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코리안 파이터를 언급하라면 단연 UFC 페더급에서 활약 중인 '코리안 좀비' 정찬성(32·코리안좀비MMA)을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정찬성과 함께 코리안 쌍두마차로 평가받는 '스턴건' 김동현은 공중파, 케이블을 가리지 않는 왕성한 예능 출연으로 인해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상당히 높다. UFC에서도 오랜 기간 동안 롱런하며 모범적인 사례를 남겼다.

하지만 상위권 강자와 맞붙기만 하면 어이 없는 패배를 헌납하고 경기 내용 자체가 재미 있는 쪽은 아닌 지라 오랜 경력에 비해 현지에서 인기 파이터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슈퍼보이' 최두호 같은 경우 데뷔 초부터 기가 막힌 카운터를 앞세워 연승행진을 벌여 화제몰이에는 성공했으나 이후 검증매치에서 연거푸 무너지면서 뜨거웠던 불길이 식어버린 상태다. '지는 것이 이런 기분이군요. 두 번 다시 지지 않겠습니다'라는 발언은 이후 성적이 따르지 않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만 상태다.

반면 정찬성은 숫기도 적고 다소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나서지 않는 성향이며 겸손함과 배려심이 몸에 밴 전형적인 착한 남자로 알려져 있다. 캐릭터만 놓고 보면 '해외에서 어떻게 이름을 알렸을까'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파이터로서의 정찬성은 전혀 다르다.

'코리안좀비'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누구를 만나던 공격적으로 압박하려 하고 스탠딩, 그라운드를 가리지 않은 채 진흙탕 싸움도 서슴치 않는다. WEC무대에서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 세기의 난타전을 벌이며 순식간에 미국 현지를 뜨겁게 달궜으며 이후 UFC에 입성해서도 매경기 인상적인 모습을 연출해 동양인 파이터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더 다이아몬드' 더스틴 포이리에와의 수준 높았던 공방전, 제대 후 3년 6개월 만에 가졌던 데니스 버뮤데즈와의 복귀전을 승리로 이끈 환상적인 어퍼컷 등 정찬성은 매 경기가 명승부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시간에 울고 웃었던 인상적인 3경기를 꼽아보았다.
 
 '코리안좀비' 정찬성은 한경기 한경기가 드라마같다.

'코리안좀비' 정찬성은 한경기 한경기가 드라마같다. ⓒ UFC 아시아 제공

 
'7초의 임팩트' 짧은 시간, 큰 기쁨
 
2011년 12월 11일(한국시각) 캐나다 토론토서 있었던 UFC 140대회는 정찬성이라는 이름을 세계 격투 팬들에게 제대로 알린 이벤트였다. 이날 정찬성과 격돌한 선수는 '더 머신' 마크 호미닉(36·캐나다), 비록 패하기는 했으나 직전 경기에서 챔피언 조제 알도와 타이틀매치를 벌여 판정 승부까지 간 강자였다.

화끈한 파이팅 스타일로 인해 인지도를 쌓아가는 과정이기는 했으나 정찬성과는 네임밸류 차이가 컸다. 당시 UFC 2전째인 정찬성이 이길 것으로 보는 이들은 극히 적었다. 호미닉은 정찬성에게 KO패를 안긴 조지 루프를 1라운드 초반 TKO로 꺾은 전력까지 있었다. 국내 팬들 사이에서도 "패해도 좋으니 경험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잘 싸워주기를 바란다"는 반응일색이었다.

승부는 그야말로 삽시간에 갈렸다. 정찬성을 너무 쉽게 봤던 것일까, 아님 기습공격을 준비했던 것인지 호미닉은 공이 울리기 무섭게 펀치를 앞세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당황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만 정찬성은 침착했다. 호미닉의 펀치를 흘리듯 피해내고 이내 카운터펀치를 꽂았다. 정타를 허용한 호미닉은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고, 정찬성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달려들어 강한 파운딩 연타로 삽시간에 경기를 끝냈다. 대 이변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7초 넉아웃 승리'는 이전 헤비급 토드 듀피의 역대 최단시간 KO와 타이를 이루는 기록이었던 지라 팬과 관계자들 사이의 놀라움은 컸다. 이날 승리를 통해 인지도를 제대로 쌓게 된 정찬성은 다음 경기에서 포이리에와 일전을 가져 승리한 후 타이틀 도전까지 이뤄낼 수 있었다.
 
