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스페셜 > - 미스터리한 나의 어머니 황정례

< SBS 스페셜 > - 미스터리한 나의 어머니 황정례 ⓒ SBS


나의 어머니는 종종 당신의 어머님과 아버님, 그리고 자신의 형제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분들과 함께한 건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어머니께선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듯 그 시간을 기억해 낸다. 그 순간마다 어머니는 '80이 넘은 할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 그늘에서 살던 딸이 된 듯하다.

하지만 난 그런 어머니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지금의 외로움에 대한 '반작용'인 것 같아서, '도대체 언제 적인데'라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지금의 시절을 기꺼이 살아내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 앞서기 때문인 듯하다.

아마 노인분들과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리라. 바로 그 '복잡함'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바로 7월 8일 방영된 < SBS 스페셜- 미스터리한 나의 어머니 황정례 >이다.

오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쉽게 잊어버리고,
잊어야 할 것은 정작 잊지 못하는 짐처럼 무겁게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이종민, <망각은 저주인가? 축복인가?> 中


이종민 전북대학교 교수는 매일 촌에서 출퇴근을 한다. 그가 현재 사는 곳은 그의 늙으신 어머님이 사는 곳이다. 이 교수는 여러 형제 중 막내지만 어머니 황정례씨가 치매 판정을 받자, 기꺼이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데는 그래도 자식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래서 자신이 살던 집을 놔두고 어머니가 사시는 집 옆에 새로이 머물 곳을 지었다. 언제나처럼 끼니 때가 되면 밥상이 차려진다. 단지 예전에 어머니가 하시던 것을 이젠 막내 아들인 이종민 교수가 할 뿐이다. 어머니의 공간, 어머니의 삶에 아들이 들어앉았다.

그의 어머니 황정례씨는 올해 아흔 두 살이다. 하지만 누가 물어보면 그만 자신의 연세를 잊은 채 일흔 여덟이라 답하신다. 늘 도돌이표처럼 되돌아 가는 시간, 그 일흔 여덟에는 무엇이 있을까?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현재'의 시간 대신 자신이 머물고 싶은 시간 속으로 기억을 끌고 간다. 그곳에는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파란 대문'을 훔쳐간 도둑놈이 있고, 분홍 모시 치마를 입고 옛사랑을 만난 새댁이 있다. 다큐는 '치매'를 빌려 사라져가는 어머니의 역사를 복기한다.

어머니 황정례씨는 말끝마다 자신이 이제는 그만 '콩새'가 됐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콩새는 '밥새'의 반댓말, 이제 더는 밥도 할 줄 몰라 아들이 밥을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콩새' 어머니는 아들이 차를 타고 출근하자마자 바빠진다. 언제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냐는 듯, 뒤주에서 쌀을 잔뜩 꺼내 쓱쓱 씻어 밥솥에 밥을 안친다. 거기까지는 일사천리였는데 노련한 밥새 황정례씨의 발목을 첨단의 전기 밥솥이 잡는다. 이리 저리 눌러봐도 좀처럼 '취사' 코스로 가지 않는 밥솥. 설사 취사 코스로 간다 하더라도 예전 가마솥밥을 하던 기억을 가진 어머님은 전기 밥솥의 빠른 취사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 결국 한 솥 가득 설어버린 밥은 기르는 개의 몫이 된다. 하지만 개조차 만날 쌓이는 설은 밥을 외면해 버린다.

아들은 어머니의 이 위험한 행동을 막기 위해 뒤주에 자물쇠를 채워도 보았다. 하지만 '열중'을 넘어 집착을 보이는 어머니가 병이 나시겠다 싶어 결국 뒤주에 채운 자물쇠를 버렸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이 집을 떠나자마자 매번 밥과의 전쟁을 벌이신다. 평생 그렇게 밥을 하며 살아왔던 일상의 기억 속을 헤집어 내신다.

