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한 팀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팀을 자주 옮겨 다니는 선수를 '저니맨'이라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스포츠 선수들은 프로에 입단할 때 그 팀의 레전드로 은퇴하는 '원클럽 맨'을 꿈꾸지만 선수 생활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변수들로 팀을 이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여러 팀을 옮겨 다니는 선수는 실력이 형편 없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저니맨들은 그만큼 실력이 있기 때문에 여러 팀의 부름을 받는 경우가 많다.

KBO리그의 대표적인 저니맨은 1990년대 후반 호타준족 외야수로 야구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최익성을 꼽을 수 있다. 삼성 라이온즈의 1번 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최익성은 한화 이글스와 LG트윈스, KIA(해태) 타이거즈, 현대 유니콘스를 거쳐 2005년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실제로 최익성은 8개 구단 시대에서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를 제외한 6개 구단의 유니폼을 모두 수집(?)했다.

최근엔 2차 드래프트와 트레이드, 방출 선수 영입 등 선수들이 팀을 옮길 수 있는 경로가 더욱 다양해지면서 저니맨들도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아무나 맡을 수 없는 특수 포지션인 포수나 빠른 공을 던지는 강속구 투수는 당연히 여러 구단에서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다. 커리어 5번째 팀을 찾은 포수 허도환(kt 위즈)과 서울 연고 3개 구단을 모두 순회한 투수 김정후(키움 히어로즈)는 최익성을 잇는 '저니맨'이다.

통산타율 .206라도 베테랑 포수 자원은 언제나 귀하다
 
 허도환 (가운데)

허도환 (가운데) ⓒ 연합뉴스

 
단국대를 졸업하고 2007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허도환은 팔꿈치 부상으로 입단 1년 만에 팀에서 방출되는 불운을 겪었다. 자비로 팔꿈치 수술을 받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의무를 마친 허도환은 2011년 다시 육성선수로 히어로즈에 입단하면서 프로 생활을 이어갔다. 허도환을 1군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었던 때였다.

2011년 79경기에 출전한 허도환은 2012년 94경기, 2013년 116경기, 2014년 93경기에 출전하며 히어로즈의 주전포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히어로즈가 가을야구에 출전하면서 2할대 초반을 전전하던 허도환의 타격은 큰 약점으로 드러났다. 결국 히어로즈에 박동원이라는 새로운 주전포수가 등장하자 허도환은 점점 입지가 좁아졌고 2015년 4월 트레이드를 통해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당시 허도환과 함께 이적한 선수가 거포 이성열이었다).

당시 한화는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첫 시즌이었고 김성근 감독은 허도환을 비롯해 조인성(두산 배터리코치), 차일목(한화 배터리코치) 등 전성기가 지난 베테랑 포수들을 차례로 수집했다. 경험에서는 조인성과 차일목에게 밀리고 젊음에서는 정범모(NC다이노스)에게 밀렸던 허도환은 백업 포수 자리를 전전하며 한화에서 활약한 3년 동안 139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특히 최재훈이 합류한 2017년에는 1군에서 30경기 밖에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포수라는 특수한 포지션은 허도환의 가치를 유지시켜 줬고 허도환은 2017년11월에 열린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K로 이적했다. SK에서 이재원의 백업포수로 활약한 허도환은 작년 23경기, 올해 56경기에 출전하며 제 역할을 해줬다. 하지만 SK는 플레이오프 탈락 후 안방 포지션의 세대교체와 1루 백업 및 오른손 대타 요원 보강을 위해 허도환을 윤석민과 트레이드했다.

허도환에게 kt는 프로 5번째 구단이다. 이제 허도환은 LG를 제외한 수도권 5개 구단 중 4개 구단의 유니폼을 모두 수집했다. kt에는 장성우라는 준수한 주전포수가 있기 때문에 허도환은 한화로 트레이드된 이해창의 대안으로 활약할 확률이 높다.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허도환이 갑자기 주전 포수로 급부상할 확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몸을 사리지 않는 성실한 자세로 프로에서 13년을 버틴 허도환은 kt에서도 백업으로 준수한 활약이 기대된다.

문학과 잠실 거쳐 고척에서 새 도전에 나서는 강속구 투수

김정후는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이지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고 군복무 이후 상무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뒤늦게 프로에 지명된 특이한 이력을 가진 선수다. 2013년 군복무를 마치고 SK에 입단했을 때만 해도 김정후는 이만수 전 감독이 '차세대 4번 타자가 될 자질을 갖고 있다'고 주목하던 외야수였다. 하지만 2014년 스프링캠프 청백전 도중 어깨를 다쳐 시즌을 통째로 날린 김정후는 시즌 종료 후 팀에서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경동고 시절 투수코치였던 곽채진 언북중 감독의 권유에 따라 투수로 전향한 김정후는 일본 독립리그에서 활약하다가 2017년 말 두산과 계약했다. 작년 시즌 주로 추격조로 활약한 김정후는 13경기에서 17.1이닝을 던지며 1패 평균자책점 3.63으로 인상적인 투수 데뷔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김정후는 그 해 9월 웨이버 공시되며 두산에서 방출됐다(후배 선수를 폭행했다는 루머도 있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김정후는 새해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 팀을 찾았다. 심수창, 장원삼, 전민수 등 방출 선수들을 모아 선수층을 두껍게 하던 LG였다. 김정후는 시즌 초반 2경기에 등판해 1.2이닝 무실점으로 괜찮은 투구를 선보였지만 고우석, 정우영 등 LG의 젊은 투수들이 약진하면서 금방 자리를 잃고 말았다. 결국 김정후는 올 시즌이 끝나고 LG의 보류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2년 연속 서울 구단에서 방출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KBO리그에는 두산과 LG 외에도 서울을 연고로 하는 구단이 한 팀 더 있었다. 바로 올해 한국시리즈 준우승팀 키움이었다. 키움은 지난 26일 LG에서 방출된 김정후와 계약하며 베테랑 이보근(kt)이 떠난 불펜에 우완 강속구 투수를 채워 넣었다. SK에서 야수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김정후는 투수로 변신해 서울 3개 구단을 순회(?)하는 독특한 이력을 또 하나 추가했다.

키움은 올해도 kt에서 방출됐던 좌완 투수 이영준을 원포인트 릴리프로 요긴하게 써먹은 바 있다. 키움 불펜에는 조상우, 김상수, 윤영삼 등 좋은 우완 투수들이 즐비하지만 빠른 공이라는 확실한 주무기가 있는 만큼 김정후도 팀에 잘 적응한다면 손혁 감독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 잠실에서 꽃을 피우지 못했던 유망주 김정후가 고척 스카이돔에서 뒤늦게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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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저니맨 허도환 김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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