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블루> 포스터

<퍼펙트 블루> 포스터 ⓒ 튜브엔터테인먼트

 
제20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특별전'으로 콘 사토시 감독의 영화 <천년여우>와 <퍼펙트 블루>를 선보였다. 콘 사토시 감독의 데뷔작인 <퍼펙트 블루>는 아이돌에서 배우로 전향한 '미마'의 현실과 환상이 경계를 허물며 펼쳐지는 강렬한 미스터리 스릴러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을 통해 만화가였던 콘 사토시는 성공적으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했으며 이 스타일을 고수하게 된다.

아이돌 그룹 '챰'의 멤버 미마는 소속사 대표의 강요에 의해 그룹을 탈퇴하고 배우로 전향한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꿈을 이루기 위해 상경한 그녀지만 "아이돌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우가 된다. 하지만 신인 배우 미마에게 주어진 대사는 한 줄, 장면은 세 컷. 이에 소속사 대표는 작가에게 부탁을 하고 작가는 성폭행 장면을 넣기로 결정한다. 가수에 대한 미마의 간절한 꿈을 아는 매니저 루미는 대표에게 반기를 들지만 미마는 이를 허락한다.
 
 <퍼펙트 블루> 스틸컷

<퍼펙트 블루> 스틸컷 ⓒ 튜브엔터테인먼트

 
미마가 탈퇴한 후 2인조가 된 아이돌 그룹 챰은 처음으로 가요 순위권에 드는 등 성공을 거둔다. 반면 미마는 점점 극중에서 노출하는 역할로 자리 잡는다. 미마가 꿈꾸었던 본인의 모습은 전혀 달랐지만, 현실에서는 노출로 먹고 사는 여배우가 되어버렸다.

영화에서 이런 간극은 현실과 환상으로 분리된다. 이 분리는 세 가지 사건을 통해 경계를 허문다. 첫 번째는 아이돌 미마의 등장이다. 미마는 환영을 보는데 그 환영은 아이돌 시절 미마의 모습이다. 아이돌 미마는 진정한 미마는 자신이라 말한다. 본래 자신이 꿈꾸던 모습은 환영이 되고 원치 않은 모습이 현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두 번째는 스토커다. 아이돌 미마를 좋아하는 스토커는 변해버린 미마의 모습에 분노를 느낀다. 그는 '미마의 방'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자신이 스토킹한 미마의 모습을 마치 미마가 된 것처럼 쓴다.

무서운 점은 이런 스토커의 글이 미마 본인의 생각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배우 미마는 이런 생각을 감추고 숨기며 살아가는 반면 아이돌 미마가 메인 화면에 뜨는 홈페이지에는 진짜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 번째는 작품의 핵심적인 소재인 살인이다. 영화에서 미마가 원망을 가질 만한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나간다. 미마는 그 살인의 범인이 자신이 아닌지 의심한다. 그녀는 환상 속에서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을 보고, 환상이라 생각했던 장면에서 입고 있었던 옷이 본인의 장롱 안에 피 묻은 채 놓여 있는 걸 발견한다.
 
이런 미마의 혼란은 정체성의 상실에 있다. 그녀가 배우로 전향하면서 받은 단 한 줄의 대사는 "당신은 누구시죠?"다. 그녀는 이 대사를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계속 중얼거린다. 그녀의 이 대사는 또 다른 미마의 출연으로 자신을 향하게 된다. 꿈이었던 아이돌과 노출 전문 배우라는 현실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빠진 것이다. <퍼펙트 블루>는 이런 혼란을 두 가지 공간에 담아낸다.
  
 <퍼펙트 블루> 스틸컷

<퍼펙트 블루> 스틸컷 ⓒ 튜브엔터테인먼트

 
첫 번째는 미마가 촬영 중인 작품이다. 범죄 추리 장르인 이 드라마는 미마가 현실에서 겪는 살인과 정체성의 혼란에 대한 힌트가 암시되어 있다. 특히 작품의 여주인공이 미마에게 말하는 "우리는 기억의 연속성에 기대어 일관된 자기동일성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내고 있어"라는 대사는 기억에 오류를 겪는 미마의 정체성 상실을 압축적으로 대변한다. 여기에 표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과정 역시 드라마 속 인물들의 대사에 힌트가 담겨 있다.
 
두 번째는 미마의 방이다. 그녀가 챰에서 탈퇴한 후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방 안에 달린 챰 포스터를 떼어낸 것이다. 이 순간 방 주인의 명확한 정체성은 사라진다. 이에 대한 증거는 평온을 잃어버린 방의 모습이다. 포스터를 떼기 전 욕조에서 목욕을 하며 피로를 풀던 미마에게 이후 방의 모습은 피로도를 높이는 공간이 된다. 협박이 담긴 팩스와 거울로 비치는 또 다른 미마의 등장, 환상 후 공포 속에서 깨어나는 장소 모두 방이 공간이다.
 
방의 또 다른 역할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조금은 구분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미마가 배우가 된 후 어항 속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맞이하는데 이후 물고기들이 어항에 들어있는 장면들이 있다. 이는 경계가 허물어진 환상과 현실을 구별해주는 매개체가 된다.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무서운 점은 공포를 자아내는 환상이 이루고 싶은 꿈의 모습이며 안도를 주는 현실이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싶은 지옥이라는 점이다. 미마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공포의 대상인 환상과 마주해야 하며 안정적인 현실을 빠져나와야 한다.
 
<퍼펙트 블루>는 엔터테이너 사업 속에서 본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한 아이돌의 이야기를 현실과 환상의 붕괴라는 독특한 연출법으로 담아냈다. 20년이 지난 오늘날 상영 후 기립박수를 받을 수 있는 그 힘은 이 독특함이 지닌 생명력에 있다고 본다. 한 인물의 내면적인 심리를 드라마 촬영과 일상, 환상과 꿈이라는 시공간에 중첩되게 담아낸 연출은 모든 연출가들이 탐낼 묘기라고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루나글로벌스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퍼펙트블루 콘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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