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답지 않은' 페어플레이 팀 일본의 16강 진출로 전 세계가 분노했다. 그렇기 때문에 벨기에의 짜릿한 3-2 역전승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 큰 즐거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일본을 미워하던 많은 축구팬도 막상 경기가 시작하자 축구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선 벨기에를 상대로 보여준 일본의 경기력에 놀라워했다.

일본은 벨기에를 상대로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하는 두 줄 수비를 하기보다는 짜임새 있는 압박 축구를 진행했고, 먼저 2골을 넣는 저력까지 보여주었다.

먼저 2골을 넣은 일본의 축구를 '월드컵에서 누가 이길지 모르는 운 혹은 열정의 결과'라고 해야 될까? 2006년, 2010년 연속 월드컵 탈락을 했던 벨기에가 현재 우승 후보까지 거론되는 것이 단지 축구에 재능 있는 선수들이 반짝 태어나서 그렇다고 해야 될까?

아니다. 답은 한국이 요즘 그렇게도 울부짖는 시스템에 있었다.

장인 정신을 보여준 일본

이번 월드컵이 진행되면서 SNS에 올라온 사진 중에 사람들을 가장 놀라게 했던 것 중 하나가 일본 11명 선수의 소속팀이었다. 독일 분데스리가, 스페인 라리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11명의 선수 대부분이 빅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세계적인 골키퍼 쿠르트와를 상대로 엄청난 중거리 추가 골을 터트린 이누이 다카시도 스페인 라리가에 뛰고 있는 선수다.

일본의 이런 모습은 단지 축구에 재능 있는 선수들이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그 시작은 라면, 의류 등 어느 분야든지 오래된 장인이 있고, 그런 장인의 명맥이 오래도록 잘 유지되는 것이 특징인 일본이 2000년대 초반 축구에서 장기 플랜을 구축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25일 오전 0시(한국 시각)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세네갈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일본 대표팀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지난 6월 25일 오전 0시(한국 시각)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세네갈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일본 대표팀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AFP


"2015년 세계 축구 TOP10, 축구 인구 500만 명, 2050년 월드컵을 다시 한번 개최하면서 월드컵 우승을 하겠습니다."

엄청난 일본의 계획에 많은 사람이 코웃음을 치면서 무시하는 말투로 일관했다. 비록 2015년 세계 축구 톱 10에 들진 못했다. 심지어 한국보다 FIFA 랭킹이 낮다. 하지만 일본은 2018년 월드컵 현재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로 11명을 채울 만큼 강력한 스쿼드를 갖춘 나라로 성장했다.

점점 발전할 수 있었던 바탕으로는 다소 허무맹랑한 계획 속 구체적인 목표에 있었다. 기획서 안에는 유소년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여자축구를 발전시키겠다는 구체적인 플랜이 있었고, 매년 각 지방 협회들이 그 계획을 잘 이행하는지 일본 특유의 꼼꼼함으로 꾸준히 점검했다. 2001년 당시 일본 축구협회에 지원된 예산은 당시 한국 축구협회 예산의 10배에 달했다. 어쩌면 지금의 차이는 20년 전부터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이와 동시에 유럽 중심의 축구 시장에서 아시아라는 지역이 가진 축구 발전의 고립감과 접근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분데스리가와 협약을 맺어 적극적으로 일본 선수들을 해외로 내보냈다. 똑같이 유소년 정책을 시행했음에도 아자르나 루카쿠 같은 선수가 자국 리그에서 성장한 후 해외로 나간 벨기에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 기자가 벨기에 축구 협회 관계자에게 한국에도 벨기에의 유소년 정책을 적용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을 때 관계자는 말했다. 독일은 엄청난 인프라와 충분한 인재가 있기 때문에 잘하는 선수를 놓치지 않고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벨기에는 별로 없는 인재들을 잘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처럼 각 나라의 지역적, 문화적 특성에 맞는 정책이 필요하고 일본은 자신들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넘어지고 깨져도 지원은 멈추지 않는 벨기에

 2018년 6월 24일(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G조 조별리그 2차전 벨기에와 튀니지의 경기. 벨기에의 에당 아자르(가운데)가 득점 후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2018년 6월 24일(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G조 조별리그 2차전 벨기에와 튀니지의 경기. 벨기에의 에당 아자르(가운데)가 득점 후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벨기에는 유럽 국가 간의 월드컵이라고 할 수 있는 유로 대회에서 역사에서 유일하게 개최국 예선 탈락이라는 치욕을 경험한 국가다(유로 2000). 당시 벨기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주변 네덜란드, 프랑스의 축구 정책을 공부하면서 대대적인 개편과 투자를 감행했다.

굉장히 짜임새 있는 연령별 유소년 훈련 시스템을 구축했고, 동시에 그에 맞는 인프라와 축구를 즐기면서 하도록 유도하는 좋은 문화를 구축에도 굉장히 힘썼다. 14~17세에는 선수들의 성장의 개인적 차이가 있음을 고려해서 U-17 대표팀(체격이 좋고 당장 기술이 좋은 대표 선수)과 U-17 미래팀(체격이 안 좋아서 같은 나이 선수들로부터 밀리지만 재능이 좋은 선수)를 만들었다. 이게 바로 시스템이고 이게 바로 축구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나라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벨기에는 2000년부터 투자를 시작했다. 하지만 2006년, 2010년 모두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다. 만약 한국에서 이와 같이 투자했는데도 10년 동안 성과가 없다면 비판이 아닌 엄청난 비난이 따랐을 것이다. 계란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바위를 던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벨기에는 뚝심 있게 시스템을 발전시켜 나갔다. 2014년에도 세계적인 선수들은 많았지만, 경험과 조직력 부족으로 강팀 아르헨티나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경험도 쌓였고 조직력도 발전한 뒤 8강에 진출을 이끈 아자르, 루카쿠, 더 브라위너 등 1987년생~1993년생의 벨기에 황금세대는 2000년도부터 시작된 투자를 통해 당시 어렸던 선수들이 세계적인 선수가 된 장기적인 플랜의 결과물이다.

벨기에가 이번 대회에서는 강팀 브라질을 꺾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의 파죽지세 결과를 보았을 때, 같은 장기적인 플랜을 가진 일본의 10년 후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축구협회에 속해있음에도 멕시코전이 끝나고 한국 축구의 시스템에 대해 쓴소리를 날렸던 박지성의 말이 맞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축구의 현실이고, 현대 축구에서는 열정만으로는 안 된다. 8부리그 9부리그까지 있고 7살짜리 꼬마 아이도 협회의 빅데이터에 등록하는 독일을 이긴 한국은 월드컵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기적과 열정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유행하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의 줄임말)가 한국에서는 선수들에게 향하는 말이다. 하지만 일본의 16강 진출은 일본 축구의 장기적인 플랜을 세운 사람들이 '졌잘싸'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이 무엇인지 직시하며 비난이 아닌 비판을 해야 할 때가 대한민국의 현주소이고, 페어플레이해서 올라가진 않았지만 그동안 투자의 결과물이라고 인정받고 박수를 받아야 마땅했던 것이 일본이었으며, 투자하면 된다는 가능성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것이 벨기에다. 대한민국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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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민기자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joonho146)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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