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백년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백년의 기억>의 원제는 <코리아, 백년의 전쟁(Korea, A Hundred Years of War)>이다. 2019년 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 공식 초청작인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 감독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의 작품이다.

6월 항쟁 기념일이기도 한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에무시네마에서 영화의 시사회가 열렸다. 상영시간 112분짜리 다큐영화 <백년의 기억>을 보고 난 뒤 세 개의 키워드가 떠올랐다. 프랑스 감독, 통일, 단군.
 
 6월 10일 에무시네마에서 열린 다큐영화 <백년의 기억> 시사회가 끝난 뒤 진행된 행사장에서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의 영상메시지가 발표됐다.

6월 10일 에무시네마에서 열린 다큐영화 <백년의 기억> 시사회가 끝난 뒤 진행된 행사장에서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의 영상메시지가 발표됐다. ⓒ 최진섭

 
남북전문가 프랑수아 감독

아마도 관객들이 <백년의 기억>에 관심을 갖는다면, 한반도의 백년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이라는 것과 함께 프랑스 감독이 어떤 시선으로 우리 역사, 분단과 통일이란 주제를 다뤘을까 하는 호기심이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1971년생인 프랑수아 감독은 1990년에서 2000년까지 프랑스-독일 합작 방송국인 ARTE에서 기자로 일했고, 그 뒤에도 줄곧 다큐멘터리 감독 및 제작자로 활동했다. 어머니가 독일계인 프랑수아 감독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걸 지켜보면서 큰 영향을 받았고, 신입 기자 시절에 공산주의 이후의 동유럽 및 구소련에 대한 보도를 많이 다뤘다.

한국에 처음 온 것은 2000년 성사된 남북정상회담 관련 보도를 위해서이고, 2003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비자를 발급받아 북한을 방문했다. 지금까지 북한은 8번, 남한은 15번 방문했으며, 한반도 관련한 다큐멘터리 <프론티어와의 전쟁>(2003), <한반도 통일은 불가능?>(2013)을 제작했다. 2019년에 열린 제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평양유랑>이 초청작으로 상영돼 한국의 관객들과 만나기도 했다.

프랑수아 감독은 남북의 첨예한 이념 대립을 이해하기에 <백년의 기억>에서 어느 특정 정치 성향이나 체제를 옹호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기록물을 수집하고 남북 당사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이념적으로 다른 두 국가의 탄생과 역사를 전달한다. 그런 균형 잡힌 자세를 인정받았기에 서방 언론의 보도 행태에 일종의 피해의식을 지닌 북한 당국이 인터뷰에 협조를 한 것이다. 이 영화를 본 북한 관계자는 "영화의 관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우리들의 입장이 진솔하게 드러났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유럽인을 대상으로 제작된 <백년의 기억>이 한국의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것에 대해 "항상 희망했던 일이고 정말 영광스럽고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는 프랑수아 감독은 한국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 "북한에 갈 수 없는 남한 국민들이 한반도 분단의 비극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2000년 남북정상은 평양에서 6.15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우리사회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의 집권과 북미 대결을 거치면서 통일 열망이 식어가는 경향이 생겼다. 노무현 정권 이후 민주 개혁 진영도 통일보다는 평화에 방점을 찍는 경향이 있다.

2000년 남북정상은 평양에서 6.15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우리사회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의 집권과 북미 대결을 거치면서 통일 열망이 식어가는 경향이 생겼다. 노무현 정권 이후 민주 개혁 진영도 통일보다는 평화에 방점을 찍는 경향이 있다. ⓒ 최진섭

 
통일은 언제 가능할까?
 
영화는 일제의 침략과 독립운동, 해방과 분단 과정, 6.25와 휴전, 이후 남북의 체제경쟁과 대화, 약 100년에 걸친 한국의 근현대사를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남북미의 주요 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역사적 쟁점들을 다루는데, 핵심 주제는 분단과 통일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원산이 고향인 이호철 작가(2016년 작고)는 1.4 후퇴 때 일주일이면 고향에 돌아올 거라는 생각에 열여덟 살 나이에 달랑 책 한 권만 챙겨들고 고향을 떠났다고 말했는데, 결국 통일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84세의 나이에 남쪽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북의 리종혁(1936년 생) 통일연구소장은 영화에서 "나는 정전과 함께 일생을 산 셈이 되죠. 우리는 영구한 평화를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가능하다면 우리 세대에 통일이 이루어져야죠"라고 소회를 밝혔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통일이 얼마나 걸릴까요?'라는 물음에 이렇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김정일이 물었어요.
'대통령님, 이 과정이 얼마나 걸릴 거라 생각하세요?'
김대중 대통령이 대답했어요.
'남북이 진정으로 함께 협력하면 10년에서 20년 후면 통일에 이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김정일이 자기 생각은 다르다며, 그는 그 과정이 40년에서 50년은 걸릴 거라고 말했죠."
- <백년의 기억> ,임동원 전 국정원장 인터뷰 내용 중에서.

 
그때만 해도 남북해외 동포 사이에 통일의 열망이 높았음에도 단시일 내에 통일을 이루기는 어렵고 단계적으로 서서히 통일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만큼 통일에 대한 열정이 높지 않고, 특히 남한의 젊은 세대 사이에는 굳이 통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식마저 늘어나고 있다.

지난 4.15 총선에서 민주당계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한반도 이웃국가' 정책으로 대체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반도이웃국가공동체론은 김대중, 김정일 두 남북 정상이 2000년 6.15선언에서 합의한 통일방안(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은 물론, 1989년 노태우 정권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자주·평화·민주의 3대 원칙 아래 '공존공영→남북연합→단일민족국가'라는 3단계를 거쳐 통일을 실현하자는 것)보다도 몇 걸음 뒤로 후퇴한 것이라 하겠다. 어찌 보면 이는 현재 우리 사회의 시민, 특히 젊은층이 통일에 대한 관심이 없음을 반영한 공약이기도 하다.