아까운 부상, 시간을 꽉 채웠더라면...
 
포이리에를 4라운드 서브미션 승으로 제압했던 정찬성은 경기 후 승리 인터뷰에서 다른 때보다 더욱 격앙되어 있었다. 애써 흥분을 자제하던 그는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저번 승리에 운이 따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운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 원트 조제 알도"

국내 팬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대박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UFC에서 코리안 파이터가 강적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인데 한 술 더 떠 체급 내 최고의 레전드를 호출한 것은 듣는 이들까지 짜릿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결국 정찬성은 바람대로 최강의 남자 알도와 맞붙게 됐다. 2013년 8월 4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HSBC 아레나서 있었던 UFC 163 페더급 타이틀매치가 그것이다. 살짝 밀리는 감은 있었지만 3라운드까지 정찬성은 잘 싸웠다. 외려 4라운드 공이 울리자 '해볼 만하다'는 표정으로 더욱 자신만만하게 알도를 압박했다.

아쉽게도 승패를 가른 것은 부상이었다. 정찬성은 과감하게 펀치를 휘두르며 알도를 압박하다가 오른쪽 어깨가 탈구되는 불운을 겪었다. 그 상황에서도 정찬성은 스스로 어깨를 끼워 맞추며 경기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으나 알도는 이를 묵인하지 않았다. 정찬성의 다친 어깨 쪽을 집중 공격하며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았고 승부는 거기서 끝났다.

당시 경기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가 정찬성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렸을 때, 안타깝기 그지 없는 장면이었다. 승부의 세계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다지만 '그래도 시간을 꽉 채워서 경기했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1초에 어긋나버린 아쉬운 승부
 
가장 최근 경기다. 더불어 정찬성 격투 인생에서 가장 아쉬울 수도 있는 승부다. 정찬성은 지난해 11월 11일(한국시각)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펩시 센터서 열렸던 'UFC Fight Night 139'대회 메인이벤트에서 '표범' 야이르 로드리게스(27·멕시코)와 격돌했다.

본래 프랭크 에드가와 격돌할 예정이었으나 에드가의 부상으로 로드리게스가 대체선수로 들어왔다. 객관적 전력은 분명 로드리게스가 에드가보다 아래지만 높지 않은 랭킹을 감안했을 때 승리시 얻게 되는 것보다 패배시 잃을 게 더 많다는 점에서 꺼림직한 부분도 컸다. 더욱이 젊은 선수는 매 경기 경기력이 달라질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망됐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정찬성은 '킥 마스터' 로드리게스를 펀치로 압박하며 경기 내내 유리하게 경기를 끌고 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너무 방심했다. 좀 더 화끈한 마무리를 위해 과감하게 치고 들어갔다가 묘한 각도에서 터진 로드리게스의 팔꿈치에 턱을 얻어맞고 실신하고 말았다. 경기 종료를 불과 1초 남기고 벌어진 사태였다.

경기 전 예상대로 로드리게스전 패배로 인해 정찬성이 잃은 것은 많다. 랭킹 하락은 물론 향후 대권경쟁을 위해서는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로드리게스는 당시 경기에서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과도한 퍼포먼스를 남발했는데 착한(?) 정찬성은 거기에 일일이 답해주면서 페이스가 말려버린 부분도 크다는 분석이다. 좀 더 독해질 필요가 있다는 질타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만큼 지켜보는 이들의 아쉬움이 컸다. 향후 경기에서는 이 같은 부분을 극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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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좀비 7초 승리 어깨 탈구 1초 패배 정찬성 부활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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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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