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47회 한 장면

지난 11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47회 한 장면 ⓒ tvN

 
"별로 눈물 날 일이 아닌데도...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나네요."

멋쩍어하던 유재석의 이 말 한 마디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아마도 인지상정 아니었을까. 아이처럼 훌쩍이던 유재석에게도 이미 전해진 듯 보였다. 별달리 불평을 할 수도, 힘들다 내색할 수도 없는, 그래서 연신 "잘 지냅니다"라며 안심을 시키다 못 이긴 척 "사실 가족도 보고 싶다"며 속내를 꺼냈을 정 간호사의 마음이. 대구 의사회의 호소에 열 일 제쳐두고 대구로 달려간 260여 명 의료진의 마음이.

"코로나19 때문에 근심 걱정 많으시죠. 나날이 들려오는 소식에 많은 분들이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서로 돕고 노력하는 만큼 이 시기도 잘 헤쳐 나가리라 믿습니다. 대구 시민 여러분, 모두 힘내시기 바랍니다. 저희 모두 함께하겠습니다. 여러분, 힘내세요!"

최근 대구MBC '힘내요 대구경북!' 캠페인에 동참한 방송인 유재석. 영상 속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대구경북 시민들을, 그리고 국민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앞서 지난달 25일 유재석은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1억 원의 성금을 기부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자꾸만 목이 메네요"라며 고개를 돌렸다. 급기야 눈이 벌게진 채로 아이처럼 훌쩍였다. 11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에서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부득이하게 실내 촬영을 진행한 이날 방송에서 유재석을 울린 이는 대구의 한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에서 자원 활동 중인 정대례 간호사였다.

유재석의 눈물
 
 지난 11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47회 한 장면

지난 11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47회 한 장면 ⓒ tvN

 
"그냥 잘 있다고만 전하고 싶습니다(웃음). 다른 말은 별로 없고요, 잘 지내고 있다고만 전하고 싶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요."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화상 전화 너머로 정 간호사가 웃어 보였다. 처음처럼 밝은 톤 그대로였다. 의외로 반응이 담담했는지, 이미 눈시울이 불거진 유재석이 재차 물었다. "말을 좀 길게 안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라고.

그러자 정 간호사는 예의 환한 표정으로 "저희(간호사들)는 특별히 불편한 건 없다"며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상대가 일부러 힘을 낸다고 느껴서였을까. 갑자기 울컥한 유재석이 "이상하네요, 그냥 밝게 얘기하시는데 자꾸..."라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유재석에게 도리어 정 간호사가 "울지 마세요"라며 끊긴 대화를 이어나갔다.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사실 저희 가족도 보고 싶기도 하고요. 저희 병원도 걱정되고. 그렇지만 다들 잘 지내고 잘 이겨낼 거라 생각하고요.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파란 간호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로 자꾸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는 정 간호사의 얼굴을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유재석의 눈시울은 불거지고 있었다. 유재석의 눈물을 지켜본 시청자들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소셜 미디어상에서도 유재석의 눈물은 실시간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새 시즌 첫 방송임에도 최소한의 스태프로 실내 촬영을 진행한 이날 <유퀴즈>의 주제는 '전사들'(warriors)이었다. 그 '전사들'은 급작스런 국가 재난 사태로 인해 '일상'을 반납한 채 코로나 바이러스와, 낯선 환경과 싸우고 있는 의료진이었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상을 극복 중인 일반 시민들이었다.

일상을 함께 살아내는 시민들
 
 지난 11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47회 한 장면

지난 11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47회 한 장면 ⓒ tvN


의정부에 사는 택시 기사는 26년 동안 이렇게 손님이 없는 건 처음 봤다고 했다. 그렇게 만 원도 안 되는 밥값이 아까워 집까지 운전해서 끼니를 해결한다는 노로의 택시기사는 소독약을 비치한 채 위생에 신경 쓴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더 어려운 시대도 살았는데 조금만 참고 힘냅시다"란 말을 잊지 않았다.

일상이 달라진 건 물론 택시기사 뿐이 아니었다. 오히려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진 이들도 있었다. 택배 배송직원들, 방역업체 직원들이 그들이었다. 반면 거리는 눈에 띄게 한산해졌다. 길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퀴즈를 내고 그들의 일상을 듣는 예능이라 더더욱, <유퀴즈>가 포착한 같은 공간, 달라진 풍경은 눈에 확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봉사활동을) 멈출 수 없죠. 지역에 어려운 어르신이나 차상위층 어린이들한테 나눠준다거나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힘들다고 제가 다른 걸로 줄여야지 그걸 줄일 순 없죠. 그렇게 해서 제가 얻는 기쁨이 더 커요. 그걸 원동력으로 더 잘 버틸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수원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24회 출연자 배용호 사장은 빵을 무료로 나눠주는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는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제가 얻는 기쁨이 더 크다"며 '상생'이 그리 어렵고 고상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러주는 배 사장의 경험담은 분명 곱씹을 만했다.

제작진이 서울의 한 재래시장에서 접한 '착한 건물주' 사례를 조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터. 이전 출연자들 중 코로나19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의 '오늘'에 유독 집중한 것 역시도. 제작진도 생각 못했을 반전은 이들 생활 속 전사들의 입에서 나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하고 견뎌내자 하는 거지. 나만 이렇게 고통 겪는 거 아니잖아. 더 고통 겪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의사 분들, 간호사 의사분들. 어떻게 제가 능력자라면, (대구로) 가보겠어. 저는 그런 기술이 없잖아요. 그 분들 정말 고생하시는 거 생각하면... 가족분 들은 또 얼마나 마음 아프겠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분들을 위해서 마음으로 기도해주고, 우리가 함께 가줘야 하는 거지. 자꾸 흐트러트리면 안 되는 거지."

