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 하나에 전 세계가 울고 웃는다. 독일의 조별리그 탈락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당시 참석한 콘퍼런스 자리에서 "매우 슬프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전 세계의 사람들도 독일의 탈락에 관해 SNS에 수십만 개의 게시글을 올렸다. 파나마의 후안 카를로스 바렐라 대통령은 파나마의 사상 첫 월드컵 출전이 결정된 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월드컵 기간에는 탈락이나 패배가 확정된 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넋이 나가 있거나 나라를 잃은 것처럼 오열하는 축구팬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월드컵] 독일 침몰시킨 대한민국 (카잔=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 경기에서 손흥민이 후반 추가시간에 추가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 독일 침몰시킨 대한민국 지난 6월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 경기에서 손흥민이 후반 추가시간에 추가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월드컵은 4년마다 한 번씩 세계적인 규모로 열리는 대형 축구 대회이자 거대 이벤트다. 대회의 흥미를 위해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좋지만 대표팀의 결과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특히 수고한 선수들이 귀국하는 현장에서 달걀을 투척하는 행동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도저히 '축구사랑'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축구팬들은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에 열광하지만 월드컵의 재미는 만원 관중이 모여 있는 경기장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치열한 승부의 현장에서 한 발 물러나서도 흥미를 가질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축구팬들에게 다양한 재미를 선사한 인물들이 여지 없이 등장했다. 이런 소소한 재미들은 월드컵을 더욱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흥밋거리다.

독일전 승리를 예측한 축구인은 '독수리' 최용수뿐이었다

현역 시절 '독수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은 현역 시절 황선홍과 안정환 사이의 세대를 잇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다. 하지만 축구팬들에게 최용수 전 감독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카자흐스탄과의 지역 예선에서 골을 넣은 후 광고판에 올라다가 떨어진 장면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미국전에서 역전골 찬스를 하늘로 날려 버린 '독수리슛' 장면이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과거 한국 축구를 대표하던 스트라이커였지만 '월드컵 영웅'이 되기엔 2% 부족했던 최용수 전 감독은 2017년을 끝으로 중국리그 장수 쑤닝 감독을 그만뒀다. 이후 2002년 멤버들이 주축이 된 러시아 월드컵 지상파 3사 해설위원에 포함되지 못했다(본인도 사투리가 심해서 해설은 못할 것 같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던 최용수 감독이 갑자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날이 있었다. 지난 5월 31일 SBS에서 방송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정답화면'이 있다.

 지난 5월 31일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한 최용수.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독일을 상대로 승리한 이후, 최용수가 당시 "독일을 '1승 제물'로 삼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뒤늦게 화제가 됐다.

지난 5월 31일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한 최용수.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독일을 상대로 승리한 이후, 최용수가 당시 "독일을 '1승 제물'로 삼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뒤늦게 화제가 됐다. ⓒ SBS


당시 한국은 북미정상회담과 6.13 지방 선거 때문에 월드컵 이슈가 묻혀 있었고 '블랙하우스'에서는 역대 가장 관심을 덜 받는 월드컵을 전망하자는 취지의 코너를 만들었다. 차범근 전 감독, 박문성 해설위원 등과 함께 패널로 출연한 최용수 전 감독은 스웨덴을 잡아야 한다는 다른 패널들과 달리 세계 최강 독일을 '1승의 제물'로 삼자는 의견을 냈다. 진행자 김어준을 비롯한 다른 패널들도 최용수 전 감독의 의견을 단순한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방송이 나가고 27일의 시간이 지나 한국과 독일의 경기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예상을 뒤엎고 독일을 2-0으로 꺾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모두가 비웃었던(?) 최용수 전 감독의 무모한 예측은 결과적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정확한 예언이 됐다. 뒤늦게 축구팬들 사이에서 독일을 '1승 제물'로 예측한 최용수 전 감독의 선견지명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축구팬들은 '만약 최용수 전 감독이 한국의 코칭스태프로 합류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독일전 승리의 여운을 만끽했다.

지상파에서 하지 못하는 생생한 멘트, '축구전문 BJ 감스트'가 한다

인터넷 문화가 발전하면서 생긴 직업군 중에 브로드캐스트 자키, 소위 BJ라는 직업이 있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개인방송 형식으로 보여주면서 구독자들에게 일정한 후원(이를테면 별풍선)을 받아 수익을 얻는 직업이다. 인기 BJ의 경우 광고비를 포함한 1년 수입이 무려 수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방구석에서 컴퓨터만 한다'고 부모님께 마냥 혼나던 시대는 지난 셈이다(물론 수억의 연봉을 버는 BJ는 극히 한정돼 있다).

