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조커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조커'는 언제나 강렬했다. 하얗게 분장한 얼굴에 쭉 찢어져 붉게 물든 입부터 악행이 극에 달할수록 터져 나오는 광기어린 웃음까지. 1940년 배트맨의 첫 호가 발간된 이래 조커는 언제나 배트맨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악당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커는 위기에 빠진 고담시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나선 배트맨의 맞은편에 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평화를 흐트러뜨리는 범죄자였기 때문이다. 마치 '배트맨,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너는 나를 완성시켜(you complete me)"라는 <다크 나이트> 속 대사처럼, 정의의 사도 배트맨이 존재하기 위해 그와 정반대에 있는 조커는 끊임없이 세상을 도발해야 했다. 1989년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도, 때로는 주인공보다도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2008년작 <다크 나이트>에서도, 조커는 마치 땅에서 솟아오르듯 불쑥 등장하여 배트맨이란 존재를 '히어로'로 완성시켜 주었다. 

하지만 토드 필립스 감독은 바로 이 광기와 악행의 범죄자 조커에게 '역사'를 만들어 주었다. 처음 조커란 캐릭터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무성 영화 <웃는 남자>를 모티브로 삼은 걸로 알려져 있다.

혁명과 전쟁, 폭동, 왕정복고 등 19세기 격변의 프랑스 역사를 살아냈던 <레미제라블>의 저자인 빅토르 위고는 <웃는 남자>를 통해 귀족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납치돼 기형적인 얼굴을 갖게된 뒤 정체성을 상실한 '웃는 남자'를 통해 도덕적인 결핍에 시달리는 귀족 사회와 경제적 신체적 결핍으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대비시킨다. 그렇게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순을 자신의 찢어진 얼굴을 통해 고스란히 담아냈던 '웃는 남자'는 이제 현대 미국의 뉴욕이 모티브가 된 '고담'시의 '아서 플렉'을 통해 되살아난다.

아서 플렉, 끓어오르다 
 
 조커

조커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지금까지 <배트맨> 시리즈 속 '조커'의 등장은 언제나 요란했다.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보이는가 싶으면, 어느새 이 기괴한 어릿광대는 기발한 각종 장치와 트릭을 통해 '고담시'를 뒤집고 배트맨의 허를 찔렀다.

그러나 아직 조커가 되지 못한 <조커> 속 아서 플렉의 등장은 처연하다. 어릿광대 일은 정신병원에서 나온 그가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지만, 그마저도 동네 아이들의 조롱거리로, 동료의 협잡으로 지속하기 쉽지 않다.

우울증 환자인 아서 플렉은 7가지 약을 먹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듯 마음이 요동친다. 하지만 그런 마음에 아랑곳없이 그가 모셔야 할 어머니는 그를 '해피'라고 부른다. 아서는 어머니와 함께 <머레이쇼>를 보며 자신의 꿈인 코미디언이 되는 순간을 상상할 때가 유일한 낙이다. 하지만 순간순간 튀어나오곤 하는,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웃음은 그의 꿈조차 세간의 조롱거리로 만든다.

그에게 남은 건 비루한 삶과 책임져야할 가족, 그리고 오로지 망상 속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꿈뿐이다. 그렇게 그는 폭발을 향해 나아가는 초침처럼, 차곡차곡 끓는점을 향해 올라간다.

그리고 '폭발'의 계기는 동료가 우연히 그에게 쥐어준 총, 그리고 언제나처럼 멈출 수 없는 웃음에 대한 폭력적 조롱이 빚어낸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저 참을 수 없어 총을 사용한 범법자였다. 그러나 그 범죄는 뜻밖에도 그의 일그러진 몸속에 숨겨뒀던 욕망을 자극한다. 아서 플렉은 여러 가지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멀쩡한 척하며 살아가려 했다. 비극적인 순간순간이 이어져 그를 잠식해 갔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모시며 살아가려 했던 그 내부에 있던 범죄적 욕망의 뇌관을 건드린 건 뜻밖에도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고담시 최고 부호 토마스 웨인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쓴다. 그 이유는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밝혀진다. 아서는 어머니에게 '해피'같은 행복한 아들이 되려고 했지만 결국 비극적인 운명을 짊어져야 했고, 그는 자신의 인생을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다"고 자조한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 사실은 정상적인 척 살아내려 했던 아서 플렉 삶의 뇌관을 폭파해버린다. 대신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견뎌왔던 그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조커로 거듭난다. 
 
고담시, 아서, 그리고 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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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조커>는 아서라는 고담시의 가장 밑바닥 삶을 버텨가던 신체적 정신적 문제아가 고담시의 사회적 문제와 맞물리며 '안티 히어로'로서 거듭나게 되는 지점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그토록 꿈이었던 <머레이 쇼>에 출연한 날, 정성스레 광대 분장을 하고 그 자리에 나간 아서는 때로는 아버지라 '망상'했던 자신의 정신적 대부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리고 그 시간 아서로부터 촉발된 거리의 광대들 중 한 명이 고담시의 '대부'를 삭제한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이에 의해 벌어진 참사로 조커가 된 아서와 토머스의 아들 브루스는 맺어진다. 바로 '너는 나를 완성시켜'라는 조커의 대사가 성립되는 순간이다. 개인의 원한, 개인의 질곡이 사회적 관계, 갈등과 순치되는 순간 바로 그 절정에서 아서는 두 팔 벌려 자신의 '조커'됨을 받아들인다. 더불어 관객들 또한 그로부터 묘한 '공감'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고담시가 가진 부조리와 갈등이 자아내는 '비극적 카타르시스'이기 때문이리라. 또한 '사회적 정체성'에 자신을 어떻게든 끼워 맞추고자 애쓰며 살아가는 '개인'들만이 가진 '고뇌'의 비등점을 조커가 된 아서가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지점. 그렇게 아서와 고담시의 '기층 민중'들은 자신의 세상을 연다. 그저 DC 코믹스의 광기어린 조력자였던 조커가 사회부조리극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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