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는 이미 은퇴를 선언했던 선수들이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폴 스콜스처럼 부진한 팀을 구하기 위해 감독의 부름을 받고 현역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양궁의 김수녕처럼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역 복귀를 선택하는 선수도 있다. 물론 경제적 이유라는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은퇴를 번복하는 선수도 적지 않다.

최근 프로스포츠에서 은퇴번복과 현역복귀가 가장 많은 종목은 단연 종합격투기다. 고된 훈련기간에 비해 비교적 빨리 승부가 결정되는 종목의 특성상 종합격투기 선수들은 허무한 패배 이후 다소 즉흥적으로 은퇴를 선언할 때가 많다. 하지만 성급한 은퇴 선언 이후 단체와 체급의 흐름을 보다가 적절한 시기가 오면 은퇴를 번복하는 선수가 적지 않다. 최근에도 라이트 헤비급의 앤서니 존슨과 알렉산더 구스타프손 등이 복귀 시기를 점치고 있다.

14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의 골든 1 센터에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155 대회에서도 2년 7개월 만에 복귀전을 치른 선수가 있었다. 어느덧 만 40세가 됐고 한 체육관의 수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노장 선수는 복귀전에서 8연승을 달리던 만 26세의 신예를 단 46초 만에 KO로 제압했다. 여전히 UFC 경량급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캘리포니아 키드' 유라이어 페이버가 그 주인공이다.
 
 유라이어 페이버(오른쪽)가 2019년 7월 1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열린 UFC 밴텀급 경기에서 리키 시몬(왼쪽)을 상대로 1라운드 KO로 승리를 거두었다.

유라이어 페이버(오른쪽)가 2019년 7월 1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열린 UFC 밴텀급 경기에서 리키 시몬(왼쪽)을 상대로 1라운드 KO로 승리를 거두었다. ⓒ AP/연합뉴스

 
데뷔 후 13경기 만에 3개 단체 챔피언 등극한 경량급의 슈퍼스타

지금은 UFC가 플라이급부터 헤비급까지 8개의 체급이 촘촘하게 분류돼 있지만(남자부 기준)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UFC에서 가장 작은 체급은 라이트급(-70kg)이었다. 따라서 프랭키 에드가처럼 체격이 작은 선수들은 억지로 체중을 불려 라이트급에서 활동했고 끝내 자신의 체급을 찾지 못한 선수들은 WEC로 모였다. 그렇게 경량급의 좋은 선수들이 자신의 체급을 찾아 하나둘 WEC로 몰리면서 WEC는 어느덧 '경량급의 메이저리그'가 됐다.

2003년에 중소단체 글레디에이터 챌린지를 통해 데뷔한 페이버는 3경기 만에 데이비드 벨라스케즈를 꺾고 GC의 밴텀급 챔피언에 올랐고 6번째 경기에서 킹 오브 더 케이지의 밴텀급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리고 2006년 3월 WEC로 진출해 곧바로 콜 에스코베도를 2라운드 TKO로 제압하고 제2대 WEC 페더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프로 데뷔 후 13경기 만에 3개 단체의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지난 2016년 12월 17일, 유라이어 페이버(왼쪽)가 UFC 밴텀급 경기에서 브래드 피켓(오른쪽)을 만장일치 판정승으로 꺾고 승리했다.

지난 2016년 12월 17일, 유라이어 페이버(왼쪽)가 UFC 밴텀급 경기에서 브래드 피켓(오른쪽)을 만장일치 판정승으로 꺾고 승리했다. ⓒ AP/연합뉴스

 
데뷔 후 4년 동안 여러 단체를 오가며 활동하던 페이버는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전장을 WEC무대로 정하고 페더급 타이틀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1년 반 동안 5명의 도전자들을 차례로 제압하며 챔피언으로서의 강력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당시 페이버의 제물이 된 상대 중에는 전 UFC 라이트급 챔피언 젠스 펄버도 있었고 두 차례나 UFC 밴텀급 챔피언을 지냈던 도미닉 크루즈도 있었다.

