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배영수와 MVP 오재일이 환호하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배영수와 MVP 오재일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9 한국시리즈 마지막 '헹가래 투수'였던 배영수가 정상에서 아름다운 피날레를 선택했다. 배영수는 최근 소속팀 두산 베어스에 은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 김태형 감독에 따르면 이미 한국시리즈 전부터 플레잉코치나 은퇴 후 코치를 제안했고, 배영수는 고심 끝에 완전한 선수 은퇴를 선택했다.

배영수는 삼성 라이온즈-한화 이글스-두산을 거치며 올해까지 총 20시즌을 소화하며 통산 499경기에 나와 138승 122패 3세이브 7홀드 평균자책점 4.46을 기록했다. 개인 통산 138승은 올시즌까지 현역 최다승이자 프로야구 역대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배영수는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고를 졸업하고 2000년 1차 지명으로 삼성에 지명되어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전성기를 보낸 삼성 시절에는 리그 최정상급 우완 투수중 하나로 군림하며 리그를 호령했다. 이만수-김시진-양준혁-이승엽같은 삼성의 대표적인 지역 프랜차이즈 스타 계보를 이으며, 삼성 팬들 사이에는 '푸른 피의 에이스'(삼성의 유니폼 색깔)라는 별명을 얻을만큼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던 2004년에는 35경기에 나서 17승 2패 평균자책점 2.61을 기록, 다승-승률 부문 타이틀과 함께 선발투수로서는 역대 두 번째(최초는 선동열)로 시즌 MVP까지 차지하며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이미 정점에 올랐다. 같은해 10월 25일 현대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선발 등판해 '10이닝 노히트노런'이라는 비공인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끝까지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했고 당시 이닝 제한(12회) 규정에 따라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며 배영수의 기록은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최종적인 한국시리즈 우승도 현대에 내줘야했지만 혼신을 다한 배영수의 빛나는 역투만큼은 지금까지도 야구팬들에게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부상 때문에 전성기가 짧았던 배영수

특히 아쉬운 것은 부상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성기는 짧았다는 점이다. 배영수가 에이스로 한창 활약하던 시기는 한국야구에 아직 체계적인 투수 분업화와 선수관리 의식이 자리잡기 직전 과도기에 가까웠다. 배영수는 그 시대의 숱한 투수들과 마찬가지로 무분별한 '혹사'라는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06년 팔꿈치 통증이 있는 상황에서도 진통제를 맞아가며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까지 모두 소화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당시 선동열 감독은 배영수를 선발로 활용하다가 시즌 후반기와 한국시리즈에서는 불펜으로 전환시키며 혹사시킨 탓에 우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비판을 받아야했다.

배영수는 한국시리즈가 끝난 이후 결국 수술대에 오르며 기나긴 재활의 시간을 거쳐야했다. 이후 힘겹게 그라운드로 복귀하기는 했지만 끝내 전성기 시절의 위용은 다시 재현하지 못했다. 당시 삼성은 한국시리즈 2연패(2005-2006)를 차지했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이때의 기억을 '배영수의 팔과 맞바꾼 우승'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배영수는 어지간한 선수라면 벌써 몇 번이나 선수생활이 끝날뻔한 고비를 극복하고 결과적으로 무려 20년이나 마운드를 지켰다. 수술 이후 3~4년간 슬럼프를 벗어나지 못했고, 심지어 한 시즌 최다패(2009년 1승 12패 평균자책 7.26) 기록을 세우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으며, 2014년에는 삼성과 FA계약이 결렬되며 14년을 헌신한 친정팀을 떠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이제 배영수는 끝난 게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왔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삼성팬이라면 배영수만큼은 아무리 못한다고 해도 욕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을 정도였다.

삼성 시절의 말년과 한화-두산을 거치며 배영수는 더 이상 특유의 강속구와 슬라이더로 리그를 호령하던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열정과 노련미를 바탕으로 제구력 위주의 기교파 투수로 정착하며 자기 몫을 해냈다.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9년 두산에서는 불펜 추격조로 기용되며 37경기 1승 2패 평균자책점 4.57의 성적으로 젊은 선수들이 많은 두산 불펜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고참 역할을 해냈다.

