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년간 수도승처럼 자신을 다스려온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46, 시애틀 매리너스)가 마지막 합장(合掌)을 했다. 지난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9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개막 시리즈 두번째 경기가 그의 마지막 경기로 남았다. 46세의 메이저리거는 존재 자체로 기적이었다. 그러나 이유 있는 기적이었다. 이치로는 평생 동안 도를 닦는 수도승의 태도로 야구를 대했다. 야구를 처음 시작한 순간부터, 방망이를 내려놓는 날까지 자신을 다스렸다. 
  
일본 야구를 정복한 연습벌레, 메이저리그마저 삼키다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가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9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가 끝난 뒤 취재진에 둘러싸여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가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9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가 끝난 뒤 취재진에 둘러싸여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그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늘 완벽을 추구했다. 연습은 일상이 됐다. 방과 후 아버지와 함께 공원에서 야구에 몰두했다. 일주일 중 친구들과 노는 시간은 대여섯 시간. 그때부터 시속 100㎞짜리 공을 때리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동체시력을 높이기 위해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글자나 숫자를 판별하는 훈련을 했다. 이렇듯 이치로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프로의 자세로 야구를 대했다. 

"내 꿈은 일류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중고교 때 전국대회에 나가 활약해야 한다. 계약금 1억엔 이상을 받고 주니치나 세이부에 입단하겠다." 이치로는 스스로 이 약속들을 지켰다. 일류 프로선수가 됐다. 9년간 NPB(일본프로야구)에서 951경기 3,619타수 1278안타 118홈런 658득점 529타점 199도루 타율 .353라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NPB 통산 기록의 공식 기준 4000타수다. 남은 381타수 동안 단 세 개의 안타만 기록해도 NPB 통산 최고 타율을 기록한 선수로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일본을 정복한 그는 2001년 메이저리그로 향했다. 주변에서는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메이저리그의 투수의 구위를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는 평가였다. 이를 비웃듯 이치로는 첫 해 무려 242안타를 때렸다. 아메리칸리그 신인왕과 최우수선수 트로피는 그의 차지였다. 2004년에는 한 시즌 262안타를 때리며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257개)도 84년 만에 깨뜨렸다. 데뷔 후 10년 연속으로 200안타, 3할대 타율, 올스타 선발 그리고 골드글러브까지 손에 넣었다. 적은 나이도 아니었다. 27세부터 36세 까지의 성취다. 30대 중반에도 그는 리그 최고의 타자였다. 

휴가조차 가지 않았던 초인, 평생을 바친 자기관리로 이어간 선수 생활

그의 성적은 철저한 자기관리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프로 데뷔 후 2010년까지 매일 점심으로 카레를 먹었고, 원정 경기에선 미국 전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페퍼로니 피자를 먹었다. 숙면을 위한 전용 베개도 늘 갖고 다녔다. 루틴을 지키기 위해 2005년 이후에는 휴가조차 가지 않았다.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전자기기를 볼 때도 꼭 선글라스를 썼다. 화려한 프로 야구선수의 태도라기보다 구도자(求道者)에 가까운 태도였다. 

물론 그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불꽃은 점점 사그라 들었다. 2011년 그의 타율은 .272로 크게 떨어졌다. 시애틀 매리너스에서의 커리어도 끝이 났다. 그러나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2012년 .261의 타율로 전반기를 마감했던 그는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이후 .322의 타율로 반등에 성공했다. 이후 2015년 마이애미 말린스로 적을 옮겼고 풀 타임 시즌은 아니었지만 .291의 기록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2018년, 다시 시애틀로 돌아온 그는 세월을 거스르지 못했다. 결국 5월 3일 이후 선수에서 구단 특별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상 전력 외 선수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치로는 현역 연장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치로는 지난해 MLB.com과의 인터뷰에서 "만 44세의 나이지만, 경기에 나서지 않더라도 매일 훈련한다면 어떻게 되는지 보고 싶다. 팀과 함께 연습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올해 2월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 신분으로 시애틀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으면서 현역으로 복귀했다. 
  
멈출줄 모르던 야구 구도자(求道者)의 마지막 

이치로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5만 5000여 관중이 도쿄돔으로 모여들었다. 그는 고국에서 열리는 개막 시리즈에서 은퇴한 선수로 남았다. 메이저리그 통산 3089안타, 타율 .311의 기록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데 충분한 기록이다. 지금까지 야구를 잘한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그저 야구를 사랑했다."고 답했다. 비록 자신의 등번호인 51세까지 야구를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선수로 팬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빨라지는 시대다. 10년이면 강산이 아니라 한 도시가 바뀐다. 스포츠는 더욱 그렇다. 규칙마저 계속 변한다. 스즈키 이치로는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에도 끊임없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팬들이 야구 수도승의 마지막 합장(合掌)을 보러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꽃은 졌지만 향기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청춘스포츠 9기 박성균
야구 메이저리그 MLB 이치로 NPB
댓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