지난 2012년 축구게임을 콘텐츠로 개인방송을 시작한 BJ 감스트(본명 김인직)는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라는 주제를 통해 업계 최정상의 위치에 오른 인물이다. 최근에는 2018년 K리그1 개막을 앞두고 KEB 하나은행 K리그 공식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감스트는 때로는 축구 경기를 직접 보면서 중계 및 해설을 하는데 서형욱, 한준희, 장지현, 박문성 등 비 선수 출신 해설위원들처럼 전문적인 지식을 기대하긴 어렵다. 다만 때로는 과격할 정도로 지나치게 솔직한(?) 날 것 그대로의 방송이 신선한 재미를 주며 상당히 많은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관제탑 춤 추는 K리그 홍보대사 BJ 감스트  지난 2월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18 K리그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홍보대사로 위촉된 아프리카TV BJ 감스트가 관제탑 춤을 선보이고 있다.

▲ 관제탑 춤 추는 K리그 홍보대사 BJ 감스트 지난 2월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18 K리그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홍보대사로 위촉된 아프리카TV BJ 감스트가 관제탑 춤을 선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MBC에서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개인방송에 익숙한 젊은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감스트를 '디지털 해설위원'으로 특별 초빙했다. 감스트는 김정근 캐스터와 안정환 해설위원으로 대표되는 메인 중계팀이 지상파의 한계(?) 때문에 미처 할 수 없었던 정제되지 않는 멘트들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가끔 무의식적으로 비속어가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인터넷 방송의 특징을 제대로 살린 독창적인 중계로 축구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감스트는 독일전을 중계하면서 골문을 비워두고 공격에 가담한 독일의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바이에른 뮌헨)를 보면서 '노병지'라고 표현했다(과거 골대를 비우고 나오던 김병지에 노이어를 비유한 것, 물론 곧바로 김병지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벨기에와 일본의 16강전에서는 전반전 벨기에 케빈 데 브라위너(맨시티)의 활약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아직 '볼 빨간 덕배'('데 브라위너'의 이름을 줄여 국내 축구팬들이 '덕배'라고 부른다)가 되지 않아서 그렇다"며 더 많은 활동량을 요구했다(그리고 데 브라위너는 후반 막판 엄청난 질주에 이은 결정적인 패스로 결승골에 기여했다).

일본 언론까지 '발끈'하게 만들었던 한준희 해설위원의 샤우팅

KBS의 한준희 해설위원은 엄청난 정보력과 기억력을 자랑하는 해설위원으로 축구팬들 사이에서 신뢰가 매우 높다. 유명한 경기는 지나가는 장면만 봐도 어떤 경기인지 단숨에 알아내고 어린 시절에 들었던 캐스터의 멘트까지 기억해 중계에서 소개한다. 여기에 철저한 방송 준비를 통해 자신이 중계할 팀과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과 커리어, 심지어 사생활까지 철저히 공부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한준희 해설위원이 지난 벨기에와 일본의 16강전을 중계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힘과 높이의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일본에게 0-2로 끌려가던 벨기에의 전술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후반 20분 교체 투입된 나세르 샤들리(웨스트브로미치)의 실망스러운 움직임을 지적했다. 하지만 벨기에는 30분 동안 3골을 몰아 넣으며 대역전극을 만들었고, 당시 역전골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한준희 해설위원이 부진하다고 지적했던 샤들리였다.

 지난 3일 KBS SPORTS에서 한준희·이재후 해설위원이 중계한 2018 러시아월드컵 벨기에-일본의 16강 경기. 벨기에의 샤들리 선수가 역전골을 넣자 한준희 해설위원이 "감사합니다!"라고 발언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 3일 오전 3시(한국시간) KBS SPORTS에서 한준희·이재후 해설위원이 중계한 2018 러시아월드컵 벨기에-일본의 16강 경기. 벨기에의 샤들리 선수가 역전골을 넣자 한준희 해설위원이 "감사합니다!"라고 발언해 논란이 된 바 있다. ⓒ KBS


샤들리의 골이 들어가는 순간 한준희 해설위원은 특유의 샤우팅으로 "샤들리 감사합니다! 제가 샤들리 왜 넣었냐고 했는데 사과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새벽에 밤잠을 설치며 경기를 시청하던 한국의 많은 축구팬들은 조별리그 폴란드와의 최종전에서 '시간 끌기 작전'을 펼쳤던 일본의 탈락에 통쾌해 했다. 하지만 한준희 해설위원의 멘트를 두고 '공영방송 해설위원의 발언으로는 지나치게 편파적이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지난 3일 아침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한 인터뷰에서 "연장에 들어가면 최소 30분 이상 더 중계해야 하는데 일찍 퇴근한다는 마음에 기뻐서 다소 과한 표현을 했다"라고 해명하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한준희 해설위원의 발언은 일본의 축구매체 <게키사카>에도 실릴 정도로 논란이 됐다. 물론 이미 월드컵 일정을 모두 끝낸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그저 흥미로운 논란일 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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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러시아월드컵 최용수_전_감독 감스트 한준희_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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