코리안특급 박찬호를 연상시키는 장면들

숱한 부상과 역경을 극복해낸 오뚝이같은 배영수의 야구인생을 복기하다 보면, '불사조' 박철순(전 OB베어스)이나 '코리안특급' 박찬호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많다. 누구보다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냈지만 짧고 굵은 전성기를 거쳐 기나긴 슬럼프의 시기를 딛고 다시 재기에 성공한 스토리는 바로 배영수의 야구인생과 일치한다.

전반적으로 마냥 진지하고 눈물겨운 야구인생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술함이 느껴지는 '시트콤스러운' 에피소드도 많다. 박찬호에게 '이단옆차기 난투극' 에피소드가 있다면, 배영수는 외국인 선수 펠릭스 호세와의 악연이 유명하다. 2001년 마산 롯데전에서 상대 외국인 타자 호세와 얀에게 잇달아 고의성 다분한 빈볼을 던지고 마운드 위에서 껄렁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 돌연 1루에 있던 호세에게 기습당해 안면에 정통으로 펀치를 맞고 KO당한 장면은 배영수 인생의 굴욕으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배영수는 훗날 한 인터뷰에서 이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당하고 야구가 늘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당시 한국과 신경전을 벌였던 일본의 간판스타 스즈키 이치로의 엉덩이를 맞힌 장면도 유명하다. 훗날 배영수는 당시 이치로를 맞힌 것이 고의였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당시는 야구 한일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라 배영수는 '배열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3년 3월 30일 두산과의 프로야구 개막전에서는 오재원과 김현수에게 잇달아 만루홈런을 맞았는데,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시절 한 경기에서 페르난도 타티스에게 한 이닝 연타석 만루홈런을 맞아 '한만두'라고 불린 것을 패러디하여 '개만두'(개막전 만루홈런 두방)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한화 시절인 2017년에는 상습적인 '부정투구' 의혹으로 적지않은 비난을 받으며 그간 쌓아온 명예에 큰 흠집을 남기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투수치고는 묘하게 굴욕스러운 장면도 이래저래 많은 편이었지만, 배영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거나, 민망한 상황도 쿨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 팬들에게는 나쁜 이미지로 남아 있지 않다.  

우승복이 많았던 배영수
 
 지난 2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해 우승을 차지한 두산 베어스 투수 배영수와 포수 박세혁이 포옹하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해 우승을 차지한 두산 베어스 투수 배영수와 포수 박세혁이 포옹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영수의 야구인생이 박철순이나 박찬호같은 선배 불사조들보다 더 행복했던 점을 꼽으라면, 바로 우승복 많았다는 것이다. 배영수는 삼성이 역대 기록한 7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모두 함께한 선수이며, 두산에서 1회의 우승을 추가하며 마지막 은퇴 순간을 한국시리즈 우승 헹가래 투수로 장식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사실 '배영수답게' 한국시리즈 마지막 등판 과정도 한편의 드라마였다. 두산이 11-9로 앞서가던 한국시리즈 4차전 연장 10회말, 두산 김태형 감독이 실수로 마운드에 두 번 올라가는 바람에 원래 의도된 타이밍이 아니었던 배영수가 급하게 구원투입됐다. 코미디같은 황당한 실수에 이어 호러물같은 엔딩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배영수는 자신의 야구인생에 '마지막 주인공'이 될 운명적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올 시즌 홈런 1위 박병호와 4위 샌즈를 각각 삼진과 투수 앞 땅볼로 멋지게 처리하며 배영수는 삼성 시절에도 이루지 못한 '우승 피날레 투수'의 영광을 차지했다. 이날 경기는 배영수의 개인 통산 25번째 한국시리즈 출전 신기록이자 결과적으로 자신의 현역 마지막 등판 경기가 되었기에 더욱 뜻깊었던 순간이었다.

배영수는 눈물과 웃음이 교차하는 파란만장한 현역 생활을 마감하며 야구인생의 새로운 2막을 앞두게 됐다. 우여곡절도 많았던 선수생활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과 피날레 순간은, 모든 야구 선수들이 부러워 할 만한 것이었다. 역사는 배영수를 한국야구가 배출한 또 한명의 불사조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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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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