어머니의, 아니 황정례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sbs스페셜-미스터리한 나의 어머니 황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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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노령화되어 가는 사회의 가장 큰 부담 중 하나다. '기억'을 잃어가는 걸 떠나서, 많은 후유증들이 노인 본인은 물론, 부양 가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매'의 경우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예후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각종 연구 결과는 알려준다. 삶의 근거지를 잃은 도시의 치매 노인들은 증상 악화를 겪는 사례가 많은 반면, 자신의 삶의 테두리을 벗어나지 않은 시골 노인들의 경우 약간의 기억 상실 정도로 약하게 치매를 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큐 속 황정례씨는 자신의 나이를 기억 못할 때가 있고, 아들이 없는 사이 대책 없이 설은 밥을 하지만, 일상을 벗어나지 않은 황정례씨의 치매는 그저 '일상의 해프닝'으로 침잠된다. 대신 아들은 그리 오랜 시간이 남지 않은 어머니의 '미스터리한 역사'를 기록하고자 한다.

어머니는 매번 마루 끝에 앉아 대문을 노려본다. 그러면서 당신이 애지중지하던 파란 대문을 도둑놈이 훔쳐갔다며 끌탕을 한다. '파란 대문을 훔쳐간 도둑놈'을 추적했다. 추적 끝에 '파랗다'라고도 할 수 없는 낡은 철대문을 멀끔한 나무 대문으로 바꿔달은 사람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살림을 합치면서 아들이 바꿔 달은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그 '새 대문으로의 교환'은 그저 '도둑질'로 기억될 뿐이다. 아들은 헤아려 본다. 아마도 그 '교환'이 '도둑질'이 된 착각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가 살아낸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 있으리라고 말이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파란 철대문을 다셨던 그 '살림을 일구던 찬란한 시절'의 기억을 아마도 어머니는 '도둑맞았다' 생각하시는 게 아닐까, 라고 말이다.

그렇게 다큐는 어머니 황정례씨의 '치매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다 보니 지금껏 아버지와 단란하게 일가를 꾸리며 살았던 것으로 자식들이 기억하는 어머니의 입에서 '공방'이란 단어가 툭 튀어 나온다.

어머니는 열여덟 살에 친정 아버지의 결정으로 산골 마을로 시집을 오게 됐다. 새댁이 된 어머니는 남편을 거부하였다. '첫사랑이 있느냐'고 물어도 '그런 건 없다'고 하던 어머니는 가수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을 읊조리며 술술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물동이를 기꺼이 날라주던 동갑내기 동네 총각과 당연히 결혼하리라 생각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산골마을 남정네와의 혼사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어머니는 이후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동갑내기를 만났던 날 입은 옷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치매는 '꽃다운 황정례'의 역사를 소환한다.

어머니의 기억을 따라 아들이 찾아가보니, 누군가의 아내, 엄마 이전의 꿈같던 시절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식들에게 '초등학교도 못 나와 아버지에 비해 배움이 짧았다'고 기억되었던 분이 아니라, 어릴 적 서당에서 천자문은 물론 고문진보까지 떼시고 시집을 와서 동네 여성들에게 글자를 가르쳐줄 정도로 열정이 넘치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지금도 한자 책으로 하루 종일 소일을 하실 정도로, 아들을 대학 교수를 만들 만큼, 아니 그 이상의 배움의 열정을 가진 황정례라는 '인물'의 재발견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열 여덟이란 나이를 안타깝게 읊조리시듯, 그 꽃다운 시절에 산골 마을로 시집이 보내졌다. 결국 일곱 자식을 낳아 기르는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매번 어머니가 자신의 나이를 일흔 여덟이라 말씀하시는 그 시절에 남편을 먼저 보냈다. 미웠다지만, 그래도 남편보다 오래 사는 자신이 면구스러워 매번 아흔 두살의 나이를 일흔 여덟로 착각하시는 어머니.

황정례씨만이 아니라, 많은 '치매 노인'들의 얼토당토않은 기억 속에는 이렇게 장구한 개인의 역사가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치매 어머니의 기억 속을 더듬는 아들 이종민 교수의 <미스터리한 나의 어머니 황정례>를 통해 다큐는 '치매'를, 노년을 재발견하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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