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수업

인간 수업 ⓒ 넷플릭스

 
4월 2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간 수업>이 화제다. 진한새 작가가 고등학생이 주범이었던 범죄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저작한 이 작품은 <무법 변호사>, <개와 늑대의 시간>, <결혼 계약> 등 인기작을 만든 김진민 피디가 연출을 맡아 기대치를 높였다.
 
거기에 얼마 전 종영한 <이태원 클라쓰>에서 장근수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김동희가 분한 오지수가 사건을 이끈다. 1등급 성적표에 부모님 사인을 위조하는 고등학생 오지수는 자의적 '아싸(아웃사이더)'다. 그에게 삶의 목표는 '남들처럼' 사는 것이다. 남들처럼 무사히 고등학교를 마치고 남들처럼 대학도 가고 남들처럼 직장도 다니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지수에게는 가장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어머니는 도박 중독인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다. 그의 집을 찾은 배규리(박주현 분)의 말대로 지수는 쓰레기장같은 집에서 소라게를 벗으로 삼아 산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데 아직 고등학교 2학년에 불과한 지수가 어떻게 학원까지 다니며 1등급을 유지하는 걸까?
 
오지수의 무표정한 반문이 준 충격

그가 돈을 벌기 때문이다. 지수는 평범하게 살기 위해선 9000만 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돈을 벌기 위해 그는 자칭 '중개업'의 '보호업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알바'에 대해 배규리는 '쓰레기 포주업자'라고 일갈한다. 음성 변조로 철저히 자신을 숨긴 오지수는 조건 만남을 알선한다. 그리고 '바지사장' 왕철(최민수 분)을 고용해 알선 과정에서 간혹 벌어지는 불상사로부터 여성들을 '보호' 해주는 불법적 사업을 한다.
 
자신을 향해 '포주'라고 일갈하는 규리에게 지수는 자신이 하는 일은 '알선'과 '보호'를 해주는 사업이라고 무표정하게 반문하는데, 이는 <인간 수업>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다. 사회문제연구소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배규리와 오지수를 어떻게든 품어주려고 하는 담임 진우(박혁권 분)도 학교가 공부만 하는 곳이라는 걸 시인한다. 즉, 공부 말고는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는 곳.
 
 인간수업

인간수업 ⓒ 넷플릭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청소년 중 공부만 하며 순탄하게 대학이라는 관문을 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드라마 속 학급의 풍경만 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학교는 오로지 '공부'만으로 아이들을 재단하고 평가한다. 그 평가 안에선 월등함을 드러내며 선망을 받는 지수이지만, 정작 그의 실상은 '방치된 미성년'이다.
 
하지만 이 '방치된 미성년'은 어떻게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도덕적 일탈'을 선택한다. 그는 자신을 보호해줄 엄마도, 아빠도 없기에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인데, 그것이 '법'의 경계를 넘어서 버린 것이다. 제작진은 이렇게 보호받지 못한 청소년이 선택한 역설적 경계의 이탈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청소년의 문제를 폭로한다.
 
보호받지 못한 미성년의 극단적 선택 
 

미국의 심리학자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에는 흥미로운 사례가 하나 등장한다. 특수한 암에 걸려 죽어가는 부인을 둔 하인즈는 같은 마을에 사는 약사가 개발한 약이 아내의 암에 특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인즈는 약사를 찾아가 약을 얻으려 하지만, 이 부부의 사정을 알게 된 약사는 이를 이용해 10배나 비싼 가격에 약을 팔려고 한다. 하인즈는 결국 아내를 구하기 위해 약을 훔친다.
 
콜버그는 이 사례를 두고 12세~17세 청소년들은 아무리 아내가 위독하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즉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인습적 판단'을 하게 된다고 했다. 또 18세에서 25세에 이른 청년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법과 질서'를 준수하며 사회 속에서 개인의 의무를 떠올릴 수 있게 된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인간 수업>의 18세 오지수는 하인즈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오지수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한 그에게 미성년 보호의 의미는 인지되지 않는다. 더구나 법과 질서 따위는.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오지수에게 그런 도덕적 판단과 자각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지수만이 아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다수 인물 모두 각자 도덕적 결핍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는 오늘날 우리 사회와 학교가 겉으로는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올곧이 설 수 있도록 수업은커녕 조건조차도 마련해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아버지조차 아들이 그런 일을 해서 번 돈 6000만 원을 보자마자 들고 가버리는 사람인데, 어떻게 오지수가 인간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겠는가. 어머니는 지수만 홀로 두고 집을 나가고 학교는 그저 지수의 1등급에만 관심을 갖는다. 도대체 보호받아야 하지만 보호받지 못하고, 외려 상처만 입은 아이가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안타깝기만 한 이 소년의 현실 
 
 인간 수업

인간 수업 ⓒ 넷플릭스


드라마 속 지수는 목소리 변조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노련한 사업가이고, 동업자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자 경찰을 불러 위기를 모면하는 기지를 발휘하는 영민함을 보이지만, 선망하던 규리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그저 첫사랑에 빠져버리는 순진한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이 이중성이야말로 10대의 불안정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황으로 이 소년의 현실을 안타깝게 만든다.  
 
하지만 불법을 저지른 오지수가 치러야 할 대가는 가혹했다. 6000만 원까지 부를 축적해 조만간 '인간답게' 살 수 있겠다 생각하던 차에 배규리에게 사업의 정체가 노출되고 이후 허무하게 번 돈을 날린다. 지수는 파산한 와중에도 꼬박꼬박 학교를 나가는데, 그 모습은 그가 잡고 있는 지푸라기의 현실을 제대로 드러낸다.
 
지수는 배규리의 동업 제안을 어떻게 해서라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알바를 뛰어보지만 공부와 병행이 불가능하다. 결국 중간고사를 망치고야 마는 지수는 폭발한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규리와 손을 잡겠다고 한다. 다시 한 번 또 세상에 자신을 버린 소년 지수 앞엔 참혹하고 혹독한 '인간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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