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로농구를 빛낸 '최고의 별'들이 선정됐다. KBL은 20일 서울 강남구 KBL 센터에서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시상식을 개최했다. 비록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시즌을 정상적으로 완주하지못하고 조기종료되었지만 KBL은 비계량 부문을 포함한 개인상 시상은 예년과 다름없이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에 따라 별도의 공식행사 없이 KBL 센터에 수상자들만 초청해 약식으로 시상식을 진행했다.
 
 허훈

허훈 ⓒ 연합뉴스

 
가장 관심을 모은 국내선수 MVP는 예상을 깨고 허훈(부산 KT)이 차지했다. 허훈은 기자단 투표에서 63표를 획득, 47표에 그친 김종규(원주 DB)를 제치고 MVP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허훈은 베스트5와 플레이 오브 더 시즌 타이틀에도 선정됐다.

외국선수 MVP는 서울 SK를 공동 1위로 이끈 자밀 워니가 차지했다. 신인상은 김훈(DB)-감독상 수상자는 이상범 DB 감독이 각각 수상했다. 기량발전상은 김낙현(전자랜드)에게 돌아갔으며, 식스맨상은 최성원(SK), 최우수 수비상은 문성곤(KGC인삼공사)이 각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베스트5에는 허훈, 김종규, 워니, 송교창(KCC),캐디 라렌(LG)이, 수비 5걸에는 문성곤, 최성원, 치나누 오누아쿠(DB), 이승현, 장재석(이상 오리온) 이름을 올렸다.

아무래도 올 시즌이 정상적으로 종료되지 못한 상황에서 이뤄진 시상식이다보니 이변도 많고 수상 기준에 논란의 여지도 많은 결과가 대거 나왔다. 가장 화제가 된 부분은 역시 허훈의 MVP 수상이다.

허훈은 프로 3년 차에 부친인 '농구대통령' 허재와 형 허웅(DB)도 받아보지못한 정규리그 MVP의 영광을 누리게 됐다. 허재는 농구대잔치 시절 두 차례 시즌 MVP를 수상했으나 프로에서는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로 범위를 넓히면 97-98 챔피언결정전에서 역대 유일한 '준우승팀 출신 MVP'로 선정된바 있다. 프로농구 사상 '부자 MVP'는 허재-허훈 부자가 유일하다.

허훈은 올 시즌 35경기에 나와 평균 14.9점(전체 8위, 국내 선수 2위), 7.2어시스트(전체 1위)를 기록했다. 단일 경기 기록들을 잇달아 갈아치우며 강한 임팩트를 남긴 것이 수상의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허훈은 작년 10월 DB전에서 KBL 역대 최초로 3점슛 9개를 연속해서 집어넣는 기록을 세웠고, 이 플레이가 올시즌 KBL 최고 플레이(Play of the season)'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2월엔 KGC인삼공사를 상대로 24점 21어시스트를 기록, 리그 사상 처음으로 한 경기에 20점 20어시스트를 동시에 넘어서는 기록도 세웠다.

문제는 올시즌에 김종규라고 하는 허훈보다 더 유력한 경쟁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김종규는 DB가 합류한 첫 해만에 지난 2018~2019시즌 8위에 그쳤던 DB를 단숨에 1위로 끌어올렸다. 허훈에 비하여 화려함은 떨어졌을 뿐 개인 성적도 훌륭했다. 김종규는 올 시즌 팀이 소화한 43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평균 13.3점 6.1리바운드(국내선수 1위) 2어시스트 0.8블록슛을 기록했고 수치 이상의 높은 생산성을 보여줬다.

MVP가 인기투표가 아닌, 말그대로 '한 시즌 가장 가치있는 플레이를 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임을 감안할 때 팀을 더 많이 승리로 이끄는 플레이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없다. 다수의 농구 전문가들도 허훈보다 김종규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했다.

