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수비수 장현수는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국민 욕받이'라는 씁쓸한 별명을 얻었다. 신태용 감독의 꾸준한 신임을 얻으며 전 경기에 선발로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수비에서 부진한 모습으로 비난의 대상이 됐다.

장현수는 대회 내내 엄청난 인신공격에 시달렸으며, 그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도 등장했다. 장현수가 과연 앞으로 대표팀 선수로서 재기할 수 있을지 월드컵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벤투호 1기에 이름 올린 장현수, 활용법 뭐길래

[월드컵] 장현수, '외질은 내가 막는다' (카잔=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에서 장현수가 독일의 메주트 외질을 저지하고 있다.

▲ [월드컵] 장현수, '외질은 내가 막는다' (카잔=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에서 장현수가 독일의 메주트 외질을 저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파울루 벤투 신임 대표팀 감독은 자신의 한국 축구 데뷔전이자 9월 열리는 코스타리카-칠레와의 2연전에서 장현수를 명단에 포함시켜 눈길을 끌었다.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부진 이후 대표팀에서 당분간 제외되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왔지만 벤투호 1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면서 장현수는 다시 한 번 명예회복의 기회를 잡게 됐다.

여전히 월드컵의 여파로 장현수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발탁한 것을 우려하는 반응도 일리는 있다. 선수 입장에서도 잠시 쉬어가는 게 정신적으로도 부담을 덜고 심기일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령탑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대표팀 분위기가 일신된 만큼 내부 경쟁이 원점으로 돌아가 공정하게 다시 평가받을 기회를 잡았다는 점에서는 장현수에게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벤투 감독이 장현수를 미드필더로 발탁했다는 점이다. 장현수의 주포지션은 중앙 수비수지만 수비형 미드필더, 넓게 보면 측면 풀백까지도 소화가 가능하다. 벤투 감독은 지난 3일 대표팀 소집후 첫 기자회견에서 장현수의 발탁을 두고 특정 포지션에 국한시키지 않고 '멀티플레이어로서의 활용도'에 주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벤투 감독만의 평가는 아니다. 장현수는 팬들의 비난과는 별개로 축구인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많은 장점을 갖춘 수비수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홍명보-최강희-울리 슈틸리케-고 이광종-신태용에 이르기까지 각급 대표팀에 다양한 지도자들이 거쳐가는 와중에서도 한결같이 장현수를 중용했다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전술적으로 빠져서는 안 될 선수가 있다"며 그 예 중 하나로 장현수를 짚었다. 신태용 감독은 "장현수보다 나은 수비수가 누가 있나? 그랬다면 그 선수를 기용했을 것"이라고 여론의 비난에 반박하기도 했다.

장현수의 강점은 한국 수비수로는 빌드업과 수비 조율 능력이 좋고 전술 소화력도 뛰어나 여러 포지션을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을 강조하는 벤투 감독도 장현수의 기술이 좋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문제는 최근에는 실전에서 이런 장점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것. 월드컵에서는 부족한 대인방어 능력에 잦은 실수가 더해졌다. 스웨덴전에서 박주호의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어지는 패스 실수는 운이 없었다 치더라도, 멕시코전에서 2실점의 빌미를 내준 두 번의 태클 실수에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수비수로서의 기본기가 부족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독일전에서 펄펄 날았던 장현수, 자신감 회복이 관건

[월드컵] 장현수 조현우 김영권, 아쉬움 가득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장현수(20), 조현우(23), 김영권(19)이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1대2로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 [월드컵] 장현수 조현우 김영권, 아쉬움 가득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장현수(20), 조현우(23), 김영권(19)이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1대2로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나마 가장 좋은 경기를 보여준 독일전에서는 장현수의 장점이 살아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상으로 결장한 기성용의 공백을 대체하여 수비형 미드필더로 투입된 장현수는 적극적인 압박과 활동량으로 앞선에서 보호하고 독일의 공세를 무실점으로 차단하는데 숨은 '수훈갑'이 됐다. 여전히 잔 실수는 있었으나 수비수로 나섰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뒤에서 커버해 줄 동료들이 있었던 탓에 큰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국축구의 월드컵 예선과 본선 경기를 모두 점검했다는 벤투 감독이 장현수의 포지션 활용법에 대하여 힌트를 얻을수 있는 대목이다.

벤투 감독은 아직 장현수의 기량을 가까이서 두 눈으로 확인할 기회는 없었다. 벤투호 1기에서는 일단 기성용, 정우영 등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경쟁할 것이 유력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시 수비수로 돌려 실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벤투 감독이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시절 주로 사용한 4-3-3 포메이션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들이 모두 공격과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폭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움직임을 요구한다. 신태용 감독 시절 포백의 중앙수비수나 스리백의 '포어 리베로'로 종종 나섰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장현수가, 기술력을 중시하는 벤투 감독의 전술적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지켜봐야할 부분이다.

장현수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월드컵 이후 심리적으로 자신감을 얼마나 회복하느냐에 달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장현수는 아직도 27세의 젊은 수비수다. 흔히 수비수의 본격적인 전성기는 20대 후반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한다. 아시안게임 우승을 비롯하여 올림픽-아시안컵-월드컵까지 20대 중반에 굵직한 메이저대회를 주전으로 두루 섭렵한 경험을 갖춘 수비수는 그리 많지 않다. 큰 부상이나 슬럼프가 없다며 당장 내년 아시안컵은 물론, 4년뒤 카타르 월드컵 출전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장현수다.

황선홍은 1994년 미국월드컵 당시 '똥볼' 트라우마로 국민적 비난을 들으며 오랫동안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가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로 극적인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지난 러시아월드컵 직전까지 장현수와 함께 세트로 가장 많은 욕을 먹던 김영권은 정작 본선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빛영권'으로 거듭나는 반전에 성공했다. 장현수에게도 명예회복을 노릴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다만 그라운드에서 팬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실력으로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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