6.15선언 이후 안타깝게도 우리사회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의 집권과 격렬한 북미 대결을 거치면서 통일 열망이 식어가는 부작용이 생겼다. 노무현 정권 이후 민주 개혁 진영도 통일보다는 평화에 방점을 찍었고, 지금까지도 그런 흐름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프랑스인 감독이 만든 <백년의 기억>은 객관적이고 거시적 안목에서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고, 통일이 민족사적 과제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고 이휘호 여사의 말로 끝을 맺는데, 이는 또한 한반도의 역사에 깊은 관심을 지닌 프랑스 감독의 희망 사항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통일이 반드시 오리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집권하는 사람의 뜻에 따라서 변화가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내 손자들이 증손자들이 통일된 한국에서 살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눈에 띄는 연출 장치는 태권도이다. 남북한의 태권도 품새인 단군, 삼일, 주체, 금강, 고려 등이 나온다. 감독은  단군, 단군신화를 통해 남북의 역사적 기원이 갖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눈에 띄는 연출 장치는 태권도이다. 남북한의 태권도 품새인 단군, 삼일, 주체, 금강, 고려 등이 나온다. 감독은 단군, 단군신화를 통해 남북의 역사적 기원이 갖음을 보여주고 있다. ⓒ 스틸컷

 
남북이 한 민족 한 뿌리임을 확인해주는 단군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맨 앞에 나오는 단군 관련 이야기다. 영화의 첫 장면은 북의 태권도 품새 중 '단군'으로 시작한다(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연출 장치는 단군, 주체, 삼일, 금강, 고려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남북한의 태권도 품새이다). 이어서 북이 1994년 개건한 평양의 단군릉을 보여주고, 단군성전에서 참배하는 남쪽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과 북이 단군을 시조로 하는 한민족임을 보여준 것이다.

영화에서도 언급했듯이 북은 마르크스주의도 마오주의도 아닌 김일성주의, 주체사상이 지도이념인 국가이며, 그리고 남쪽은 반공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와 기독교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국가이다. 이 두 체제의 이념적 공통분모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남과 북이 함께 중시하는 민족적 상징으로 단군 이상을 찾기 어렵다. 3·1 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서에도 '朝鮮建國(조선건국)'이라는 명칭으로 단기를 사용하여 연도를 표기하였다. 1948년(단기 4281년) 제헌 국회에서 새 정부의 연호로 단기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였으며, 5.16군사혁명 직후인 1962년부터 정부 문서에서 서기를 사용했다.

지금도 전국체전이 열리면 단군이 하늘에 제를 올렸다는 강화 마니산 참성단에서 성화를 붙이고 있다. 일제가 조선을 침략한 후 중점을 둔 사업 중의 하나가 단군을 역사에서 지우고 사료를 불태우는 일이었고, 창씨개명과 한글을 말살하는 작업이었다. 단군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뿌리이면서 전체 민족성원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제가 우리 역사에서 지우기 위해 혈안이 됐던 것이다.

프랑수아 감독은 "만약 이 영화가 DMZ 위로 작은 다리를 놓을 수 있다면 정말 자랑스러울 것이다.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남과 북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 그것이 편집에 불과하다 할지라도"라는 메시지를 한국의 관객에게 전했다. 우리는 남과 북의 통일을 위해 영화 밖에서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 대화의 소재 중에 가장 근원적이면서 각계각층을 포괄할 수 있는 소재는 단군이 아닐까 싶다.
 
 프랑수아 감독은 <백년의 기억>이 한국에서 상영되는 것을 기쁘게 여기면서 "이 영화가 DMZ 위로 작은 다리를 놓을 수 있다면 정말 자랑스러울 것이다"라는 소망을 밝혔다.

프랑수아 감독은 <백년의 기억>이 한국에서 상영되는 것을 기쁘게 여기면서 "이 영화가 DMZ 위로 작은 다리를 놓을 수 있다면 정말 자랑스러울 것이다"라는 소망을 밝혔다. ⓒ 스틸컷

 
서로 다른 것에 대한 이해와 이음
 

<백년의 기억>은 전국예술영화관협회에서 수입·배급을 맡았는데 11일부터 서울 에무시네마를 비롯해 10여 곳의 전국 예술영화관에서 상영을 한다. 이들 영화관에서 뽑은 한 줄 리뷰가 <백년의 기억>을 압축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우리가 손잡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아트나인)
"서로 다른 것에 대한 이해와 이음."(필름포럼)
"아픔에서 시작되어 분노와 희망이 뒤범벅된 내 인생 최고의 작품, 그런데 이게 프랑스 이방인의 작품이라니."(안동중앙아트시네마)
"낯익은 분단사를 낯설고 이채롭게 재구성한다."(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유럽인들의 한반도에 대한 시각을 제대로 교정한 영화."(씨네아트리좀)

 
유럽의 관객을 상대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최대 장점으로는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 단편적이고 서구 언론 중심의 일면적 지식을 갖고 있는 유럽인에게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동시에 이 영화는 유럽인뿐만 아니라 한국의 비극적 분단 현실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거나, 통일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대하는 한국인, 특히 젊은 세대에게 '낯익으면서도 이채로운' 작품이라 하겠다.
백년의 기억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 에무시네마 전국예술영화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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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채식과 마라톤, 지금은 달마와 곤충이 핵심 단어. 2006년에 <뼈로 누운 신화>라는 시집을 자비로 펴냈는데, 10년 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만한 꿈이 남아있기 바란다. 자비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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