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

<스물> <바람바람바람> 등으로 특유의 말맛을 살려온 이병헌 감독이 <극한직업>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 CJ 엔터테인먼트

  
개봉 첫 주말을 지나자마자 누적관객 수 300만 돌파. 영화 <극한직업>의 흥행세가 무섭다. 이 기세라면 손익분기점을 훨씬 넘어 새해 첫 대흥행 기록이 나올 수도 있다. 올해 흥행 중인 한국영화의 공통점을 꼽자면 코미디 장르라는 것. 지난 9일 개봉한 중저예산의 <내 안의 그놈> 역시 조용히 흥행 중이다. 

그만큼 코미디에 목말랐던 것일까. 상업영화 데뷔작 <스물>, <바람바람바람> 등에서 개성 있는 대사와 상황 설정으로 관객들을 웃겼던 이병헌 감독을 만났다. 개봉날 만난 그는 <극한직업>을 두고 "오히려 코미디 영화를 처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심 진지하게 운을 뗐다.

웃기겠다는 신념

물론 감독 자체가 워낙 코미디를 좋아하는 것은 맞다. "어렸을 때부터 공포나 잔인한 영화보단 주성치 영화나 찰리 채플린 같은 고전 코미디를 좋아했다"며 이병헌 감독은 "정말 웃기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극한직업>은 본래 문충일 작가, 배세영 작가가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이병헌 감독만의 개성을 담은 작품. 이렇다 할 실적 없이 허송세월 보내는 마약전담반 다섯 형사의 웃기면서도 처절한 좌충우돌기가 그래서 탄생할 수 있었다.

"작가님의 초고만 보고서 몇 번을 웃었다. 제 대사 톤과 비슷한 면도 있었고, 영화를 맡게 되면서 '내가 더 웃겨야지' 생각했던 것 같다. 마약반 인물 설정이나 이들이 치킨집을 차리고 잠복 수사를 한다는 설정은 원래 있었다. 다만 기술적으로 정리할 것은 하고, 일부 설정을 넣은 건 있다. 중요한 건 한 사람의 서사가 아닌 다섯 명의 서사라는 사실이었다. 각각 캐릭터의 개성과 균형감이 가장 중요했다. 

류승룡 선배가 가장 처음 캐스팅되면서 뭔가 안정감이 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장 형사(이하늬)나 마 형사(진선규)는 전형적인 캐릭터긴 했다. 신선한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으로 보완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두 배우분이 하게 된 것이지. 이하늬씨, 진선규씨 모두 이런 캐릭터로 소비되지 않은 분들이라 그만큼 신선할 수 있었다.

전작이 코믹 요소가 있긴 했지만 한 번도 웃기는 게 목적이진 않았다. 전작들은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였다고 생각했다. <극한직업>은 상황을 따라가는 작품이었다. 이걸로 코미디를 처음 해 본 거라고 전 생각한다. 전작에 대한 평가나 강박이 심해서 참 힘들었었다. 이번 작품에선 웃음 자체가 목적이 돼도 상관없겠다고 여기니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 영화인이 아닌 마치 예능인처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 CJ ENM.

 
이병헌 감독은 그만큼 웃음에 집중했고 결과는 지금의 흥행세가 증명하고 있다. "정말 웃기고 싶었다"고 감독이 표현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비중 있게 묘사하진 않았지만 영화엔 소상공인, 평범한 가장, 조직 사회에서 적응이 어려운 소시민적 감성이 담겨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고,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을 다루는 게 좋다"고 그가 이유를 전했다. 이병헌 감독은 과거 직접 가게를 운영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 작품에 현실감을 부여했다고 설명을 보탰다.

"전작을 보면 사람 내면의 부정적인 면을 소재로 삼긴 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거북함도 있었을 것이고 불편함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불편함을 의도한 건 아니었고 좀 더 내면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긴 하다. 자칫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을 겪으며 다음엔 작정하고 웃기고 싶더라. 저도 제 영화 보면서 웃을 수 있는 걸 하고 싶었고, 좀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 개인적으론 부모님이 제 영화에 대해 그간 한마디의 평가도 하지 않으셨는데 이젠 좀 받고 싶기도 했고. 

경찰과 자영업자 심리에 대해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었다. 매형이 경찰공무원이고 친구들 중에도 경찰공무원이 많다. 영화 준비하면서 인터뷰를 많이 했지. 물론 코미디 장르라 일부 고증에 어긋나는 설정도 있긴 하다. 그리고 제가 전에 우동 집을 했다가 망해봤다. 그래서 그런 소상공인 관련 시스템이나 부조리를 이해할 수 있었지. 치킨도 집에서 제가 자주 해 먹는 음식이다. 정말 좋아한다. 영화에 나오는 왕갈비 치킨은 배세영 작가의 생각이었다. 작가님이 실제 레시피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브랜드화 해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웃음)."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

"저도 제 영화 보면서 웃을 수 있는 걸 하고 싶었고, 좀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 개인적으론 부모님이 제 영화에 대해 그간 한마디의 평가도 하지 않으셨는데 이젠 좀 받고 싶기도 했고." ⓒ CJ 엔터테인먼트

 
보통 사람의 감성

영화 속 인물이 하나같이 모자라 보이지만 착하다. 동시에 만화처럼 저마다의 장기를 십분 발휘해 위기를 넘어간다. 여기엔 감독 특유의 인간관이 담겨 있다고 해도 되겠다. 이병헌 감독은 "사람마다 하나의 능력, 장기가 있을 거라고 본다. 다만 살면서 본인도 몰라서 못 꺼낼 뿐이지"라며 "고 반장(류승룡) 캐릭터가 조금 판타지 같아도 사람들이 대리만족하길 원했다. 그래서 좀 더 착하고 소시민적으로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꾸준히 그리고 상대적으로 다작을 하는 상황이다.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어쩌면 인지도 면에선 안정권에 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말에 그는 "조심스럽다"며 "정말로 그런 평이 유지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이 지점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병헌 감독의 뿌리가 다양성, 저예산 영화에 있다는 사실이다. 연출 데뷔작 <힘내요 병헌씨>(2012)를 내놓기 전까지 그는 강형철 감독 사무실 등을 다니며 각색가, 작가로 경력을 꽤 오래 쌓아 왔다. <과속 스캔들> <타짜-신의 손> <써니>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친 작품.

"독립영화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다. 바쁘다는 핑계로 요즘 못 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양성 영화로 도전할 생각이 있다. <힘내세요 병헌씨>는 개봉할 때 전국 상영관이 20개도 안 됐다. 만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포스터도 제가 만들었다. 그 아픔을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고, 다양성 영화가 가진 가치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업영화 시장이 유지될 수 있는 건 이런 다양성이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도, 경제도 마찬가지 같다. 지구를 어벤져스가 지키겠나? 다양성이 지켜준다고 생각한다. 제가 아직 힘이 없지만 힘이 되는 선에서 목소리도 내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독립영화는 제 영화적 뿌리라고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당장은 <극한직업> 이후 드라마 <멜로가 체질> 등으로 바쁜 나날을 계속 보내야겠지만 그는 나름 진정한 쉼표 또한 노리고 있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하실 수도 있지만, 어떤 분들은 빚이 있냐 너무 열심히 한다는 분도 있다"며 그는 "너무 여유 없이 달려온 것 같은데 꾸준히 작품을 하면서도 여유를 품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

"상업영화 시장이 유지될 수 있는 건 이런 다양성이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도, 경제도 마찬가지 같다. 지구를 어벤져스가 지키겠나? 다양성이 지켜준다고 생각한다." ⓒ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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