종로구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박응경 사장은 이렇게 전 세계에 불어닥친 코로나 19 시대의 우울을 극복하기 위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일러주고 있었다. 특히나 박 사장의 "자꾸 흐트러트리면 안 된다"는 한 마디는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이들을 향한 경종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용산에서 감자탕 가게를 운영 중인 14회 출연자 나태복, 신덕순씨가 보낸 박수의 의미 역시 값지긴 마찬가지였다.  

"고생하시는 의사분 들을 위해서 전국적으로 박수 한 번 치겠습니다." (나태복)
"우리 대구시민들 너무 힘든데. 힘내세요. 힘내시면 꼭 금방 이겨낼 거예요. 힘든 일 있어도 활짝 웃고 이겨내세요. 이겨내시라고 박수쳐드릴게요." (신덕순)


이렇듯 본인의 생계와 상관없이 대구 시민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의료진들을 격려하는 시민들의 모습이야말로 이날 <유퀴즈>가 전해준 작은 희망의 요체였다. 이런 시민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 탓이리라. 대구에서 자원 활동 중인 정 간호사의 얼굴을 마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재석의 눈물이 터져버린 이유 말이다. 
 
 지난 11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47회 한 장면

지난 11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47회 한 장면 ⓒ tvN

 
의료진의 소명감

"존경하는 5700 의사 동료 여러분! 지금 대구는 유사 이래 엄청난 의료 재난 사태를 맞고 있습니다. 선별 검사소에는 불안에 휩싸인 시민이 넘쳐나는 데다 의료 인력은 턱없이 모자라 입원 치료 대신 자가치료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모두 생명을 존중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선후배 형제로서 우리를 믿고 의지하는 사랑하는 시민들을 위해 소명을 다 합시다. 지금 바로 선별 진료소로, 대구 의료원으로, 격리병원으로 그리고 응급실로 와주십시오. 단 한 푼의 대가 한 마디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시민들을 구합시다."


<유퀴즈>가 '지난 2월 25일 한 60대 의사가 적어 보낸 호소의 글'이라고 소개한 이성구 대구광역시 의사회 회장의 글이다. 이후 이 회장은 격리병동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고 한다. <유퀴즈>는 이 회장의 호소에 즉각 응답했다는 서명옥 전 강남구 보건소장을 비롯해 시민들을 위해 대구로 달려간 의료진들의 목소리도 직접 들었다.

임관 직후 대구로 향해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던 신임간호장교들 중 한 명인 김슬기 간호장교는 연신 국민들을 소환하고 있었다. 대구국군병원에 투입되기 하루 전 <유퀴즈>와 인터뷰한 김 간호장교는 "간호업무에 최선을 다할 것을 국민들게 약속드립니다"라거나 "각자의 위치에서 다할 것이니 믿고 맡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책임감을 강조했다.

29살 임소진 간호사는 가족의 만류에도 대구를 찾았다고 했다. 임 간호사의 바람은 소박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커피 한 잔 편하게 마시고, 공원에서 바람 쐐는 것이 전부였다. 빨리 타향살이를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고도 했다.

"(의료진들) 다들 고생하고 있고 나름 보람도 느끼고 있고요. 각자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거든요. 그런 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 드리고 싶고. 저희가 잘 이겨내도록 하겠습니다."

대구 지역 거점병원 상황실에서 영상통화로 인터뷰한 이지연 감염내과 전문의의 다짐이다. 이들 의료진에게서 느껴지는 공통적인 감정은 짐작할 수 있다시피 어떤 사명감이었고, 책임의 무게였다. 가족과의 일상도, 커피 한 잔의 여유도 포기한 채 대구로 달려가게 만든 의료진의로서의 소명감 말이다.  

그 중 유재석이 계속 울컥한 지점은 '가족'이 소환될 때였다. 정대례 간호사가 가족들 얘기에 자꾸만 "괜찮다"고 할 때도, 서명옥 선생이 엄마가 대구로 향하는 걸 딸이 걱정했다는 얘기를 할 때도, 유재석의 눈물색은 어김없이 자극되고 있었다. 그 만큼 생명과 직결되는 상황임에도 아랑곳없이 소명을 다하고 있는 이들이 전하는 담담함은 감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지난 11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47회 한 장면

지난 11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47회 한 장면 ⓒ tvN

 
어쩌면 <유퀴즈>가 이날 준 감동의 정체는 그 담담함에 있었다. 우리는 매일 늘어가는 확진자 숫자를 목도하는 중이다. 하루하루 가짜뉴스들이, 뉴스의 홍수가 불안과 공포를 자극 중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상 속에서 서로를 위한 격려보다 우울감에 먼저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을 만나고, 대구로 달려간 의료진들의 상황을 직접 전해준 <유퀴즈>는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시민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시민들이 의료진들에게 격려를 보내고, 또 그 의료진들이 시민들을 통해 다시 힘을 얻으며, 희망을 나누고 '코로나 우울감'을 이겨내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뉴스가 전해주기 힘든 그 어려운 그 감정을 길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왔던 <유퀴즈>가 끌어내고 있었다. 신천지 관련 루머에 "나는 불교신자"라며 너스레를 떨던 유재석이 마치 아이처럼 훌쩍이는 모습을 통해서. 
유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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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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