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엄경철의 심야토론> '성 소수자와 차별금지법' 방송 장면. 왼쪽부터 패널로 참석한 진중권 교수, 금태섭 민주당 의원,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 조영길 변호사

지난 27일 <엄경철의 심야토론> '성 소수자와 차별금지법' 방송 장면. 왼쪽부터 패널로 참석한 진중권 교수, 금태섭 민주당 의원,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 조영길 변호사 ⓒ KBS

 
지난달 27일 KBS1 <엄경철의 심야토론>은 성소수자와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찬성 의견 쪽 패널로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반대 의견 쪽 패널로는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과 조영길 변호사가 나와 토론을 벌였다.

금태섭 의원이 "동성애란 왼손잡이와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이야기 하자, 이언주 의원은 사이언스지와 각종 기사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동성애 유전자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후로도 토론이 진행되는 내내 동성애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성적지향과 차별금지법에 대한 무지로 점철된 토론  
 
 KBS <엄경철의 심야토론> 갈무리

KBS <엄경철의 심야토론> 갈무리 ⓒ KBS


이날 토론에서 이언주 의원은 "동성애 유전자는 없다"고 단호하게 단정했지만, 최근 <연합뉴스> 등 언론 보도를 보면, '동성애 유전자는 없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는 지난 10월 22일 "동성애 유전자 존재하지 않고 4개 관련 유전자 변이만 발견"란 기사를 통해 미국 한 연구팀의 유전자 자료 조사 결과를 인용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개인이 동성애자가 되게 하는 단독적인 동성애 유전자(gay gene)는 없고 다양한 유전적 요소에 의해 부분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영길 변호사와 이언주 의원은 이후에도 줄곧 동성애의 유전성을 언급하며 '동성애 유전자는 없기 때문에 개인이 충분히 성적 지향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고 선탁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조 변호사는 "미국에서 탈동성애 사례를 많이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단독적인 동성애 유전자가 없다는 것은 결국 개인의 성적 지향을 결정짓는 요인은 굉장히 다양하며, 따라서 어느 한 부분만을 바꾸는 방식으로 지향을 바꾸기란 매우 힘들고 폭력적인 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두 패널은 개인의 단순한 취향, 선택할 수 있는 사안으로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동성애의 유전성 여부를 강조했는데, 이 점은 굉장히 문제적이다.

게다가 이 의원은 "동성애자들의 인권은 존중해야 하지만 그들의 행위에 대해 반대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까지 했다. 이는 토론 내내 '반대' 쪽 패널들의 핵심 주장으로 제시됐다. 조영길 변호사 역시 "사람에 대한 평가와 행위에 대한 평가를 구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동성애자 개인을 모욕하는 게 아니라 동성 성행위를 반대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폭력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이분법이 아닐 수 없다. 금태섭 의원이 말했듯 사람과 행위를 분리시키자는 것은 '나는 왼손잡이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지만 왼손으로 하는 행위는 정상적이지 않다고 계속 얘기하겠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해당 이분법은 성소수자의 '행위'가 '성행위'로 국한되어 표현된다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적이다. 성소수자도 이성애자들처럼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일 뿐이고, 그 과정에서 성적인 행위가 일어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성애자들의 성행위는 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는데 유독 성소수자, 특히 동성애자들의 성행위는 '행위'라는 말로 뭉뚱그려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걸까. 
 
 KBS <엄경철의 심야토론> 갈무리.

KBS <엄경철의 심야토론> 갈무리. ⓒ KBS


성소수자 군인을 처벌하는 악법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군형법 92조의 6 역시 이런 차원에서 볼 수 있다. 성소수자 남성 군인이라고 해서 모든 남성에게 성욕을 느끼는 것이 아니며 모든 남성과 성행위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법과 인식의 문제를 논할 때면 항상 그들의 '성행위'가 중점 이슈가 되어버리는 듯하다. 

차별금지법 또한 반대 측의 무지를 드러내는 소재가 되었다. 조영길 변호사는 '동성애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 외국에서는 단지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기독교적 신념을 말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한국에서도 차별금지법을 만들면 이런 개인적인 신념이 탄압받을 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첫째로,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자를 콕 집어서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으며 당연히 기독교만 대상으로 한 법 역시 아니다. 

둘째로 <뉴스앤조이>에 따르면 한국에서 여태껏 발의되었던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해서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하기 때문에 불이익을 주게 되면 처벌하게끔 한 것이다. 엄연히 다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가짜뉴스에 기반한 주장으로 토론에 나서는 것은 제대로 된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진중권 교수는 재일동포에 대한 혐오발언(hate speech)이 일본 내에서 처벌받기 시작했다는 사례를 들며 "이것이 일본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것이냐"고 묻는다. 이에 이언주 의원은 "그건 재일동포 건이니까 조금 다른 문제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언주 의원의 발언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결국 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특정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다는 점에서 재일동포와 성소수자 이슈는 크게 다르지 않다.

공영방송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으니 다행인 걸까

그나마 KBS라는 공영방송사에서 성소수자와 차별금지법 관련 토론을 했다는 데에서 위안을 얻어야 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지 어언 10여년이 지났다. 2007년, 2010년, 2012년 세 차례에 걸쳐 입법 시도가 있었다. 전혀 아무런 기반 없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처음 논하는 것처럼 전 국민이 보는 방송에서 그런 '아무말'을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참담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토론과 논쟁을 하는 데에 있어 모든 이의 의견이 존중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논의의 장에 내놓을 만한 가치가 있는 주장과 아닌 주장은 분명 존재한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내놓을 만한 가치가 있는 주장들의 외연을 좀 더 넓혀야 한다. 폭력과 편견으로 점철된 의견들을 향해 '그것은 문제가 있는 주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야말로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이다.

조영길 변호사가 부적절한 발언들을 반복하자 엄경철 앵커는 답답해하며 조 변호사에게 물었다. "성소수자는 사회적으로 계속 존재할 텐데, 언제까지 이런 방식을 써야 하냐"고. 정말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걸까. 이제는 조금 더 내놓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들이 미디어에 더 많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차별금지법 #성소수자 #공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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