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한국 시각) 러시아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16강전에서 선제골을 터트린 일본의 하라구치 겐키 선수가 기뻐하고 있다.

3일(한국 시각) 러시아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16강전에서 선제골을 터트린 일본의 하라구치 겐키 선수가 기뻐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2006 독일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호주전,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코트디부아르전과 다를 바 없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 벨기에전도 똑같은 패턴에 무너졌다. 이 정도면 '불치병'이 아닐까.

일본이 3일 오전 3시(아래 한국시각) 러시아 로스토프에 위치한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FIFA(국제축구연맹) 러시아 월드컵 16강전 벨기에와 맞대결에서 2-3으로 역전패했다. 일본은 먼저 2골을 넣으며 사상 첫 8강 진출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급격한 집중력 저하로 3골을 내리 허용하며 고개를 숙였다. 

후반 24분 얀 베르통헨의 만회골이 터지기 전까지, 일본의 경기력은 매우 훌륭했다. 주도권은 잡지 못했지만, 적극적인 압박과 효과적인 협력 수비로 스타 군단 벨기에의 공격을 막아냈다. 에당 아자르의 개인기가 수비의 균열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며 전반전을 0-0으로 마쳤다.

후반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일본이 순식간에 2골을 뽑았다. 후반 2분, 하라구치 겐키가 벨기에의 배후 공간을 완벽히 공략했고, 깔끔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후반 7분에는 환상적인 추가골이 나왔다. 이누이 타카시가 정교한 볼 트래핑에 이은 강력한 무회전 슈팅으로 골망을 출렁였다.

벨기에는 일본을 너무 얕잡아 봤다. 전반전을 우세한 흐름으로 가져갔지만 득점에는 실패했다. 실수까지 나왔다. 베르통헨은 자신에 향한 볼을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하면서, 첫 실점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모든 선수가 공격에만 신경 쓴 나머지, 슈팅 공간을 확실히 메우지 못하면서 추가골까지 허용했다.

전술에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오사코 유야를 원톱으로 내세운 일본을 상대로 굳이 스리백을 활용했어야 했을까. 대회 내내 스리백을 고수하긴 했지만, 벨기에는 상대에 따라 변화를 가져갈 수 있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손꼽히는 케빈 데 브라이너를 계속해서 3선에 배치하는 것도 아쉬웠다.

이 정도면 '불치병'...

일본의 흐름이었다. 벨기에의 빠른 역습 상황에서 아자르가 시도한 슈팅이 골대를 때리는 등 행운의 여신도 일본의 편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194cm 장신 미드필더 마루앙 펠라이니가 투입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일본은 펠라이니 투입 4분 만에 만회골을 내줬다. 수비진이 펠라이니에 온 신경을 집중한 탓인지 베르통헨에 허무한 헤더골을 허용했다. 4분 뒤에는 펠라이니에 헤더골까지 내줬다. 일본의 승리로 흘러가던 경기가 순식간에 원점이 됐다.

일본은 '특급 조커' 혼다 게이스케를 투입해 재역전을 노렸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종료 직전, 혼다의 무회전 프리킥 슈팅이 벨기에 골문을 위협했으나 티보 쿠르투아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이어진 코너킥도 무위에 그쳤다. 문제는 이후였다. 벨기에의 빠른 역습이 전개됐고, 펠라이니와 함께 교체 투입됐던 나세르 샤들리가 극장골을 터뜨렸다. 충격적인 2-3 역전패였다.

이 장면, 낯설지가 않았다. 일본은 눈앞에 다가온 승리를 챙기지 못한 적이 꽤 많았다. 거스 히딩크가 이끌던 호주와 맞붙은 2006 독일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가 대표적이다. 당시 일본은 선제골을 넣으며 기세를 올렸지만, 후반전에 힘과 높이를 앞세운 호주에 내리 3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지난 대회 첫 경기(vs. 코트디부아르)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선제골을 넣으며 기세를 올렸지만,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코트디부아르가 디디에 드로그바를 투입하면서 힘과 높이를 더하자, 일본은 우왕좌왕했다. 집중력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연달아 2골을 내주면서 다 잡았던 승리를 놓쳤다.

이날 벨기에전도 똑같았다. 펠라이니와 샤들리의 투입은 아자르와 메르텐스 등을 활용한 빠른 공격보다는 힘과 높이를 앞세우겠다는 뜻이었다. 일본은 과거 경험을 통해 상대의 전략을 뻔히 알면서도 당했다.

실패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일본의 2018 러시아 월드컵

그러나 일본의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들이 이번 대회에서 보인 경기력은 매우 놀라운 수준이었다. 조별리그 최종전(vs. 폴란드)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앞선 2경기(콜롬비아·세네갈)와 벨기에전 후반 중반까지의 경기력은 '강호'의 모습이었다.

일본은 기본기가 남달랐다. 누구든지 볼을 안정적으로 소유할 수 있었다. 상대 압박을 이겨낼 수 있었고, 전진 패스도 가능했다. 특히, 짧고 빠른 패스로 나아가는 역습은 우승후보 벨기에를 당황하게 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몇 안 되는 기회를 득점으로 연결하는 능력도 수준급이었다. 

일본은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두고 감독 교체라는 초강수를 둔 팀이었다.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겨냈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8년 만에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팀 중 유일하게 조별리그를 뚫었다. 우리의 숙적이지만, 한국 축구가 진정으로 발전을 원한다면 배워야 할 점도 있었다.

일본은 대표팀 대다수가 유럽 무대를 누빈다. 일본 축구의 상징 혼다를 비롯해 레스터 시티에서 활약하는 오카자키 신지가 벤치다. 벨기에전에 선발 출전한 11명 중 중앙 수비수 쇼지 겐을 제외하면 전원 유럽파다. 그들은 독일 분데스리가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프랑스 리그 앙 등 유럽 최상위 무대를 누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인 결정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다 잡았던 승리를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놓쳤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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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VS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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