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만드는 기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에너지로 돌고 돈다. 이번에는 그 에너지가 암스테르담에서 더 놀라운 일을 만들어냈다. 지난 1일 런던에서 이긴 1골도 모자라 아약스는 이 게임에서도 전반전에만 2골을 더 넣었으니 이제 그 뒤는 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아무리 토트넘 홋스퍼라 해도 후반전 뒤집기는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축구는 또 하나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이끌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 FC(잉글랜드)가 한국 시각으로 9일 오전 4시(한국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벌어진 2018-2019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 AFC 아약스(네덜란드)와의 어웨이 게임에서 루카스 모우라의 후반전 '퍼펙트 해트트릭'에 힘입어 3-2로 역전승을 거뒀다.

이에 1, 2차전 합산 점수가 3-3이 되었으나 어웨이 골(토트넘 홋스퍼 3골, 아약스 1골) 규정에 의하여 토트넘 홋스퍼가 다음 달 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대망의 결승전 무대에 오르게 됐다. 

손흥민의 골대 불운, 안 되는 줄 알았지만...

홈 팀 아약스는 그저 돌풍의 팀이 아니었다. 어웨이 팀 토트넘 홋스퍼가 간판 골잡이 해리 케인의 부상 결장으로 공격력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약스의 탄탄한 조직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전반전 내내 토트넘 홋스퍼의 공격이 마음대로 풀리지 못하도록 촘촘한 그물 압박을 펼친 것이다.

AFC 아약스는 골도 비교적 이른 시간에 터뜨려 홈팬들을 들뜨게 만들어주었다. 게임 시작 후 5분만에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 상황에서 쇠네가 올린 공을 체격 조건 좋은 센터백 데 리흐트가 솟구쳐 올라 헤더로 꽂아넣었다. 그를 빅 클럽들이 데려가려고 줄 서 있는 이유를 또 한 번 입증한 순간이었다.
 
 2019년 5월 9일 오전 4시(한국시간), 네덜란드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열린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아약스와 토트넘의 경기. 아약스의 마티아스 데 리흐트가 득점 후 세리머니하고 있다.

2019년 5월 9일 오전 4시(한국시간), 네덜란드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열린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아약스와 토트넘의 경기. 아약스의 마티아스 데 리흐트가 득점 후 세리머니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 골로 토트넘 홋스퍼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곧바로 토트넘의 반격이 시작됐다. 그 주인공은 손흥민이었다. 왼쪽 측면에서 공을 잡은 손흥민은 각도가 거의 없는 끝줄 바로 앞이었지만 재치있는 왼발 슛을 골 라인 쪽으로 날렸다. 누구나 크로스를 예상한 순간이었기에 골키퍼 오나나도 그냥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손흥민의 왼발 끝을 떠난 공은 아쉽게도 왼쪽 기둥 하단에 맞고 나왔다.

손흥민은 23분에도 델레 알리의 전진 패스를 받아 반 박자 빠른 오른발 슛을 시도했지만 아약스 골키퍼 오나나에게 잡히고 말았다. 이 아쉬움을 뒤로 하고 토트넘 홋스퍼가 한숨을 돌리는 사이에 아약스의 추가골이 터져나왔다. 역습의 효율성이 돋보이는 명장면이었다.

35분, 왼쪽 측면으로 빠져 나간 아약스 골잡이 두산 타디치는 동료 두 선수가 엇갈리는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대각선 슛을 하라고 밀어주었고 이 공을 향해 하킴 지예흐가 달려들며 날카로운 왼발 슛을 오른쪽 구석에 꽂아넣었다. 1, 2차전 합산 점수가 3-0이 됐기 때문에 누가 봐도 아약스가 결승전에 사뿐히 올라갈 것처럼 보였다.

루카스 모우라, '순도 100% 해트트릭' 기적

전반전이 끝난 상태에서 토트넘 홋스퍼 선수들은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관중석에 앉아 있는 해리 케인의 부상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45분이 남아 있었다. 

토트넘의 포체티노 감독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미드필더 완야마를 빼고 골잡이 요렌테를 들여보내 반전을 노렸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희망을 봤다. 토트넘도 효율적인 역습을 전개하며 따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55분, 델레 알리가 방향을 바꿔 놓은 역습 상황에서 가속도가 붙은 루카스 모우라가 공을 빠르게 몰고 들어가다가 왼발 슛을 찔러넣어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 위에 먹구름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토트넘 홋스퍼로서는 1골만으로 모자랐다. 지난 주 홈 게임에서 0-1로 패했기 때문에 최소한 1골 차 역전승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4분 뒤에 믿기 힘든 2-2 동점골이 나왔다. 

59분, 오른쪽 끝줄 바로 앞에서 키어런 트리피어가 낮게 깔아준 크로스를 향해 교체 선수 요렌테가 들어가며 밀어넣기를 성공시키는 줄 알았지만 골키퍼 오나나의 슈퍼 세이브에 막혔다. 하지만 여기서 오나나는 세컨드 볼을 잡아내지 못하고 동료 미드필더 쇠네에게 걸려 넘어졌다.

