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예술센터 2019년 시즌 프로그램에 참여한 창작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산예술센터 2019년 시즌 프로그램에 참여한 창작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서정준

 
과연 연극인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까.

지난 23일 오후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남산예술센터 2019 시즌 프로그램 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종휘 서울문화재단 대표, 배해률 작가, 구자혜 연출, 박상현 연출, 손원정 드라마터그, 서민준 작가, 이래은 연출, 이양구 작가, 류주연 연출, 강량원 연출, 배요섭 연출,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착석순)이 참석했다. 간담회에서는 크게 2019 시즌 프로그램 발표와 함께 존폐 위기에 놓인 남산예술센터의 생존, 아직 끝나지 않은 지난 정권의 블랙리스트 관련 이야기가 주로 언급됐다.

세월호 소재, 한강·장강명 소설 원작 작품도 무대에 오른다
 
 김종휘 서울문화재단 대표, 배해률 작가, 구자혜 연출, 박상현 연출, 손원정 드라마터그, 서민준 작가, 이래은 연출, 이양구 작가, 류주연 연출, 강량원 연출, 배요섭 연출,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착석순).

김종휘 서울문화재단 대표, 배해률 작가, 구자혜 연출, 박상현 연출, 손원정 드라마터그, 서민준 작가, 이래은 연출, 이양구 작가, 류주연 연출, 강량원 연출, 배요섭 연출,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착석순). ⓒ 서정준

 
우선 2019 시즌 프로그램은 총 여섯 작품과 공모프로그램 < 2019 서치라이트(SEARCH WRIGHT) >로 이뤄진다. 여섯 작품 중 하나는 2018 시즌 프로그램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원작 장강명, 각색 정진새, 연출 강량원, 10월 9일~27일)이며 신작 다섯 작품들은 동시대 가장 민감한 화두를 다뤘다.

지난해 쇼케이스에 이어 무대에 오르는 작품으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을 담은 < 7번국도 >(작가 배해률, 연출 구자혜, 4월 17일~28일),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를 다시 한 번 이야기할 <명왕성에서>(작/연출 박상현, 5월 15일~26일)가 소개됐다.

또한 제8회 벽산희곡상 수상작으로 심사 당시 심사위원들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언급하며 기성작가의 작품이 아니냐며 경탄했다고 밝힌 <묵적지수>(작가 서민준, 연출 이래은, 6월 26일~7월 7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무대화한 < Human Fuga(휴먼 푸가) >(원작 한강, 공동창작/연출 배요섭, 11월 6일~17일)도 있다.
 
 남산예술센터 우연 극장장

남산예술센터 우연 극장장 ⓒ 서정준

 
그러나 이날의 진짜 주인공은 작품이 아니라 남산예술센터 그 자체였다. 이날 현장에서 우연 극장장은 '극장을 지켜라'가 올해의 화두라고 이야기했다. 총 6개 작품을 소개한 시즌 프로그램 발표도 개별적인 작품 내용에 대해 힘을 주기보다는 이 작품이 동시대에 어떤 화두를 전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가능케한 남산예술센터가 연극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발표하는 분위기였다.

<채식주의자>로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국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무대화되는 것도 이례적이다. 조선총독부 땅이던 남산예술센터가 서울예대의 재산이 된 과정 그 자체를 놓고 이야기화하는 <드라마센타, 드라마/센타(가제)>(작 이양구, 연출 류주연) 같은 도발적 작품도 무대에 오른다.

'남산예술센터 지켜야' 한다는 의견에 집중된 분위기

그런데 개별 작품에 대한 이슈보다는 발표회 전체가 '남산예술센터를 지켜라'라는 쪽으로 집중됐다.

배해률 작가와 함께 < 7번국도 >를 올릴 구자혜 연출은 이에 대해 "남산예술센터와 같이 협업해온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강제나 강요가 아니라 극장의 자율적의지로 동시대 연극에 대한 고민과 한계를 계속 소통해왔다고 생각한다"라며 "그간 남산예술센터가 해온 것이 '순삭'되지 않게끔 내부인들의 이야기가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묵적지수>의 서민준 작가 역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한 후 "간단히 말해서 성을 잘 지켜내는 이야기고 극장 역시 잘 지켜내야 할 것이다"라며 남산예술센터에 대한 의견을 덧붙였다.
 
 이양구 작가와 류주연 연출

이양구 작가와 류주연 연출 ⓒ 서정준

  
이런 상황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극장소유주인 서울예술대학은 2009년부터 이어진 서울시와의 임대 계약을 당장 2020년까지만 유지하기로 했다. (서울시 임대, 서울문화재단 위탁 방식으로 운영) 즉 현재 구상대로라면 앞으로 2년 뒤면 공공극장으로서의 상징성을 유지해온 남산예술센터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남산예술센터는 그간 실험적인 창작 초연 위주의 라인업을 선보이며 공공극장의 역할이 '모든 관객'을 위한 것인지, '연극인'만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발전적이고 대담한 극을 무대에 올리며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오기도 했다.

우연 극장장은 이에 대해 폴란드의 대표적 지성인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우리 극장에서 70명, 100명을 앉혀놓고 하는 공연이 있는데 만약 그 중에 이 사회의 솔루션이 되는 작품이 있다고 한다면 어떡하시겠느냐"라고 말문을 열었다.

우 극장장은 이어 "저는 그런 작품들이 분명 기능하고 있고, 시민이 다같이 좋아하는 엔터테인먼트도 있고 그게 서로 다르다고 생각한다"라며 "남산예술센터 작품의 성향이나 역할은 전자에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수를 예정하거나 모객으로 작품의 가치를 생각하기보다는 작품 본연의 가치, 창작자의 목표를 달성하게끔 하고, 거기에 운좋게 동의해주시는 관객이 많다면 더욱 행복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지금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대중과 만날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지금의 색깔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박원순 시장이 극장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켜주길"
 
 서울문화재단 김종휘 대표

서울문화재단 김종휘 대표 ⓒ 서정준

 
한편,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본부장에게 최종 결재권이 넘어간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현재 남산예술센터와 삼일로창고극장은 지역문화본부 산하 극장운영팀에게 결재권이 넘어간 상태다.

이양구 작가는 질의응답 시간 중 이례적으로 김종휘 대표에게 "극장의 자율성,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극장장에게 결재권이 없으면 일하는 사람이 누구 눈치를 보며 일하게 되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종휘 대표는 (블랙리스트 같은 일을) 앞으로 안 벌이겠다고 하지만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서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며 기자들을 앞에 두고 공개적인 발언을 요구하는 등 즉석에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또 "박원순 시장을 지지했던 연극인들이 블랙리스트가 됐다. 박원순 시장이 극장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켜주기 바란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김종휘 대표는 이에 대해 "일리 있는 이야기다. 올해 안에 남산예술센터와 삼일로창고극장을 별도 조직으로 분리할 것"이라고 답변하면서도 "앞으로 동숭아트센터 등 운영해야할 곳이 늘어나게 되면서 시스템을 정비한 것"이라 말하며 행정, 인사권에 대해서는 현 시스템을 유지할 것이라 밝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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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 연극/뮤지컬 전문 기자. 취재/사진/영상 전 부문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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