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고양이를 키우는 형편이 안되기에 온라인상에 올라와 있는 남의 고양이 사진과 영상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랜선 집사'다. 나 또한 수많은 랜선 집사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랜선 주인'도 아니고 왜 하필 집사냐고? 자고로 고양이를 대할 때는 '내가 너의 주인'이란 옹졸한 마인드를 버리고, '제가 당신의 집사입니다, 암, 그렇고 말고요'란 겸손한 자세가 필수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 말랑말랑한 젤리 같은 발바닥도 한 번 조물조물 만져 볼 수 있다. 물론 운이 좋다면 말이다.
 
랜선 집사들 사이에 화제가 된 고양이의 사진과 영상 아래는 비슷한 뉘앙스의 댓글들이 넘쳐 난다. "나만 없어, 고양이" 그렇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만 없다. 이렇게 분할 데가 어디 있나? 나처럼 나만 없는 고양이로 인해 분하기 그지없는, 전국의 수많은 랜선 집사들을 위해 준비했다. 사랑스러움은 물론 특유의 영특함으로 마약 중독자 집사를 갱생시킨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이다.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국 영화로 2017년 국내에서 개봉했다. < A Street Cat Named Bob >(길 고양이 밥)이란 제목의 에세이가 원작이고, 이 원작은 18개국에서 번역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도 2013년 영화와 동명의 제목으로 발간되었다.
 
배우 루크 트레더웨이가 고양이 밥을 만나 인생이 역전하는 주인공 제임스 역을 맡아 열연했고, 실존 인물인 제임스가 키우는 실존 고양이 밥이 영화 속 '밥'을 연기한다. 미리 경고하자면, 밥의 연기는 정신 못 차리게 사랑스러우므로 본인의 심장이 약하다 싶으면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끊어서 보길 권한다. 
 
제임스는 어린 시절에 마약 중독에 빠져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은 노숙자 신세다. 온종일 거리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지만, 그마저도 신통치 않아 그렇게 번 돈으로는 따뜻한 밥 한 끼 사 먹을 수가 없다. 게다가 매번 이를 악물고 약을 끊기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사회 복지사 벨(조앤 프로갯)은 그런 제임스에게 연민을 느끼고, 제임스가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임대 주택에서 살 수 있도록 돕는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집에서의 첫날밤에 감격한 제임스. 그때, 집의 열린 창틈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온다. '밥'이다.
 
사실 내가 고양이를 직접 키우는 대신 랜선 집사로 머무는 길을 택한 데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서에 떡하니 적힌 '반려동물 사절'이라는 문구 때문이다. 아, 이래서 계약서는 꼼꼼하게 읽어봐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이왕이면 빈곤한 자취생인 나보다는 좀 더 부유한 집사를 만나 좀 더 널찍한 집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사는 편이 고양이 입장에서 더 나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내 발목을 잡는다.
 
출근하면 혼자 남게 될 고양이도 걱정스럽다. 인터넷 검색창에 "고양이도 외로움을 타나요?"란 질문을 쳤더니 단호한 대답이 이어진다. "고양이도 외로움을 탑니다. 다만, 자존심이 강해 티를 내지 않을 뿐이죠."
 
그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젠 정말 고양이를 키워야 하지 않을까?'는 랜선 집사들의 오랜 고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당신의 그 고민은 배가 될 것이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이미 흔들리고 있는 당신을 위해, 조심스럽게 밥을 소개하겠다.
 
일단 녀석은 '치즈냥'이다. 노란색, 하얀색, 연갈색 털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한 덩이의 치즈처럼 보이는 고양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통통한 발등과 똘망똘망한 호박색 눈동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심지어 개인기는 '하이파이브'다. 제임스의 어깨에 얌전히 앉아서 앞발을 들어 보이며 당신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하는 밥을 당신이 과연 거부할 수 있을까?
 
사실 자기 밥값조차 제대로 벌지 못하는 처지의 제임스에게 고양이는 사치다. 그래서 그는 연신 "내 고양이도 아닌데요, 뭘" 해가면서 밥의 존재를 애써 부정한다. 그러나  제임스는 상처입고 오갈데 없는 밥이 어쩐지 자신과 닮아있다는 생각에, 밥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에서 사랑은 길들이는 것이라던 여우의 말처럼, 밥이 결국 제임스를 길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제임스가 밥을 길들인 것이 아니다. 밥이, 제임스를 길들였다. 역시 고양이다.
 
제임스가 길거리 공연인 버스킹으로 먹고 사는 인물로 나오는 만큼, 영화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그의 노래를 감상하는 것 또한 이 영화의 큰 재미다. 오랜 노숙 생활로 인해 퀭한 얼굴, 누렇게 썩어있는 이, 꼬챙이처럼 비쩍 야윈 몸까지, 언뜻 보면 제임스는 인생에 실패한 낙오자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또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따라서 영화 속 제임스가 부르는 노래 역시 시종일관 따뜻하고 아름답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죠. 그건 흐르는 강물처럼 시작과 끝이 없어요. 어떤 날은 슬픔에 허우적거리다가 어떤 날은 새롭게 태어난 것 같죠. 그 모든 상처와 고통 그 모든 외로운 밤들 모두가 당신의 일부예요. 사람들이 일부러 상처 준 건 아닐 거예요. 착한 이들도 가끔 그래요
                             -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OST 'don′t give up' 중 가사 일부
 

제임스는 살면서 수많은 실수를 했고, 또 헤어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처절한 실패를 겪었지만 그럼에도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밥을 만나면서 깨닫는다. 누군가를 먼저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만이,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당신이 지금 혹시 무슨 일인가에 마음이 상해 있다면, 또는 소중한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일단 밥이라는 존재가 두말할 필요 없이 당신에게 힐링 그 자체가 되어줄 것이다.  알고 있겠지만 결국, 고양이가 세상을 구한다.
 
 
내 어깨 위 고양이 바 제임스 보웬 베스트샐러 원작 실화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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