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축구 게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그들은 마음만 앞세웠다.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첫 경기에서 0-4로 완패했기에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축구는 의지만 강조하며 물러서지 않는다고 뜻대로 이루어지는 게임이 아니라는 점을 그들은 간과했다.

효율성은 찾아볼 수도 없었고 선수들은 자신을 둘러싼 게임 조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막무가내로 뛰면서 다음 게임까지 망쳐놓는 어리석은 결과를 내놓고 말았다. 멀리서 봐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무모한 반칙을 반복하면서 경고를 받는 바람에 핵심 공격형 미드필더 정일관이 퇴장까지 당했고, 왼쪽 풀백 리일진도 지난 경기에 이어 이번에도 경고를 받아 레바논과의 마지막 경기에 뛸 수 없게 됐다.

김영준 감독이 이끌고 있는 북한 남자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13일 오후 8시 아랍에미리트 알 아인에 있는 칼리파 빈 자예드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9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E조 카타르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조급한 마음으로 덤비다가 0-6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카타르에 0-6 대패한 북한 대표팀

카타르에 0-6 대패한 북한 대표팀 ⓒ AFP/연합뉴스

 
젊은 감독의 무모한 도전이었나?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첫 경기와 달리 포 백 시스템을 내세운 북한은 초반부터 양쪽 풀백을 비교적 높은 위치까지 끌어올려 공격적으로 나왔다. 그런데 상대 팀 카타르가 북한의 이러한 대응을 매우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역습을 전개하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한마디로 북한의 전술을 카타르가 다 꿰뚫어보고 들어왔다는 뜻이다. 상대 팀 전술의 두 수 앞을 내다보고 게임을 펼치니 그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북한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감독은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낯익은 국가대표 출신 김영준인데 마흔이 안 된 새내기 감독이라 할 수 있다.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감독으로서 그 경험은 이렇게 큰 대회가 처음이기에 상대 팀의 경기력을 분석하는 안목이 한계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스페인 출신의 펠릭스 산체스 감독이 이끌고 있는 카타르는 북한 선수들의 조급한 마음과 어설픈 공격지향적 움직임을 꿰뚫고 있기에 비교적 이른 시간부터 효율적인 역습으로 점수를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경기 시작 후 8분만에 카타르의 골 잔치가 시작됐다. 왼쪽 옆줄 가까이에서 카타르가 자랑하는 측면 미드필더 아크람 아피프가 얼리 크로스로 간판 골잡이 알모에즈 알리를 빛냈다. 이 어시스트를 받은 알모에즈 알리는 북한 수비수 세 명이 에워싸고 있었지만 침착하게 왼발 슛을 꽂아넣었다. 

아크람 아피프의 크로스 순간 북한 수비수가 바로 앞에 2명, 알모에즈 알리가 볼을 터치하여 왼발 슛을 날리는 순간 북한 수비수가 매우 가까운 곳에 3명이나 있었지만 크로스나 슛 모두 막아내지 못했다. 축구에서 수비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공격 흐름에 어울리는 압박 대응이라는 것을 북한 선수들은 간과하고 있었다. 
 
 득점 후 환호하는 카타르 알리(왼쪽)

득점 후 환호하는 카타르 알리(왼쪽) ⓒ AFP/연합뉴스

 
이처럼 북한 축구의 비효율성은 이후에도 여러 장면에서 민낯을 드러냈다. 3분 뒤 카타르의 추가골이 터졌다. 이번에는 반대쪽 측면에서 시작된 역습이었다. 알 하이도스가 기습적인 얼리 크로스를 시도하는 순간 북한 센터백 김철범이 골문 바로 앞 공간을 너무 쉽게 내준 것이 화근이었다. 방향만 살짝 바꾼 두 번째 골 주인공도 역시 알모에즈 알리였다.

'알모에즈 알리 4득점+아크람 아피프 4도움' 놀라운 기록

이처럼 허술하면서도 비효율적인 축구를 고집한 북한 덕분에 카타르가 자랑하는 핵심 두 선수는 더블 해트트릭(득점 해트트릭+도움 해트트릭) 진기록도 모자라 나란히 '4득점+4도움'의 보기 드문 족적을 남겼다.

