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의 가장 큰 목표는 승리다. 그러나 때로는 '품위있는 패배'가 비루한 승리보다 더 나을 때도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를 보여줘야 할 월드컵 무대라면 더욱 그렇다. 결과를 떠나 팬들 앞에서 실력과 매너 모두 최선의 플레이를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지난 26일 열린 프랑스와 덴마크 2018 러시아 월드컵 C조 예선 최종전은 이번 대회 개막 이후 가장 지루하고 무성의했던 '최악의 경기'로 기억될 전망이다. 양팀은 이날 졸전 끝에 0-0으로 경기를 마쳤다. 이번 월드컵 개막 이후 첫 무득점 경기였다.

프랑스-덴마크, 안전한 16강행 위해 무승부 담합?

 26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러시아 월드컵' C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프랑스와 덴마크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고 있다.

26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러시아 월드컵' C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프랑스와 덴마크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고 있다. ⓒ 연합뉴스/AFP


프랑스와 덴마크는 이미 경기 전에 나란히 조 1,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날 무승부만 거둬도 동반 16강행이 유력했던 양팀은 처음부터 소극적인 경기를 펼쳤다. 결정적인 득점 찬스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슈팅 시도도 턱없이 부족했다. 같은 시간 열린 페루와 호주전에서 페루의 선제골이 터졌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로는 양팀 모두 사실상 노골적으로 무승부를 노리는 분위기가 뚜렷해졌다.

후반 막판으로 갈수록 양팀은 그저 공을 돌리거나 지키기만 할 뿐 승부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간 페루는 호주를 2-0으로 이기며 승점 3점을 획득했지만 프랑스와 덴마크의 '암묵적인 무승부 담합'으로 인해 끝내 소득없이 헛심만 쓴 꼴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와 덴마크 양팀은 결국 명예와 맞바꾼 대가로 안전하게 16강행을 확정지었다.

프랑스와 덴마크, 두 팀은 모두 유럽의 강호다. 선수들은 유럽의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슈퍼스타들이 즐비하다. 특히 프랑스는 이번 대회에서 유력한 우승후보로까지 꼽혔던 팀이다. 하지만 경기 내내 양팀 선수들은 월드컵이라는 무대의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경기력과 프로정신을 보였다. 차라리 전력의 한계로 탈락이라는 고배를 피하지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긴 모습을 보여준 페루와 호주가 더 박수받을 만했다.

프랑스-덴마크의 비겁한 태도에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분노했다. 선수들이 의미없이 볼을 돌릴 때마다 프랑스, 덴마크 양 팀의 팬들은 관중석에서 어마어마한 야유를 쏟아냈다. 경기를 지켜본 다수의 외신과 전문가들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월드컵이라는 무대의 명성에 오점으로 남은 순간이었다.

극적으로 16강행 진출한 아르헨티나, 그러나 부끄러웠다

 2018년 6월 2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의 러시아 월드컵 D조 2경기 당시 장면.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크로아티아의 이반 스트리니치와 마르셀로 브로조비치를 상대로 경기하고 있다.

2018년 6월 2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의 러시아 월드컵 D조 2경기 당시 장면.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크로아티아의 이반 스트리니치와 마르셀로 브로조비치를 상대로 경기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부끄러운 승자'의 사례는 프랑스와 덴마크만이 아니다. D조의 아르헨티나는 나이지리아와의 최종전에서 2-1로 신승하며 극적으로 16강행에 성공했는데 이 경기에서 VAR 판독 논란이 또 발생했기 때문이다. 후반 31분 아르헨티나 문전에서 수비수 마르코스 로호의 팔에 공이 맞고 흘렀다. 이갈로가 흘러 나온 공을 그대로 슈팅으로 연결했으나 득점에는 실패했다.

나이지리아 선수들은 페널티킥을 줘야한다고 강하게 항의했으나 주심은 VAR를 확인하고도 페널티킥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공교롭게도 나이지리아는 후반 41분 로호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단 한 골차이로 양팀의 희비가 엇갈린 순간이었다.

조별리그 내내 졸전과 비매너 플레이로 논란이었던 아르헨티나에 비해 나이지리아의 경기력이 결코 나쁘지 않았기에 더욱 안타까운 결과였다. 같은 조의 아이슬란드도 월드컵 첫 출전국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탈락했지만 강호 아르헨티나-크로아티아를 상대로 끈질긴 승부를 펼치며 깊은 감동을 안겼다.

또한 아르헨티나의 축구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는 '손가락 욕설'로 도마에 올랐다. 이날 경기를 직접 관전했던 마라도나는 로호의 결승골이 터지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기뻐했다. 그는 돌연 손가락으로 비속어를 만들어 보이는 돌발행동을 지절렀다. 마라도나의 행동이 나이지리아 선수나 팬들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비난한 언론을 향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수많은 팬들이 찾는 경기장에서 마라도나의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행위였다. 마라도나는 이번 월드컵 이후 인종차별적 제스처와 흡연 논란 등으로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기를 지켜본 누리꾼들은 '마라도나를 더 이상 월드컵에서 보기 싫어서라도 아르헨티나가 탈락했어야 한다'고 싸늘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24일 열린 독일과 스웨덴의 경기에서는 일부 독일 스태프들의 무개념 행동이 도마에 올랐다. 후반 추가시간 독일이 극적인 역전골을 넣으며 2대 1로 승리하자 코치진과 스태프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스웨덴 벤치까지 다가가 상대를 도발하는 행동을 취했다. 이 과정에서 화가 난 스웨덴 벤치에서도 독일쪽 벤치로 다가갔으며 결국 서로 밀치거나 물을 뿌리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2013년 이란과의 월드컵 이사아 최종예선에서 패한 이후 모욕을 당한 경험이 있는 한국 축구로서도 낯설지 않았던 장면이다.

경기후 스웨덴은 "존경심이 부족한 역겨운 행동"이라고 독일 대표팀의 행동을 맹비난했다. 독일축구협회는 트위터를 통해 "몇몇 관계자들이 감정적으로 행동했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B조에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나란히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은 나란히 최종전에서 모로코와 이란의 거센 반격에 혼쭐에 났다. 모로코와 이란은 16강 진출이 좌절되었지만 최종전에서 강호 스페인-포르투갈을 몰아붙이며 선전했다. 두 팀은 심판 판정과 VAR 판독 등에서도 조별리그 내내 많은 손해를 본 측면이 있기에 오히려 동정을 받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최종전 이후 오히려 자국 언론과 팬들로부터 부진한 경기력을 질타 받은 것과 대조를 이룬다.

스포츠의 진정한 매력은 승패가 아니라 정정당당한 승부로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감동은 승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무리 승자라고 해도 그에 걸맞은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가치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이 월드컵을 즐기는 이유를 생각한다면, 당당하지 못한 승자들은 부끄러워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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