허훈은 역대 MVP중 시즌 경기 출장률(43경기 중 35경기 출전, 81.4%)에 가장 떨어지는 MVP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단순히 경기 출전수만 놓고보면 1998~1999시즌 이상민(45경기중 34경기 출전), 2006~2007시즌의 양동근(54경기중 40경기 출전), 2015~2016시즌 양동근(54경기중 45경기 출전)처럼 허훈보다 더 많이 결장한 사례가 있지만 차이점은 '국제대회로 인한 국가대표 차출'로 부득이한 경우였다는 것이다.

또한 허훈은 프로농구 사상 가장 낮은 승률을 기록한 팀에서 MVP를 배출한 사례가 됐다. 허훈의 소속팀 KT는 이번 시즌 21승 22패, 6위로 마무리했다. 팀 승률이 5할이 되지않는 팀에서 MVP가 나온 것도 역대 최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외국인 선수들이 계약을 해지하고 이탈한 상황에서 시즌이 조기종료되지않았다면 플레이오프 진출은 고사하고 순위가 더 내려갔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허훈에게는 차라리 시즌이 조기종료된게 어부지리가 된 셈이다.

프로농구 역사상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한 팀에서 MVP가 나온 경우는 2008-09시즌의 주희정(안양 KT&G, 현 KGC 인삼공사)이 있다. 당시 주희정의 소속팀 KT&G는 6강진출에 실패했지만 주희정은 플레이오프 탈락팀에서 MVP가 나온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였다.

하지만 당시 KT&G의 성적은 29승 25패(승률 .537)로 KT보다 높았고, 주희정은 54경기 전경기에 출전하여 15.1점 8.3어시스트 4.8리바운드 2.3스틸(어시스트-스틸 1위 국내선수 득점 3위)로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당시에는 상위권 팀에 주희정과 견줄만한 개인 성적을 올린 선수도 전무했기에 주희정의 수상 자격을 문제삼는 여론은 거의 없었다.

그에 비하면 허훈은 팀성적과 개인성적 모두 수상 자격에서 '역대 가장 무게감이 떨어지는 MVP'라는 꼬리표를 달게된 게 아쉽다. 올해 MVP는 김종규에게 돌아가야했다면 허훈은 기량발전상을 수상하는게 가장 합리적인 모양새였을 것이다. 기록으로 보이지않는 공헌도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화려한 하이라이트 장면에 집착하거나, '되는 스타 밀어주기'식의 인기투표로 변질된 MVP 투표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올해 KBL 수상의 또다른 논란거리는 신인왕이다. 예상대로 원주 DB의 김훈이 타이틀을 가져갔지만 그가 남긴 기록은 23경기에서 평균 10분 48초를 출전하여 2.7점 1.4리바운드에 불과하다. KBL 역대 신인왕 중 가장 초라한 기록이다.

김훈은 2003-2004시즌 이현호(은퇴) 이후 16년 만에 2라운드 출신 신인왕이자, 공백기를 딛고 프로 무대에서 재기에 성공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그의 노력과 열정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스토리와는 별개로 올해 KBL이 최악의 신인 흉작 시즌을 겪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시즌 출전 가능한 경기수의 절반만 소화하면 자격을 얻는 신인왕 수상 기준을 바꾸거나, KBL 신인 드래프트 개최 시점을 조정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밖에도 포지션 제한을 없앤 베스트 5나, 정작 리그 수비 하위권팀에서 수상자가 대거 나온 수비 5걸 등도 선정기준에서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만일 시즌이 정상적으로 마쳤더라면 똑같은 결과가 나왔을까.KBL은 리그가 아쉽게 파행을 겪은 상황에서도 개인상 시상을 강행했지만, 원주 DB와 서울 SK의 애매모호한 공동 1위 결정에서부터 개인상 선정 기준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깔끔하지못한 행보로 개운치않은 뒷맛을 남겼다.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는 점에서 더 신중한 선택이 필요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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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훈MVP 김종규 프로농구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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