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업그레이드> 포스터

영화 <업그레이드>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A.I.(인공지능)의 영역은 기존의 과학기술의 방향과는 다소 다른 것처럼 보인다. 기존 과학기술이 인간의 신체영역의 확장과 보완을 추구했다면 A.I.는 정신을 확장하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알파고인데, 알파고는 바둑이라는 고등사고를 추구하는 분야에서 프로 기사들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다.

인공지능은 일정한 판이라는 공간이 정해진 바둑 이후 스타크래프트까지 영역을 확장했으나 이에 대한 성과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더 많은 사고를 통해 다양한 수를 생각해야 하는 전략 시뮬레이션의 단계까지는 미치지 못했다는 소리다. 다만 최근 A.I.끼리 인간이 모르는 언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뉴스는 기계에 의한 인류의 멸망을 그린 영화 <터미네이터>가 생각나게 만드는 섬뜩한 소식이었다.

<업그레이드>는 이런 정신적인 영역의 확장을 다룬 SF 액션 영화다. <겟 아웃> <해피 데스데이> 등의 작품들을 통해 호러영화의 명가로 발돋움한 블룸하우스의 첫 액션영화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영화는 모든 것이 A.I.로 이뤄지는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집과 차는 인공지능을 통해 작동되며 말 한 마디에 불이 켜지고 차가 목적지까지 자동으로 운행된다. 주인공 그레이는 기계가 모든 걸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자동차 수리와 개조만은 자신의 손으로 하고 싶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다.

어느 날 자동차의 A.I.가 말을 듣지 않아 사고를 내고, 그레이와 아내는 괴한들에게 공격을 당한다. 이 과정에서 아내는 살해당하고 그레이는 전신이 마비된다.

전신이 마비된 주인공, 인공지능 칩 '스템'으로 회복해 복수하다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이런 전개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사이보그일 것이다. <로보캅>처럼 전신에 큰 부상을 입은 주인공이 기계의 힘을 빌려 복수하는 내용 말이다. <업그레이드>에서 주인공이 복수를 하는 건 맞지만 도움을 받는 부분은 신체를 개조시키는 커다란 기계가 아니라 조그마한 칩이다. 이 칩은 그레이의 신경에 자리 잡아 끊어진 신경을 다시 연결해준다.

그런데 칩은 단순한 기계가 아닌 A.I.이다. 영화에서 칩에 내장된 인공지능은 그레이에게 말을 걸고 그가 아내를 죽인 범인들을 찾는 과정을 도와준다. 이런 지능을 지닌 칩 '스템'의 존재는 영화 <리미트리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몸이 기계화 되는 사이보그화를 통한 주인공의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뇌의 활성화를 통한 신체능력의 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때 뇌의 역할을 하는 게 인공지능인 스템이다. 영화는 스템의 존재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전까지 인간은 육체적인 영역을 기계가 차지한다 생각할 순 있어도 '정신적인 영역'까지 기계가 대신할 것이라는 생각은 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A.I.의 발명으로 기계가 정신의 영역에서 인간을 대신할 가능성이 생기자 위기의식이 팽배해졌다. <터미네이터>가 그려낸 기계에 의한 인류의 지배와 멸망이 실현화 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후 인공지능을 지닌 사이보그에 대한 이야기는 SF영화의 단골 소재로 다뤄져 왔다. <업그레이드>는 이보다 한 발 더 앞선 질문을 던진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믿었던 정신 세계에 인공지능이 침투한다면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의족이나 의수처럼 신체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하는 것처럼 정신의 기능도 기계가 대신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A.I. 스템은 신경계를 장악해 뇌에 영향을 끼친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스템에 의해 그레이는 기계와 대화를 나눈다. 이 순간 그레이의 내부에는 두 개의 '인격'이 자리 잡은 것이다.

영화는 그레이의 내부에서 점점 영역을 넓혀가는 스템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템은 그레이가 적과 싸울 때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그가 몸을 움직이는 모든 일은 스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스템의 전원이 꺼지는 순간 그레이는 다시 머리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는 사지마비의 상태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이 육체는 그레이의 것인가, 아니면 스템의 것인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육체에 들어오면서 펼쳐지는 이 질문은 흥미로운 설정과 몰입감 높은 액션에 가려진 철학적 의문이다. <공각기동대>, <블레이드 러너>, < A.I. > 등 SF 명작 영화들에서 사유하는 기계를 통한 인간 존재의 증명 등을 그려내고 한 발짝 더 나아가 기계가 신체의 노동을 대신하게 된 것처럼, <업그레이드>에서는 정신의 기능인 생각과 판단을 기계가 대신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기계인간인 사이보그와 인간이라는 상반된 존재를 통해 질문을 던졌던 기존 영화들과 달리, 기계와 인간의 영역을 그레이의 몸이라는 공간으로 합치면서 질문의 깊이를 더한 것이다.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이는 가상 세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더 심화된다. 영화 속 VR 기기를 눈에 쓴 채 몇날 며칠을 가상 세계에서 보내는 이들은 자신이 아닌 기계의 명령과 판단에 따라 현실을 떠나 가상의 세계에 빠진다. <업그레이드>는 인간이 지닌 고유한 영역이라 여겨왔던 정신의 영역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제22회 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블라인드 시사회에서의 호평에 힘입어 개봉을 앞둔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SF 액션 영화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브런치, 블로그와 루나글로벌스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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