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스토리> 포스터.

영화 <허스토리> 포스터. ⓒ (주)수필름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자꾸만 눈물이 난다. 장면 하나없이 당시를 묘사하는 몇 가지 대사만으로도 감정 절제가 힘들다. 어떤 말로 그녀들의 고통과 공포를 표현할 수가 있을까. 이토록 비통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그녀들의 이야기, 용기

 영화 <허스토리> 스틸 컷.

영화 <허스토리> 스틸 컷. ⓒ (주)수필름


'관부재판'의 정식 명칭은 '부산 종군위안부 여자근로정신대 공식사죄 등 청구소송'이다. <허스토리>는 영화를 통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재판과 그 과정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과 함께 해방이 되었지만, 종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해방되지 못했었다. 국가로부터마저 외면 당했던 이들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종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말할 수가 없었다. 여자란 이름 위에 드리워진 관습적인 검은 그림자는 그들의 입을 막아 버렸다. 시간이 흘러 그녀들의 이야기가 겨우 흘러나왔을 때, 그녀들을 기다리는 것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전쟁처럼 참혹한 또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할머니들은 수없이 부산과 일본을 오가며, 냉대하는 일본 법정에서 고통스런 당시를 떠올려야 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엔딩 역시 '해피'는 아니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에 요구했던 사죄와 배상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작조차 쉽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공들인 시간이 무상하게 원하던 결말과 너무나 동떨어진 판결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이야기는 발화되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말하지 못했던 것들, 말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양지로 이끌어내는 힘을 만들어낸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용기'다.

우리들의 이야기, 함께

<허스토리>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민낯을 함께 담아낸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재판과 나란히 낯뜨거운 '기생 관광'의 이야기를 병치한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매춘'으로 매도하려던 일본 정부의 파렴치한 행각 앞에서 벌어진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전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유사한, 혹은 더한 부끄러운 이야기가 여전히 존재를 과시한다. 영화는 개선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한, 여성의 성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병치된 두 이야기가 여성들만의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배려한다.

문정숙(김희애 분) 사장이 운영하는 여행사의 팀장은 문사장 몰래 기생 관광을 운영하다 직원 선영(이유영 분)의 신고로 붙잡힌다. 그러나,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통상의 사건들과 다르게 전개된다. 내부 비리를 밝힌 사람들이 외면당하는 작금의 현실과 달리, 문사장은 선영을 내치지 않는다. 가녀린 외모의 얌전한 선영은 불의에 눈을 감지 않으며, 문사장을 도와 제 몫을 적극적으로 해낸다. 약해 보이는 그녀는 결코 약하지 않다. 이러한 문사장과 선영의 모습은 <허스토리>가 이상하는 긍정적인 인물상일 것이다. 두 사람은 여자이지만, 특별히 여자이기에 가능한 행동은 아니다.

사실, 문사장이 위안부 피해자 상담 전화를 운영하다 끝내 재판 과정을 이끄는 모습은 그녀가 할머니들과 같은 여성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일한 가사 도우미 할머니가 그만두자 집을 찾아 가기도 하는 등의 모습 역시 문사장이 여성이기에 쉽게 수용되는 장면이다. 지쳐가는 할머니들을 다독이며 공감하는 '워커홀릭' 문사장의 모습은 관계를 중시하는 여성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허스토리>는 남성과 여성을 나누지 않는다. 여성의 긍정적인 특성들을 강조하지만, 그것을 남성을 폄하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결단력과 추진력이 있는 문사장과 화통하고 씩씩한 신사장(신선영 분)의 모습은 '묘하게' 중성적이다. 그녀들은 '통상적'인 의미에서 여성적이지 않으며, 그녀들 자체의 개성에 여성으로서의 특성이 더해진다.

승부에 집착하는 것은 의외로 문사장이다. 이런 문사장을 만류하며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은 남자인 재미교포 변호사 이상일 변호사(김준한 분)이다. 물론, 그는 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재판이 가지는 의미도 놓치려 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침착한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통념으로 갖고 있는 남성적 특질을 찾기 힘들다. 감정을 절제하는 이변호사 자체의 개성에 남성으로서의 특성이 더해질 뿐이다. 이변호사는 문사장과 '함께' 재판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허스토리>는 자칫 영화가 여성의 목소리만을 대변하게 되는 상황을 경계하고자 한다. 여성들은 같이 여성이기에 남성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겠지만, '그녀들의 이야기'는 남성들도 함께 나누어야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다. 배정길 할머니(김해숙 분)의 아들처럼 남성들도 피해자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함께'이다.

새로 쓰는 이야기, 허스토리(Her story)

 영화 <허스토리> 스틸 컷.

영화 <허스토리> 스틸 컷. ⓒ (주)수필름


<허스토리>는 '히스토리(History)'로 명명된 지금까지의 역사를 '허스토리(Herstory)'로 새롭게 쓰기를 제안한다. 이것은 역사에 성을 부여해 남성은 가해자이고 여성은 피해자로 단정하거나, 여성을 남성보다 우위에 둔다는 의미 부여식의 명명이 아니다. 남성 중심적 역사를 폐기하고 새롭게 여성 중심적 역사를 써나가자는 분기탱천한 외침이 아니다. 분명 '허스토리'는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여성을 강조하고, <허스토리>는 역사가 말해주지 않았던 여성의 아픔을 그려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허스토리'는 '히스토리'의 반어로써, 그간의 역사가 드러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드러내고, 새롭게 쓰여질 역사가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새로운 명명이다.

그동안의 역사는 승자를 중심으로 기록되고 평가되어 왔다. 인간은 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하지만, 무학습의 상태처럼 역사는 매번 반복되었다. 승자에게 유리한 기존의 역사는 '이겨야 한다'는 문사장처럼 맹목적인 결과 중심주의를 야기한다. 인간은 역사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을 학습한 것이다.

역사가 기록하는 것은 승패가 아니라, 그 과정과 의미여야 했다. 비록 '부산 종군위안부 여자근로정신대 공식사죄 등 청구소송'이 패했지만, 그 재판은 은폐되었던 일본의 만행을 만천하에 공개했으며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한다. 재판이 진행되며 문사장은 이기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과정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 과정에 따르는 진실의 힘은 강하다. 허스토리는 비겁하게 이긴 강자가 아니라, 힘없이 당한 약한 자들의 이야기를, 대부분의 강자가 자행했던 추악했던 횡포를 기록할 것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 문사장은 자신이 져야 하는 '도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에 사죄를 촉구하는 문사장이 거쳐야 할 필연적인 통과의례다. 만약 문사장이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사죄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내로남불' 식의 이율배반에 다름 아닐 것이다. 새롭게 쓰일 허스토리는 책임을 묻고 지어야 할 것이다. 책임을 지고 사죄하는 과정은 어리석은 역사의 반복을 덜하게 해줄 것이다.

종내, <허스토리>는 이기적이고도 자기 중심적인 이중의 잣대를 버리기를 촉구한다. 부끄러운 역사를 합리화하는 맹목적인 애국심이나 국수주의는 버리고, 역사를 평가하는 시선에 합리와 균형을 가질 것을 지향한다. 이제 허스토리는 자신이 당했던 불합리한 일들 때문에 변호사가 된 이변호사의 대사가 시사하듯, 불의와 불합리에 맞섰던, 그리고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재판은 끝났고, 결과는 나왔다. 일본 정부는 시간과 함께 과거의 만행이 잊혀지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허스토리>는 끝이 있지만, 그 안에 담긴 허스토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사라지지 않을 이야기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양선영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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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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