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범수.

배우 이범수가 영화 <출국>으로 관객과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 디씨드

 
영화 <출국>을 두고 배우 이범수는 줄곧 부성애를 강조했다. 냉전 시대 말기, 이념에 의해 아내·딸과 생이별을 한 뒤 다시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이야기. 해당 작품이 이 골격으로 움직이는 만큼 아버지이자 경제학자 오영민 역을 맡은 이범수로선 당연한 설명이었다.

동시에 그는 작품과 관련한 논란 등으로 우려의 마음 또한 품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영화진흥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인 모태 펀드 투자 과정에서 수월하게 제작비 지원을 받고, 특혜를 입었다는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논란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생 제작사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점도 그에겐 부담 요소로 작용할 법했다.

지난 5일 언론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소감을 묻자 그는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안도할 수 있었다"며 영화 완성도에 대해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잘났든 못났든 최선을 다한 아버지의 모습을 잘 보여준 것 같다"며 "시사회 때 감독 손을 잡으면서 고생 많았다고 말해줬다"고 당시 분위기부터 전했다.

이범수의 접근법

그에게 오길남씨의 저서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에선 크레디트로 '이 소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며, 사실상 원작에 준하는 참고 서적임을 명시한 바 있다.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에는 실제로 월북했다가 가족을 두고 북한을 빠져나온 오씨의 경험이 서술돼 있다. 저자인 경제학자 오씨는 1993년 다른 저서에서 '작곡가 윤이상이 월북을 종용했다'고 주장하며 유족들과 법정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해당 저서와 오씨의 주장을 현재까지도 일부 보수 정치인들이 단골 소재로 이용하기도 하는 등 이념 논쟁의 불씨처럼 여겨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범수는 해당 도서를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 <출국>의 한 장면.

영화 <출국>의 한 장면. ⓒ 디씨드

 
"배우가 영화를 고를 때 기준이 시나리오와 캐릭터잖나. 제가 가정을 이루기 전, 어렸을 때 이 작품을 만났다면 시나리오가 덜 와닿았을 텐데 지금 두 아이의 아빠이다 보니 오영민이 남 같지 않게 다가왔다. 위로하고 싶었다. 영민에게 고생했다,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인천상륙작전> 등의 시나리오를 같이 보던 때였는데 이 작품이 더 끌렸다. 

노규엽 감독을 만났을 때 왜 내게 부성애로 러브콜 하는지 물었다. 제 예전 작품에서 보인 인간적인 면, 온기에 대한 기대가 있다더라. 제 출연작을 연구해온 느낌을 받았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잖나. 제가 학창시절일 때인데 그때 우리 아버지는 어땠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부장적이고, 그래서 가족과 부딪히던 분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 당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겠더라.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영화였고,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촬영이 끝나고 후반 작업을 할 때 그런 논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제작사에서 해명했고, 오해가 풀렸다고 생각한다. (화이트리스트는) 두 말 할 필요 없다. 부당하게 누군가가 이득을 봤다면 비판받아야지. 제 삶을 돌이켜봤을 때 부당하게 제가 이익을 보면서 달려왔던가. 다행히도 30만 원 받으며 연기하던 배우에서부터 뚜벅뚜벅 걸어왔다. 돌아가든 늦게 가든 정석대로 해왔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유로 이범수는 오길남 박사나 그의 가족 등을 만난다거나 해당 시대에 대해 따로 뭔가를 공부하진 않았다. 이 지점에서 이범수는 <출국>이 부성애에 대한 작품임을 다시 강조했다.

"어떤 영화, 드라마든 원작이 없는 게 부지기수다. 결국 시나리오가 중요하다. (배우로서) 정보가 과잉되면 오히려 연기에 집중하기 어렵다. 이번 영화에서도 감정 연기에 집중하려 했다. 여러 형태의 부성애를 그릴 수 있는데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이 1980년대였을 뿐이다. 물론 불완전한 시대지. 지금도 근데 불완전한 시대다. 분명한 건 거기에서 완전함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도다. 그럼에도 살아갈 가치가 있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굳이 1980년대 냉전 시대로 가지 않더라도 새마을 운동할 때도 그렇고 우리들의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하셨나. 완벽한 사람이든 모자란 사람이든 어쨌든 자식에 대한 애정은 있을 것 아닌가. 그 온정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광대론
 
 배우 이범수.

