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해진

중저예산의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유해진은 아내를 권위적으로 대하는 남편 태수 역을 맡았다. ⓒ 화이브라더스코리아

 

핸드폰 바탕화면 저장사진이 아스팔트 돌담 사이에 핀 붉은 국화꽃이었다. 기자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환하게 웃는 유해진은 분명 감수성과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영화 <완벽한 타인>에선 완벽하게 아내를 무시하고 질타하는 나쁜 남편이 됐다. 

40년 지기 친구 집들이에 모인 7명의 남녀가 우연히 핸드폰 진실게임을 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 <완벽한 타인>에서 유해진은 서울대학교 출신 변호사 태수 역을 맡았다. 많은 예산을 투입한 블록버스터가 아닌 집 안과 베란다 등의 닫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소동극에 그가 매료됐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많았잖나. 맨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나오고, 아 물론 그런 영화들도 필요하지만 이런 작은 이야기도 요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쉽고 재밌게, 여유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또 막상 쉽지 않더라. 역시 거저먹는 건 별로 없다는 걸 또 알았다. 연기를 물론 그렇게 해서도 안 되지만. 외국 영화가 원작(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지>)인데 참고겸 한 번 봤다. 그쪽 문화 이야기를 고스란히 가져오면 안 먹힐 수도 있겠더라. 우린 김치고 거긴 파스타 감성이잖나." 

치밀하게 짠 합

머리를 새로 한 아내의 변화에도 한마디 안 하는 무뚝뚝한 남편, 나아가 조금이라도 들떠 보이면 바로 제지하는 권위적 남편의 모습이다. 유해진은 "우리 또래 혹은 위 세대 부부에서 볼 수 있던 면모 중 하나"라며 "사실 그런 행동은 별로라고 생각한다. '츤데레'라고 어떤 분들은 하시는데 개인적으로 그게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라고 자신의 캐릭터를 시원하게 소개했다.

아내에겐 정 없어 보이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전혀 딴판이다.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자신에게 묘령의 여성이 이상한 사진을 보낼 것 같자 극 중 영배(윤경호)에게 폰을 바꿔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 등에서 코믹한 대사들이 눈에 띈다. 관객들도 이 장면에서 가장 크게 웃을 법하다. 쉽게 치고받는 대사 같지만, 배우들 사이 호흡이 그만큼 중요한 순간이기도 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합을 많이 맞췄다. 띠동갑 여자가 사진을 보낸다고 하면 보통 12살 아래를 생각하잖나. 시나리오에도 연하였는데 제가 연상이면 어떨까 제안했다. 그래서 누님 같은 편안함이 있다는 그런 대사도 나오게 된 것이다. 애드리브는 아니었다. 갑자기 현장에서 그러면 상대 배우에게 큰 실례다. 재미있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게 우리 일이지 않나. 서로 얘기하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적극 제시하고 수용하는 그런 과정을 거쳤다.

(외화 원작인만큼) 우리 상황과 처지에 맞게 그려져야 하기에 그런 장치가 많이 들어갔다. 관객들이 순차적으로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예상치 못하게 나오는 상황과 웃음. 그걸 찾는 게 어렵더라. (이서진, 조진웅, 염정아, 김지수 배우 등) 또래들이 만나기에 호흡이 중요했다. 우리끼리도 저녁을 같이 먹으며 여러 얘길 했다. 다들 '이런 영화가 잘 돼야 한다'고 하더라. 다들 성격이 좋더라. 특히 잘 몰랐던 사람들도 이번에 더 알게 됐다. 이서진씨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거 전에도 살짝 느꼈지만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됐다(웃음)." 


소소한 메시지

<완벽한 타인>은 코미디 장르의 성격이 강하면서도 동시에 스릴러 요소 또한 품고 있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몰랐던 각자의 비밀이 극에서 하나둘 등장하며 긴장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의 치부 혹은 말 못 할 비밀이 드러나며 상황은 파국으로 흐른다. 한참 웃다가도 이런 설정에 영화관을 나서다 보면 여러 생각이 들 법하다.
 
 배우 유해진

"우리끼리도 저녁을 같이 먹으며 여러 얘길 했다. 다들 ‘이런 영화가 잘 돼야 한다’고 하더라. 다들 성격이 좋더라. 특히 잘 몰랐던 사람들도 이번에 더 알게 됐다." ⓒ 화이브라더스코리아

 
"영화를 보며 여러 가지가 공감 가더라. 우리가 너무도 쉽게 얘기하는 타인의 다른 점들. 그건 영화 대사에 나온 대로 다른 것이지 틀린 게 아니다. 또 인간의 본성이 월식과 같다는 말도 공감 갔다. 우리가 감추거나 알지만 모르는 척 눈감을 때도 있잖나.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약간 뻐근함이 느껴졌다. 너무 속내까지 드러낼 필요 없이 그렇게 사는 것이지 뭐 특별한 삶이 있나 그런 영화의 주제가 좋다. 모처럼 좋은 작품을 했다는 느낌이 든다.

배우들도 저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이서진씨는 더욱 결혼을 안 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지만) 전 혼자는 못살 것 같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웃음). 밥 먹으면서 배우들과 그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서진씨는 인간은 어차피 혼자라고 하더라. 현장에서 맛집도 서진씨가 소개해주고 그러면 배우들이 거기 가서 함께 얘기하고 그랬다."


40대 중반을 지나는 이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벌어진 소동극. 관객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40대 관객에겐 남다르게 다가올 여지가 크다. "특별히 40대 또래에게 할 말은 없다. 다들 각자 열심히 사니까. 다만 운이 닿거나 안 닿는 차이일 뿐"이라며 "그럼에도 이 영화를 그 분들이 보신다면 이번 가을이 조금은 부드럽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유해진 스스로도 자신을 꾸준히 환기하고 객관화하려 노력 중이었다. 매너리즘을 깨려는 나름의 방법으로 그는 등산과 같은 육체적인 운동을 추천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고치려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들 하잖나. 사람은 크게 변하진 않는다. 다만 노력할 뿐이다. 저도 꼰대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뭔가 어떤 것에 함몰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스스로 과대 포장됐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미술, 와인을 좋아한다고 알려졌는데 와인은 있으면 먹는 것이고, 그렇게 제 취향이 고급진 게 아니다. 클래식이야 정확히 무슨 곡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다들 라디오 93.1은 틀어놓지 않나(웃음). 지적으로 알진 못하지만 제 정서가 그런 쪽으로 흐른다는 걸 느낄 뿐이다. 또 삼청동에서 일이 끝나거나 틈이 나면 근처 갤러리 같은 곳에 다녀오는 그런 정도다."

 
 배우 유해진

"차승원씨와 함께 했던 <삼시세끼>가 그립다. 또 출연할 생각 있냐고? 상황과 때가 맞아야지. 서로 배우로서 본업에 충실해야 하는 게 맞다." ⓒ 화이브라더스코리아

 
유해진 완벽한타인 염정아 이서진 삼시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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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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