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 시크릿> 스틸컷

영화 <트루 시크릿> 스틸컷 ⓒ 엠엔엠 인터내셔널

 
클레르(줄리엣 비노쉬)는 50살의 교수다. 젊은 연인 뤼도(귀욤 고익스)가 부쩍 싫증을 내자 그를 염탐할 목적으로 24살 클라라라는 이름의 가짜 계정을 만든다. 클릭 몇 번이면 프로필을 만들어 계정을 파고 적당히 팔로우를 늘려 진짜처럼 만드는 인스턴트 관계가 미덕인 것처럼. 늦게 배운 도둑질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더니, 클레르는 요즘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그런데 큰일이다. 뤼도의 주변 탐색을 목적으로 했던 계획과는 다르게 룸메이트 알렉스(프랑수아 시빌)와 친해진다. 몇 번 댓글을 달아줬더니 바로 메시지가 날아온다. 클레르 아니, 클라라는 곧 알렉스와 사랑에 빠진다. 매일 통화하며 랜선 연인이 된다.

다양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한다. 사적이고 농밀한 이야기도 주고받는다. 꽤 스릴 있고, 진짜 연인이 된 것 같다. 클레르로 잃어버린 정체성과 살아있다는 생동감을 클라라로 충분히 보상받는다. 다시 젊음을 되찾은 것 같아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영화 <트루 시크릿> 스틸컷

영화 <트루 시크릿> 스틸컷 ⓒ 엠엔엠 인터내셔널


하지만 스물넷 클라라처럼 행동하는 건 쉽지 않다. 들키지 않기 위해 철두철미해야 한다. 모든 단어에 신중해지고 조심스러워진다. 마법이 사라질까 두려운 현대판 신데렐라 같다. 현실을 살면서 가상의 아바타로 꿈을 꾼다. 싱그러운 아바타는 호기심을 넘어 과감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클레르는 급기야 자신을 클라라라고 믿게 된다. 아바타로 만든 가상의 인물 클라라가 클레르가 되는 전복이다. 가상현실을 진짜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클레르는 누가 날 만져주는 게 그립다고 고백했다. 절실하게 따스한 타인의 관심이 필요했다. 누군가의 관심과 이해가 고팠던 한 중년 여성의 발칙한 속임수다.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버려지는 건 싫다고 말할 정도니까. 사람은 평생 누군가의 관심과 손길(스킨십)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오랜 결혼 생활을 유지해 온 남편이 한순간에 떠날줄은 몰랐다. 그것도 스물일곱 살 차이의 여자에게 말이다.

이혼은 클레르가 젊음을 집착하는 트리거(촉발요인)가 된다. 영화는 중반부터 묻고 있다. 그래서 클레르는 알렉스를 만나 행복했을까? 정신 상담이 끝나자 클레르는 소설 하나를 완성한다. 그 이야기는 과거를 넘나들며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영화 속에 또 다른 영화가 진행되면서 클레르와 클라라를 동일시하고 있다. 가짜가 진짜가 되는 순간이다.
 
 영화 <트루 시크릿> 스틸컷

영화 <트루 시크릿> 스틸컷 ⓒ 엠엔엠 인터내셔널

 
<트루 시크릿>은 일상이 되어버린 SNS에 주목한다. 속도감과 편리함, 익명이 주는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 소셜 미디어는 가짜도 진짜처럼 만드는 현대인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띵동' 알림음이 울리고, 상대방 프로필이 초록으로 바뀔 때의 짜릿함. 상대방이 나를 보는 것 같아 묘한 안정감을 넘어 흥분된다. 타자치는 동안 말 줄임표가 설렘의 강도를 높인다. 한 번쯤 소셜 미디어를 사용해 봤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서치>처럼 SNS를 장치로 이용해 서스펜스를 일으키는 영화다.

"역시 줄리엣 비노쉬"란 찬사가 아깝지 않다. 혼자서 영화를 이끌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NS의 허와 실이 반영된 소재가 흥미롭다. 많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는 영화다. 과연 두 사람은 사랑했을까, 그들의 감정은 진짜였을까, 외모지상주의, 쉽게 만들고 버릴 수 있는 SNS 관계망은 이대로 괜찮을까.

익명성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관계였을지라도 진짜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사랑하는 건 외모와 젊음이 아니라, 목소리와 대화로 쌓은 신뢰라고 클레르는 말한다. 당신은 과연 그 말에 동의하는지 묻고 싶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까지도. 오는 10월 3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트루 시크릿 줄리엣 비노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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