"촬영이 끝나고 후반 작업을 할 때 그런 논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제작사에서 해명했고, 오해가 풀렸다고 생각한다. (화이트리스트는) 두 말 할 필요 없다. 부당하게 누군가가 이득을 봤다면 비판받아야지." ⓒ 디씨드

 
실제 이범수의 부친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이를 언급하자 "그게 대단한 게 아니다. 아마 그때 대부분의 청년들은 참전하지 않았을까"라며 그는 "무뚝뚝하고 투박하셨지만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저 역시 그렇게 자라길 바라셨던 것 같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캐릭터 설정, 일부 구성에선 분명 비판의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노규엽 감독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극중 오영민에게 월북을 권하는 이가 해외로 망명한 학자(전무송)라거나 오영민 본인 역시 베를린을 기반으로 박정희 독재 정권 비판 활동에 참여한 이력이 있고, 동지들에게 이용당한다는 점 등이 우려스럽다. 민주화 운동가를 자칫 왜곡된 시선으로 보게 할 여지가 크기 때문.

묘사 방식에 대한 우려에 이범수는 "저 역시 <아이리스>라는 드라마에서 조선민주주의 해방을 위해 전사한 캐릭터였다"며 "배우는 조직이나 위계질서에서 자유로울 줄 알아야 한다"고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까지 그가 참여한 영화 <인천상륙작전>, 곧 개봉할 <자전차왕 엄복동> 모두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시대물이라는 점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시대 배경과 묘사 방식 또한 중요한 요소라는 취지의 질문이었다.

"배우는 그 시대를 조망하는 광대다. 광대는 마음껏 세상을 조롱하고 웃기기도 한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광대가 존재하잖나. 그만큼 대중과 친근하기도 하고. 나를 대신해 세상을 조롱해주면 거기에 재미와 쾌감을 느끼고, 반대로 행동하면 광대에게 화도 내기 마련이다. 광대는 그만큼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사건을 다룬다고) 부담되는 건 없다. 부담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 역사를 소재로 한 문학가와 예술가들은 다 부담을 느끼게? 결국 해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면 아예 인물 자체에 접근을 못 하거나, 한다 하더라도 이상하게 접근할 것 같다. 오히려 그럴수록 순수하게 접근하는 게 맞다고 본다. 저 역시 그렇게 작품을 해왔다."


인간적 온기
 
 배우 이범수.

“배우는 또 그 시대를 조망하는 광대다. 광대는 마음껏 세상을 조롱하고 웃기기도 한다." ⓒ 디씨드

 
전작을 언급하면서 이범수는 "순리대로 선택한 작품"이라 설명했다. "작품 수에 이젠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며 그는 "엔터 기획사, 영화 제작일도 재밌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더 많은 걸 더 빨리 하느냐가 이젠 중요하지 않다. 작품 수가 38개든 42개든 뭐가 크게 다를까. 그 당시엔 이거 아니면 큰일 난다며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잖나. <인천상륙작전>이 700만이 들었는데 크게 기뻐할 일도 아니다. 반대로 이 영화가 잘 안 된다고 해도 제가 갑자기 사라질 것도 아니고. 그저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인간적으로 온기를 잃지 않고 온전하게 선택하고 싶다.

제가 주제 넘게 (<자전차왕 엄복동>) 제작을 맡았지만 제겐 이것 역시 영화 일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하던 거나 똑바로 하라고 하셨겠지만. 돈이 10원 하나 안 생겨도 영화가 재밌다. 사람들이 모여 꼼지락거리는 게 재밌지 않나. 축구도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모여서 게임 하는 재미로 다들 시작하잖나. 재미에서 시작하는 게, 그런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하는 게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범수 출국 연우진 화이트리스트 북한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