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의 선수기용방식에 불만이 있거나 코칭스태프와 불화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스포츠 선수 중에 트레이드를 좋아하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정든 동료들과 익숙한 환경을 떠나 낯선 사람들과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엔 그런 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트레이드에 불만을 품고 은퇴를 선언하던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트레이드는 분명 선수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트레이드로 그 선수를 영입한 구단은 기본적으로 많은 기회를 보장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레이드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KBO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성장한 선수들은 수도 없이 많다. 만년 유망주에서 트레이드 후 리그 홈런왕을 차지한 김상현과 박병호(키움 히어로즈)가 있었고 LG트윈스 불펜의 핵심으로 성장한 진해수도 트레이드 전까지는 그저 그런 투수에 불과했다.

2020년에도 시즌 전에 두 건, 시즌 개막 후 세 건의 트레이드가 성사되면서 벌써 다섯 번의 거래가 있었다. 물론 노수광(한화 이글스)-이태양(SK 와이번스) 트레이드를 제외하면 주전 선수들 간의 트레이드는 없었기 때문에 트레이드의 우열을 가리기엔 지나치게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올 시즌에도 트레이드 후 각 팀에서 좋은 기량을 선보이며 새로운 구단에서 팬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선수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롯데의 후보에서 키움의 주전 3루수로 도약한 전병우

 
 12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NC 다이노스 경기, 연장 10회초 키움 선두타자 전병우가 좌중간 2루타를 날리고 2루 베이스를 밟은 채 덕분에 챌린지를 하고 있다.

12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NC 다이노스 경기, 연장 10회초 키움 선두타자 전병우가 좌중간 2루타를 날리고 2루 베이스를 밟은 채 덕분에 챌린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27경기에 출전해 타율 .364 3홈런13타점18득점의 성적을 올릴 때만 해도 전병우는 한동희가 실망스런 루키 시즌을 보낸 롯데 자이언츠에서 새로운 핫코너의 주인이 될 것이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전병우는 작년 시즌 29경기에 출전해 타율 .098 5안타2득점이라는 민망한 성적을 기록하며 최하위로 추락했던 롯데에서도 많은 출전기회를 얻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롯데는 올 시즌을 앞두고 새 외국인 선수로 유격수 딕슨 마차도를 영입했고 FA시장에서는 2+2년 최대 56억 원을 투자해 골든글러브 3회 수상 경력의 국가대표 출신 2루수 안치홍을 데려왔다. 롯데가 외국인 유격수와 FA 2루수를 영입하며 키스톤 콤비를 강화했다는 것은 내야 자원인 신본기, 김동한, 김민수, 오윤석 등이 모두 '만만한' 3루를 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기존 경쟁자인 한동희도 점점 프로 무대에서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롯데 내야에서 설 자리를 잃은 전병우는 코로나19로 시즌 개막이 미뤄진 지난 4월 6일 좌완 투수 차재용과 함께 외야수 추재현의 반대급부로 키움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었다. 키움의 경우 송성문(상무)이 입대하고 장영석(KIA 타이거즈)이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면서 3루가 최대 약점으로 꼽혔다. 여기에 시즌 개막 후 외국인 선수 테일러 모터까지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전병우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개막 엔트리에 포함됐던 전병우는 7경기에서 8타수 무안타로 부진하며 1군엔트리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5월 말 1군에 재합류한 전병우는 주전으로 출전한 4경기에서 17타수9안타(타율 .529) 1홈런7타점의 맹타를 휘두르며 키움의 주전 3루수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최근에는 한창 감이 좋았을 때에 비하면 다소 주춤하지만 전병우는 올 시즌 키움 내야수 중 3루수로 가장 많은 경기(13경기)에 주전으로 출전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병우가 키움의 핫코너 주전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안심하긴 이르다. 키움이 지난 20일 모터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빅리그 올스타 출신의 내야수 에디슨 러셀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러셀이 유격수나 2루수에 자리를 잡고 김하성이나 김혜성이 3루로 자리를 옮길 경우 1순위로 자리를 내주게 될 선수는 전병우가 가장 유력하다. 전병우로서는 트레이드된 지 두 달 만에 러셀이라는 변수를 만나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이적 후 1승1세이브1.86, 잠실이 체질에 맞았던 홍건희

 
 14일 오후 대전시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 한화 이글스 서스팬디드 경기. 3회 말 두산 홍건희 선수가 구원 투구하고 있다.

14일 오후 대전시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 한화 이글스 서스팬디드 경기. 3회 말 두산 홍건희 선수가 구원 투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어느 구단이나 데리고 있자니 팀에 도움이 안 되고 포기하자니 다른 팀에서 잠재력이 폭발할까 걱정되는 소위 '아픈 손가락' 같은 유망주들을 한 명 이상씩 데리고 있다. KIA에게는 우완 정통파 투수 홍건희가 바로 그런 존재 중 하나였다. 홍건희는 187cm, 92kg의 건장한 체구에서 내리 꽂는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매력적인 강속구를 가졌음에도 작년까지 프로 8년(군복무 2년 포함) 동안 단 9승 밖에 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 두산 베어스는 빠른 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선발 혹은 불펜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해 줄 수 있는 젊은 투수가 필요했다. 두산은 지난 5월 29일 SK로부터 우완 이승진을 트레이드로 영입했지만 이승진은 2경기에서 1이닝3실점(평균자책점27.00)을 기록한 채 퓨처스리그로 내려 갔다. 결국 두산은 팀에서 애지중지하던 유틸리티 플레이어 류지혁을 내주는 출혈을 감수하면서 홍건희를 영입했다.

홍건희를 영입했을 때 두산팬들의 반발은 매우 심했다. 군문제를 일찌감치 해결한 멀티 내야수 류지혁은 훗날 김재호와 오재원의 뒤를 이어 두산 내야를 이끌어 갈 1순위 후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산 구단과 김태형 감독은 이유찬, 권민석, 서예일 등 꾸준히 등장하는 내야 백업 요원보다는 5점 이상의 리드에서도 안심이 되지 않는 불펜을 보강하는 게 더 급하다고 판단해 홍건희 트레이드를 강행했다.

홍건희가 '두산의 절대적인 손해'라던 트레이드의 평가를 뒤집는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2주였다. 홍건희는 두산 이적 후 6경기에 등판해 9.2이닝 동안 단 2자책만을 기록하며 1승1세이브 평균자책점1.86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다. 특히 19일 LG전에서는 2.2이닝 4탈삼진 비자책1실점 호투로 이적 후 첫 승리를 수확했고 이틀 후에는 1이닝 무실점으로 1465일 만에 세이브를 따내며 두산 불펜의 새로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초 두산은 홍건희를 불펜과 5선발 자리를 오가는 스윙맨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20일 LG전에서 무명의 박종기가 6이닝 무실점으로 '인생투'를 펼치면서 새로운 5선발 요원으로 떠올랐다. 적어도 한동안은 홍건희가 선발과 불펜을 옮겨 다니는 부담을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과연 KIA에서 큰 기대를 모으며 잠재력을 인정받았던 유망주 홍건희는 두산에서 재능을 꽃피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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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트레이드 전병우 홍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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