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수선공

영혼 수선공 ⓒ kbs2

 
또 한 편의 의학 드라마가 찾아왔다. 지난 6일 첫 방송을 시작한 KBS 2TV 수목드라마 <영혼 수선공>이다. 안타깝게도 목요일 밤 화제작인 tvN <슬기로운 의사 생활>과 시간대가 약간 겹치는 바람에 크게 주목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마 배우 신하균이 정신과 의사 이시준으로 분하여 '정신과' 분야를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과는 또 다른 지점에서 의학적 힐링을 지향한다. 
 
마음이 아픈 시대 

아마도 그 '힐링'의 출발점은 친구와 함께 바닷가를 찾은 한우주(정소민 분)가 옷을 입은 채로 바다에 뛰어들어 있는 힘껏 오열하고 절규하는 그 장면이 아니었을까? 

뮤지컬 배우인 한우주는 드라마 초반부터 여러 가지 일에 휘말리며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과 더블 캐스팅 된 아이돌의 팬들이 자신의 공연 차례에 상복을 입은 채 나타나 앞자리를 차지하자 결국 참지 못하고 그들이 보낸 화환을 발로 찬다. 또 10년 만에 신인상을 받게된 날 억울하게 경찰서에 끌려가게 된다. 그것도 모자라 인터넷에 자신이 찍힌 영상이 있다는 걸 알고 방송국에 다니는 남자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려 하지만 그가 변심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에 격분한 한우주는 야구방망이로 남자친구의 차를 부순다. 

묘하게도 한우주가 '정신줄'을 놓는 이 장면들은 공감을 자아낸다. 우리도 살다가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화를 꾹꾹 눌러 참기에, 그녀의 일탈과 분노 조절 장애에 공감함과 동시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흔히 '정신줄을 놓는다'라는 말을 쓴다. 어쩌면 실낱같은 경계를 두고 정상과 비정상이 되어 버리고 마는 '상황'을 무수히 겪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신과 의사 이시준은 "미친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겁니다"라는 진단을 내린다.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고통 속에서 결국 정신을 놓고 자신의 가슴에 빨간 약을 바르던 엄마를 "괜찮다"며 안아주었던 딸과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현병에 걸린 장재열(조인성)을 품어주던 지해수(공효진)의 사랑이 떠오르는 처방이다. 이렇게 <영혼 수선공>은 앞서 노희경 작가가 다뤘던 '정신'의 문제를 보다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극중 한우주는 안 그래도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각고의 노력 끝에 10년 만에 신인상을 타게 되던 날 음주 측정 거부로 체포되고 만다. 

그런데 이 '체포'가 사실은 해프닝이었다. 이시준이 애써 지켜주고 싶었던 망상증 환자 동일이 자신이 경찰이라고 생각하며 병원에서 탈출한 뒤 벌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한우주는 모든 것을 잃는다. 언론은 지난 밤 마신 술로 그녀를 음주 운전자로 만들어 버린다. 제작사 대표는 하루 아침에 그녀의 배역을 없앤다. 오디션에서 나서보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신다. 
 
 영혼 수선공

영혼 수선공 ⓒ kbs2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지만 온전히 자신에게 닥쳐온 불리한 결과들. 하지만 한우주가 맞닥뜨린 사건 속 억울함의 보편성은 <영혼 수선공>이 말하는 '아픔'의 근원이다. 한우주처럼, 혹은 한우주처럼은 아니지만 세상에 억울한 일 한번 안 당해본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녀를 억울하게 만든 동일은 어떨까. 시상식장에서 한우주를 체포하는 무리수를 뒀지만 매일 순찰을 돌며 취객을 선도하는 등 거리 정비에 솔선수범했고 날치기범을 향해 몸을 던졌다. 동일은 자신의 '선한 의도'와 상관 없이 '상실'이 가져온 망상에서 헤매고 있다. 경찰이 아니지만 경찰이고픈 자신의 '지향'이 그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 것이다. 

잃어버리고 가질 수 없음, 이것이야 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매번 곱씹으며 삼켜야 하는 대다수 고통의 근원 아닐까. 살아가면서 사람을, 부를, 일을, 관계를 성취하는 순간보다 그것을 가지기 위해 자신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질 수 없을 때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시간들이 오롯이 찾아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가슴 속에 빨간약을 바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마저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극중 한우주처럼 폭발하거나 동일처럼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한다. 

이시준이 건네는 위로와 치유 

그리고 이시준은 그런 사람들에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 그네> 속 의사 이라부처럼 정신과적 조치 이상의 '치료'를 통해 치유해준다. '대뇌 변연기의 도파민 과다'가 망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먹물'들의 주장으로 치부한 이시준은 가장 큰 원인을 고장난 마음에서 찾는다. 다른 사람의 잣대에 나를 가두지 말라, 칭찬도 비난도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 다 '찰나'라고 위로한다.

이시준의 위로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순찰을 하고 싶어 하는 동일과 함께 거리를 헤매는 등 직접 환자의 아픔에 뛰어든다. 그는 어떻게든 환자와 유대관계를 형성해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아픈 마음을 인정하고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다. 그런데 <공중 그네> 속 의사 아라부가 때로는 환자보다 더 정신이 나간 게 아닌가 싶듯 이시준 역시 매일 밤 잠 못들고 '살자'를 외치며 뛰는, 그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이다.

이렇게 아픔을 치유하는 사람과 아픈 사람의 간극 자체가 어쩌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드라마 <영혼 수선공>은 우리 시대 마음의 아픔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비록 최고의 화제작은 될 수 없을지 몰라도 그 제작 의도에 맞게 시청자들에게 '힐링'을 주는 작품으로 남을 있도록 '완주'하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영혼 수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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