FC서울과 울산 현대 경기에 선발로 나선 울산 이청용 선수.

30일 오후 울산 문수구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1 2020' 18라운드 FC서울과 울산 현대 경기에 선발로 나선 울산 이청용 선수. ⓒ 한국프로축구연맹

 
두 선수는 올시즌을 앞두고 나란히 K리그 복귀를 선택했다. 당초 친정팀 FC서울에서 쌍용이 다시 한번 한솥밥을 먹는 장면도 기대됐지만 운명은 엇갈렸다. 이청용은 서울이 아닌 울산 현대 입단을 선택했고, 기성용은 한 차례 협상이 난항을 겪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스페인무대를 거쳐 올여름 결국 서울로 복귀를 확정했다.

30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울산과 서울의 2020 K리그1 18라운드 경기는 두 선수가 11년만에 K리그에서 재회한 무대였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두 팀이 더 이상 팀동료가 아닌 상대편 선수로 만났다는 것 뿐이었다. 경기 전부터 두 선수가 나란히 앉아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두 선수는 유럽무대에서 활약하던 기간에도 소속팀이 1,2부리그로 엇갈리거나 부상-주전경쟁 등의 이유로 맞대결이 무산된 경우가 많았다. K리그에서도 지난 6월 20일 울산-서울의 첫 대결에서는 이청용이 부상으로 결장했고 기성용은 아직 서울로 복귀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청용이 친정팀 서울을 적으로 만난 것이나, 기성용이 이청용을 K리그에서 상대팀 선수로 만난 것도 모두 이날이 처음이었다.

이청용은 이날 오른쪽 날개로 선발출전했고, 기성용은 K리그 복귀 이후 처음으로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공교롭게도 울산에는 이청용 외에도 고명진, 신진호, 김태환 등 서울을 거쳤던 선수들이 대거 선발로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승부에서 가장 빛난 것은 단연 이청용이었다.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이청용은 친정팀 서울을 적으로 상대한 첫 경기에서 선제 결승골까지 터뜨렸다.

0-0으로 맞선 전반 18분 신진호가 차올린 코너킥 때 문전 혼전 중 재치있게 오른발 터닝슛으로 서울의 골문을 갈랐다. 울산은 주니오와 정훈성의 릴레이포로 3-0 대승하며 지난 원정에 이어 또 한번 서울을 완파했다. 또한 울산은 승점 45(14승3무1패)로 강원에 패한 2위 전북과의 승점차를 4점차로 벌리며 선두 독주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이청용은 끝까지 친정팀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았다. 이청용은 서울을 상대로 득점에 성공하고도 특별한 세레머니를 하지 않았다. 이청용은 이후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골이 들어간 것은 기뻤지만, 상대가 친정팀이고 제가 첫 프로생활을 한 팀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세레머니를 자제했다. 제가 친정팀을 존중하는 방법"고 밝혔다.
 
 30일 오후 울산 문수구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1 2020' 18라운드 FC서울과 울산 현대 경기에 교체 출전으로 나선 서울 기성용 선수

30일 오후 울산 문수구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1 2020' 18라운드 FC서울과 울산 현대 경기에 교체 출전으로 나선 서울 기성용 선수 ⓒ 한국프로축구연맹

 
기성용은 0-2로 뒤진 후반 20분 팀의 마지막 교체 카드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서울에 합류한 뒤 발목 부상 재활을 거쳐 최근에야 팀 훈련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진 기성용으로서는 여전히 최상의 몸상태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후반 30분 한승규의 슈팅으로 이어진 과감하고 예리한 전진 패스 한 방으로 알 수 있듯 특유의 센스와 시야는 여전했다.

득점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기성용의 가세가 서울의 공격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서울은 확실히 기성용 투입 이후 공격에 활기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기성용은 체력적으로 아직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어도 베테랑답게 경기를 침착하게 풀어갈 줄 아는 여유를 보였다. 울산에 무너지며 연속 경기 무패행진을 4경기에서 마감한 서울은 그나마 기성용의 복귀로 앞으로의 전력 상승에 대한 기대를 걸 수 있다는 것에 작은 위안을 삼았다.

경기 종료 이후에는 기성용과 이청용 외에도 고명진(울산), 박주영, 고요한(이상 서울) 등이 함께 어우러져서 기념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서울에서 혹은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오며 친분을 쌓아온 이들이다. 선수들은 엇갈린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우정을 다지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선수들간의 개인적인 우정은 그라운드 밖 사석에서 나누거나 최소한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마무리하는 게 모양새가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해당 선수들간의 친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승부와 우정은 별개라고 할 수도 있지만, 특정팀 팬들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기성용과 이청용 모두 앞으로 소속팀과 K리그를 위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선수들이다. 앞으로의 축구인생 후반기는 개인의 활약은 물론이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롤모델로서 한국축구에 '베테랑의 마무리'에 대한 좋은 선례를 남겨줘야 한다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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