바로 이 세컨드 볼을 잡아낸 주인공은 이 게임의 히어로 루카스 모우라였다. 모우라는 침착하게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왼발 슛을 구석으로 찔러넣었다. 아약스 미드필더 데 용이 루카스 모우라 앞을 막아서고 있었지만 비어있는 바로 그곳으로 모우라의 슛이 날아들어간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아약스가 결승 진출하는 조건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두 번째 골 주인공 하킴 지예흐에게 쐐기골 기회가 더 찾아왔기 때문에 아약스의 뒷심이 훨씬 든든해 보였다.
 
 2019년 5월 9일 오전 4시(한국시간), 네덜란드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열린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아약스와 토트넘의 경기. 토트넘의 루카스 모우라가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2019년 5월 9일 오전 4시(한국시간), 네덜란드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열린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아약스와 토트넘의 경기. 토트넘의 루카스 모우라가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그런데 79분에 날린 지예흐의 왼발 슛이 토트넘 홋스퍼 골문 오른쪽 기둥 하단에 맞고 나온 불운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불안한 느낌은 이상할 정도로 맞아떨어진다고 했던가? 정말로 추가 시간에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합산 점수 3-2로 앞서고 있던 아약스에는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지만, 토트넘 홋스퍼에는 '암스테르담의 기적'이었다.

대기심이 알린 후반전 추가 시간 5분도 거의 다 끝나갈 때 토트넘 홋스퍼의 마지막 공격이 전개됐다. 델레 알리의 오른발 아웃사이드 패스부터 예술이었고 이 공을 따라 달려가며 루카스 모우라가 왼발 슛을 성공시킨 것이다. 모우라의 왼발 끝을 떠난 공이 하필이면 이 게임 첫 골 주인공 데 리흐트의 발끝에 맞고 굴러들어갔다. 후반전 추가 시간 5분 1초에 벌어진 극장 골 기적이었다.

이날 기적 같은 승리로 토트넘 홋스퍼는 다음 달 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에스타디오 메트로폴리타노에 들어가 익숙한 프리미어리그 클럽 리버풀 FC와 유럽 최고의 클럽 챔피언 자리를 다투게 됐다.

2018-2019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 결과
(9일 오전 4시,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암스테르담)

★ AFC 아약스 2-3 토트넘 홋스퍼 [득점 : 데 리흐트(5분,도움-쇠네), 하킴 지예흐(35분,도움-두산 타디치) / 루카스 모우라(55분,도움-델레 알리), 루카스 모우라(59분), 루카스 모우라(90+5분,도움-델레 알리)]
- 1, 2차전 합산 점수 3-3, 어웨이 골 다득점 규정으로 토트넘 홋스퍼 결승 진출!

아약스 선수들
FW : 카스퍼 돌베르(67분↔달레이 싱크라벤), 두산 타디치, 하킴 지예흐
MF : 프렝키 데 용, 도니 판 더 비이크(90분↔리산드로 마가샨), 라세 쇠네(60분↔요엘 벨트만)
DF : 니콜라스 타글리아피코, 달레이 블린트, 마티스 데 리흐트, 누사이르 마즈라위
GK : 안드레 오나나

토트넘 홋스퍼 선수들
FW : 손흥민, 루카스 모우라
MF : 델레 알리, 빅터 완야마(46분↔페르난도 요렌테), 크리스티안 에릭센, 무사 시소코
DF : 대니 로즈(83분↔벤 데이비스), 얀 베르통언, 토비 알더베이럴트, 키어런 트리피어(81분↔에릭 라멜라)
GK : 위고 요리스

◇ 주요 기록 비교
점유율 : AFC 아약스 42%, 토트넘 홋스퍼 58%
유효 슛 : AFC 아약스 4개, 토트넘 홋스퍼 7개
슛 : AFC 아약스 16개, 토트넘 홋스퍼 24개
골대 : AFC 아약스 1개, 토트넘 홋스퍼 2개
패스 성공률 : AFC 아약스 75%, 토트넘 홋스퍼 81%
패스 : AFC 아약스 404개(성공 304개), 토트넘 홋스퍼 575개(성공 464개)
코너킥 : AFC 아약스 6개, 토트넘 홋스퍼 9개
오프 사이드 : AFC 아약스 2개, 토트넘 홋스퍼 1개
공 소유권 되찾기 : AFC 아약스 61회, 토트넘 홋스퍼 53회
태클 : AFC 아약스 4개, 토트넘 홋스퍼 0
경고 : AFC 아약스 3장, 토트넘 홋스퍼 2장
파울 : AFC 아약스 13개, 토트넘 홋스퍼 12개
뛴 거리 : AFC 아약스 117.9km, 토트넘 홋스퍼 114.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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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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