특히 골잡이 알모에즈 알리는 카타르의 여섯 번째 압델카림 하산의 왼발 골을 어시스트했으니 공격 포인트를 무려 다섯 개(4득점 1도움) 완성시키는 놀라운 결정력을 자랑한 셈이다.

전반전에 2골을 몰아 넣은 알모에즈 알리는 55분에도 단짝 아크람 아피프의 전진 패스를 받아 왼발 슛으로 해트트릭을 완성시켰으며 그로부터 5분 뒤에도 역시 아크람 아피프의 도움을 받아 왼발 추가골을 넣었다. 골잡이의 '네 번째 골'과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의 '네 번째 도움'이 거짓말처럼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이렇게 핵심 두 선수가 골과 어시스트를 무려 네 개씩 주고받을 때 북한 선수들은 그야말로 스스로 무너져내렸다. 북한의 공격 비중이 큰 정일관은 17분에 첫 번째 경고를 받은 것도 모자라 90분에도 거친 반칙을 저질러 딜런 페레라(스리랑카) 주심으로부터 퇴장 명령까지 받고 말았다. 18분에 또 하나의 경고를 받은 리일진은 그것이 이번 대회 두 번째 카드였기 때문에 레바논과의 마지막 경기에 수비 라인을 형성할 수조차 없게 됐다.

이제 북한은 오는 18일(금) 오전 1시 레바논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남겨놓게 되었는데 이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대 팀에 대한 분석과 이에 어울리는 유연한 대응 전술이 시급한 실정이다. 또 의욕만 앞세웠다가는 아시아 축구 변방 중에서도 더 깊은 곳까지 빠져들 수 있는 일이다.

2019 AFC 아시안컵 E조 결과(13일 오후 8시, 칼리파 빈 자예드 스타디움-알 아인)

★ 북한 0-6 카타르 [득점 : 알모에즈 알리(8분,도움-아크람 아피프), 알모에즈 알리(11분,도움-알 하이도스), 부알렘 쿠키(43분,도움-아크람 아피프), 알모에즈 알리(55분,도움-아크람 아피프), 알모에즈 알리(60분,도움-아크람 아피프), 압델카림 하산(67분,도움-알모에즈 알리)]

◎ 북한 선수들
FW : 정일관, 박광룡, 림광혁(63분↔리용직)
MF : 리은철, 김경훈, 김용일(44분↔리혁철)
DF : 리일진, 김철범, 김성기(76분↔리동일), 심현진
GK : 리명국

◎ 카타르 선수들
FW : 알모에즈 알리
AMF : 아크람 하산 아피프, 부알렘 쿠키, 하산 알 하이도스
DMF : 압델라지즈 하템, 아심 오메르 마디보(71분↔아메드 파티)
DF : 압델카림 하산(80분↔알리 아피프), 타렉 살만, 바삼 알 라위, 페드로 코레이아(73분↔하미드 이스마일)
GK : 사드 알 쉬브

◇ 주요 기록 비교
점유율 : 북한 35.7%, 카타르 64.3%
유효 슛 : 북한 0개, 카타르 6개
슛 : 북한 5개(박스 안 4개), 카타르 13개(박스 안 10개)
패스 : 북한 274개, 카타르 512개
롱 패스 : 북한 51개, 카타르 72개
패스 성공률 : 북한 77.4%, 카타르 84%
공격 지역 패스 성공률 : 북한 61.9%, 카타르 76.9%
크로스 : 북한 15개, 카타르 8개
크로스 성공률 : 북한 26.7%, 카타르 25%
가로채기 : 북한 15개, 카타르 7개
코너킥 : 북한 6개, 카타르 5개
오프 사이드 : 북한 6개, 카타르 1개
태클 : 북한 12개, 카타르 7개
파울 : 북한 19개, 카타르 13개
경고 : 북한 6장(리은철, 정일관 2장, 리일진, 김용일, 박광룡), 카타르 1장(압델카림 하산)
퇴장 : 북한 1장(정일관,경고 누적), 카타르 0장

◇ E조 현재 순위
1위 카타르 6점 2승 8득점 0실점 +8 *** 16강 진출!
2위 사우디 아라비아 6점 2승 6득점 0실점 +6 *** 16강 진출!
3위 레바논 0점 2패 0득점 4실점 -4
4위 북한 0점 2패 0득점 10실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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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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