하지만 페이버는 6차 방어전에서 마이크 브라운에게 판정으로 패하며 타이틀을 빼앗겼고 2010년 4월에는 훗날 UFC 페더급 타이틀을 7번이나 방어하는 조제 알도에게 판정패했다. 페이버는 알도전 패배를 계기로 밴텀급 컴백을 결심했고 미즈가키 타케야와 에디 와인랜드를 차례로 제압하고 밴텀급 타이틀전에 나섰다. 그 사이에 WEC는 UFC에 흡수됐고 UFC에도 페더급과 밴텀급 같은 경량급이 신설됐다.

페이버는 2011년7월 UFC 132에서 챔피언 크루즈와 밴텀급 타이틀전을 펼쳤다. 크루즈는 이미 WEC 시절 페이버가 경기 시작 98초 만에 길로틴 초크로 가볍게 제압했던 상대였다. 하지만 4년 3개월 만에 다시 만난 크루즈는 한층 성장해 있었다. 크루즈와 페이버는 경량급 경기의 진수를 선보이며 관중들을 열광시켰지만 결과는 페이버의 만장일치 판정패였다. 페이버의 UFC 첫 타이틀 도전은 그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2년 7개월의 공백? 페이버에게는 해당 사항 없었다

여전히 밴텀급에서 정상급의 기량을 과시하던 페이버는 브라이언 보울스를 길로틴 초크로 제압하고 다시 타이틀 도전권을 얻었다. 그만큼 당시 UFC는 밴텀급의 선수층이 얇았고 밴텀급에서 페이버 만큼 팬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슈퍼스타도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크루즈의 장기 부상으로 헤난 바라오와와 타이틀전을 벌인 페이버는 이번에도 바라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판정패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타이틀전에서 2회 연속 패한 페이버는 2013년에만 무려 4명의 선수를 제압하며 세 번째 타이틀전에 진출했다. 하지만 '타이틀전 징크스'에 시달린 페이버는 바라오와의 재대결에서 1라운드 3분42초 만에 허무한 TKO패를 당했다. 페이버는 2016년4월 크루즈와의 3차전에서도 판정으로 패하며 4번의 UFC 밴텀급 타이틀 도전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페이버는 2016년 9월 지미 리베라에게 패하며 격투기 데뷔 후 첫 연패의 수렁에 빠졌고 정상도전에 한계를 느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브래드 피켓전(판정승)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미 2004년부터 팀 알파메일이라는 체육관을 설립한 페이버는 은퇴 후 조쉬 에밋, 조셉 베나비데즈, 대런 엘킨스, 안드레 필리, 코디 가브란트 같은 UFC 파이터들을 가르치며 전업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페이버에게는 '파이터 본능'이 살아 있었고 지난 5월 전격 복귀를 선언했다. 복귀전 상대는 8연승을 달리고 있는 만 26세의 신예 리키 시몬. 하지만 페이버는 13살이나 어린 시몬을 눕히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페이버는 경기 시작과 함께 시몬의 초반 공세를 견딘 후 강력한 오른손 훅으로 시몬을 다운시키고 이어진 파운딩 연타로 46초 만에 경기를 끝냈다. 2년7개월 만에 옥타곤에 올랐지만 우려했던 '공백 후유증' 따위는 없었다.

이날 열린 UFN 155 대회에서는 페이버 외에도 에밋과 필리까지 팀 알파메일 소속의 파이터가 3명이나 출전했다. 그리고 이날 출전한 팀 알파메일 소속 파이터들은 모두 1라운드 KO라는 화끈한 승리로 새크라멘토를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그 누구도 페이버보다 빠른 시간에 경기를 끝낸 선수는 없었다. 제자들 앞에서 스승의 건재를 알린 '불혹의 캘리포니아 키드'가 완벽한 복귀전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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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UFN155 유라이어페이버 캘리포니아키드 팀알파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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