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츠> 스틸컷

<캣츠>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젤리클 무도회의 날. 런던 길거리의 고양이들은 '올드 듀터러너미(주디 덴치)'에게 선택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들을 하나 둘 풀어놓는다. 그러나 새로운 삶의 기회를 독차지하려는 '맥캐버티(이드리스 엘바)' 때문에 젤리클 무도회는 난관에 봉착한다.  

<캣츠>는 제작 소식이 들려왔을 때부터 큰 기대를 걸만한 영화였다. 주디 덴치, 이드리스 엘바, 이안 맥켈런, 테일러 스위프트 등의 화려한 캐스팅, <킹스 스피치>, <레미제라블>, <대니쉬 걸>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톰 후퍼 감독의 존재, 그리고 'Memory'라는 넘버로도 유명한, 이른바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지닌 <캣츠>라는 작품을 영화화했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가 무색하게 <캣츠>는 생각조차 못한 영화로 탄생해버렸다.

기획부터 다소 아쉬운 <캣츠>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서사 구조가 튼튼하지 못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와 뮤지컬이 엄연히 다른 예술적 경험이라는 점이다. 뮤지컬 영화들은 종종 감정선이 풍부한 대신에 스토리의 전개나 각 사건들 간의 연결성이 부족해 짜임새가 좋지 않다는 비판받는다. 많은 노래가 등장하는 뮤지컬 영화의 장르적 관습상, 서사 구조가 단순해지고 빈약해지는 것이다.

<캣츠>의 내러티브는 매우 간단하다. 1)젤리클 고양이를 뽑아야 한다는 배경을 제시한다. 2) 맥캐버티를 포함해 후보가 될 만한 고양이들을 소개한다. 그 단계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3)'그리자벨라(제니퍼 허드슨)'가 '봄발루리나(테일러 스위프트)'의 응원 속에 'Memory'를 부르고 선택받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기승전결이 아닌, 기기기결로 이루어진 구조나 다름없다.

사실 원작 뮤지컬의 구조는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관객들이 직접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구조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뮤지컬을 보는 관객들은 현장에서 노래, 춤, 연기와 화려한 무대를 동시에 직접 경험하기 때문에 그 순간순간에 집중할 수 있고, 따라서 설사 서사구조가 조금은 단순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다르다. 영화가 아무리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잘 담는다고 해도, 현장에서의 경험까지 재현할 수는 없다. 무대와는 달리 카메라 안에 모든 배우들과 무용수들이 한 번에 담기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는 본질적으로 스토리를 풀어내야 한다. 편집을 통해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진 순간부터 영화가 움직이는 사진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한편 예고편에서부터 불편했던 CG는 본 영화에서도 기괴하게 느껴진다. 이 대목은 뮤지컬이라는 예술과 관객들 사이에 형성된 무언의 약속을 깨뜨려 버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뮤지컬 <캣츠>에서도 배우들은 고양이 분장을 하고 고양이처럼 움직이지만, 관객들은 이를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들을 완전히 고양이로 여기기로 한 무언의 약속, 동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캣츠>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은 하나의 고양이로 여겨져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정작 영화 속 고양이들은 인간의 형태와 얼굴을 띤, 반인반수의 형태로 재탄생했다. 그렇기에 일반 실사영화를 보는 것처럼 배우들과 캐릭터들을 대해야 할지, 아니면 애니메이션 영화처럼 고양이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으로 봐야 할지 그 판단 기준에 혼동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고양이들이 바퀴벌레를 잡아먹는 장면을 보면, 고양이가 벌레를 먹는 것과 사람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것이라는 상이한 상황과 의미가 동시에 전달되면서 기괴하고 심지어는 혐오스럽게 느껴진다. 또한 <캣츠>가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빌려서 결국 사람들의 삶에 대해 노래를 한다는 점도 공들인 CG가 흉물스럽게 느껴지는 데 일조한다. 이는 뮤지컬을 영화화하기 전에 뮤지컬과 영화의 차이에 대해서 조금 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이처럼 실망으로 가득한 영화이지만, <캣츠>에도 톰 후퍼 감독의 능력이 발휘된 순간들이 있기는 하다. 바로 그리자벨라가 'Memory'를 부르는 대목이다. 카메라는 노래하는 그리자벨라의 얼굴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으로 잡아주면서 그녀의 사연과 감정을 집약시키며 노래의 감동을 효과적으로 환기시킨다. 이 대목은 그리자벨라와 봄발루리나라는 두 캐릭터 간의 개인사가 엉키면서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오는데, <캣츠>에서 드라마가 부각되는 몇 안 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장면이 영화의 전체적인 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노래하는 인물을 클로즈업하는 연출은 톰 후퍼 감독이 <레미제라블>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효과적이지만 참신하지는 않다. 실제로 그리자벨라의 Memory를 부르는 것과 에포닌이 On My Own을 부르는 장면은 연출상으로 별 차이가 없다. 맛보기로 등장한 두 고양이의 개인사는 아쉬움 만을 남긴다. 두 고양이의 생애를 영화적 상상으로 더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다루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캣츠>에 출연한 배우들에게는 죄가 없다. 원작 뮤지컬처럼 철저히 고양이 동작을 본뜬 안무를 소화하고, 춤을 추지 않는 순간에도 고양이처럼 걷는 모습을 보면 그 준비가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고양이의 시선에 맞춰서 만들어진 세트장들처럼, 1억 달러 제작비가 활용된 프로덕션도 인상적이다. 그저 뮤지컬을 영화로 옮기겠다는 결정이 잘못된, 뮤지컬 영화 <캣츠>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캣츠 뮤지컬 톰 후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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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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